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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이건 운명이야!' 김진애 작가의 <여자의 독서>를 읽으면서 내내 떠올렸던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낯선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대부분 의심으로 시작한다. 가령 '독서에 관한 내용, 게다가 여성으로 한정시킨 책이 왜 이렇게 두꺼워?'라든가 '일 년에 한 권꼴로 책을 쓴다니, 대충 휘갈긴 거 아냐?' 따위의 밑도 끝도 없는 불신. 이 두터운 마음의 벽은 프롤로그, 첫 장부터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여자의 독서는 특별하다. 여자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줄 안다. 여자 특유의 공감 능력이 작동하는 덕분이다. 책이 나이고 내가 책이 되는 몰아의 경지에 도달한다. 머뭇거림도 잠깐, 어색함도 잠깐, 거리감도 잠깐, 어느덧 혼연일체가 된다. 듣는 귀, 묻는 입, 뛰는 가슴이 서로서로 연결된다.
이건 완벽히 내 이야기였다. 너무 멋진 책을 읽고도 고작 '이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어.'라는 한마디밖에 못하고 있을 때, 작가는 이토록 섬세하고 어느 한 군데 모자람 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대략 스무 페이지를 할애하는 프롤로그를 다 읽은 후에는 단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아니 오히려 질투 섞인 경의마저 품은 내가 있었다.
<여자의 독서>를 단편적으로 정의내리자면, '여성 작가의 문학 평론 모음집'이다. 박경리, 박완서, 정유정, 제인 오스틴, 제인 구달 등 여성 작가의 책을 크게 자존감부터 삶과 꿈, 여性, 연대감, 긍지, 용기, 여신(궁극적 지향, 원초적 원형), 양성성까지 총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언급한 책에 대한 호기심이 우선이겠지만 이 책은 달랐다. 여자로 살면서 고민하던, 궁금했던, 깨달았던 그 삶의 모든 순간을 풀어가고 있어 언급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앞섰다. 똑똑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되 너무 날 서 있지 않고, '여자들이여, 용기를 내고 새로워져라'라는 주장 속에 본인을 위한 이기심을 찾을 수 없었기에 더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비유하자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멋져 닮고 싶은 언니, 자문을 구하면 늘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것만 같은 엄마같은 느낌이랄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한지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진도가 너무 더뎠다. 결코 내용이 어렵거나 비문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같은 생각을 멋들어지게 풀어내는 그 표현법이, 문장들이 무척 좋아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의 평소 생각과 조금도 어긋남 없이 같은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맞다며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하다보니 도무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튼실하게 해주는 존재들을 찾아보라. 평생을 통해서 힘이 될 것이다.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고독함이,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여정이, 그들이 스스로 정의했던 자신의 과제와 스스로 추구했던 과제가, 세속에서의 그들의 성공과 실패가 나침반이 되어주고 깃발이 되어주고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런 존재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진다.(p.84~85)
<여자의 독서>는 고작 한번으로 끝낼게 아니라 '읽고 또 읽는 특별한 책'이다. 단단한 자존감을 기반으로 본인만의 캐릭터를 확립하고, '디어 걸즈'와 동병상련을 나누며 용기를 갖고 행동하며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을 지금 이 순간 만난 건, 운명인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