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한 날씨에 머리가 녹초가 되어서인지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선지 후루룩 읽을 만한 책에 손이 가던 요즘이다. 즐거운 독서를 몇 한 차에 이젠 읽어보련다. 도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는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를 쓴 앨버트 잭이다. 특유의 영국 유머도 여전하다. 주요리(본문)에 양념(역주와 원어명)이 과하지만 음식과 역사, 언어(+영국 유머)를 좋아하는 이들은 제법 입맛을 돋을 수 있으리라. 


흥미로운 음식 몇 가지.


청어 피클, 롤몹 Rollmop

베를린 특산물. 포 뜬 청어로 오이 피클을 돌돌 말아 작은 나무 이쑤시개로 고정.

  • 롤몹이란 이름은 롤렌(말다)과 몹스(퍼그)에서 왔는데 동그랗게 눌린 롤몹의 옆 모양은 퍼그의 얼굴과 비슷하다.
  • 독일식 숙취 해소법인 '카테르프뤼스튀크'에는 흔히 롤몹을 곁들인다. 이 숙취 해소법의 뜻은 '고양이의 아침밥'이다.
  • 개털 the hair of the dog은 아침에 숙취 해소로 술을 두어 잔 마신다는 관용구로 쓰인다. '고양이의 아침밥'과 '개털'이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패곳 Faggot

    소시지와 미트볼의 중간 형태. 다진 자투리 고기와 내장, 빵가루, 양파를 섞어 만들고 보통은 그레이비를 곁들여 먹는다.

    • 내가 아는 (영화에 종종 나오는) 그 패곳 맞나 했는데 그 패곳 맞다. 원래 패곳은 크기 단위로 3피트나 4피트 길이의 막대기를 2피트 둘레로 만든 다발이다. 
    • 어원은 그리스어 파켈로스 phakelos → 고대 프랑스어 파고 fagot → 패곳 faggot. Faggot은 현대 영국 영어에서 '고기 경단'과 '나무 한 단'의 뜻으로 여전히 쓰인다.
    • 파켈로스는 파시즘의 어원이기도 한데 이 지독한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패곳은 중세에 야만적인 맥락으로 쓰였다. 존 위클리프를 추종하던 롤러드파를 처단하기 위해 1414년에 수립한 '불과 패곳 의회'처럼. 패곳은 화형식 장작으로 쓰여 이단자들을 불태웠다.
    • 화형식이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기 위해 군중이 모이고 음식 행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패곳을 팔아댔다. 패곳에 불이 붙기 전 군중은 간식으로 패곳을 먹으며 쇼를 기다렸다. 
    • 저자의 경고 : 패곳은 여전히 영국 전통 요리지만 미국에서 패곳을 주문하면 안 된다. 오해받을 수 있다.


      국민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

      •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가 <해기스에게 바치는 노래>를 쓸 정도로 해기스 Haggis는 18세기에 이르러 국민 음식이 되었다. 번스의 생일(1월 25일)에 함께 해기스를 먹고, 역시 번스가 쓴 시에 곡을 붙인 <석별의 정>을 부르는 '번스 나이트'는 스코틀랜드 전통이다. 
      • 스코틀랜드는 제임스 2세와 그 자손을 지지하는 자코바이트의 최대 지지기반이었다. 자코바이트 반란이 거듭되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억센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쓴 <해기스에게 바치는 노래>는 익살스러운 풍자시 같지만 실은 잉글랜드의 탄압에 맞선 문화 저항이었다.
      • 굴라시 Goulash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소련의 압제를 거치면서 헝가리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헝가리는 '굴라시 공산주의' 등으로 서서히 자유주의 체제 기반을 닦아나간 끝에 1989년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다. 소박한 소고기 스튜였던 굴라시는 해기스가 그랬듯 헝가리 국민 요리로 거듭나면서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 무솔리니의 적들은 무솔리니가 파스타 Pasta를 금지할 것이라는 소문을 전략적으로 퍼트렸다. 실제로 무솔리니는 파스타를 장려했지만.
      • 파스타를 거리낌 없이 비판한 이들은 미래파뿐이었다. "숨 막히는 둔감함, 느려터진 심사숙고, 툭 튀어나온 배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은 미래파가 멸시하기에 충분했다. 미래파가 오래가지 못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 보면 지지자들이 너무 배고팠을 것이다."


      중국 요리

      • 삶기와 찌기는 음, 볶기와 굽기는 양의 기술로 간주하는 것은 도교의 영향.
      • 기름진 북경오리에 파채를 곁들이는 등 음식의 균형과 식사 시 친목을 중시하는 것은 유교의 가르침.


        크리스마스 음식

        • 1644년 올리버 크롬웰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금지하고 민스파이 Mince pie를 없앤 이래 민스파이는 여전히 불법이다. 즉, 크리스마스에 민스파이를 먹는 건 위법 행위인 셈이다. 
        • 전통 크리스마스 푸딩 Christmas pudding은 13가지 재료로 만들어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를 기린다. 대림절 마지막 일요일에 동방박사의 여정을 좇아 동서 방향으로 휘휘 저어가며 만든다. 
        • 크롬웰은 크리스마스 푸딩 역시 금지했다. 가톨릭과 척지는 교회 모두 푸딩에 적의를 보였다. 퀘이커가 특히 그랬지만 이는 파스타에 대한 미래파의 저항과 다를 바 없었다.


          + 해보고 싶은 터키 요리 이맘 바일디 İmam bayildi

          오죽 맛있으면 '이맘이 기절했다'가 요리명일까. 구하기 쉬운 재료로 입맛에 따라 응용도 가능하다. 아, 이맘이 기절한 이유가 아낌 없이 들어간 올리브 오일 때문이란 설도 있다. 당시 올리브 오일은 금보다 귀했기에. (그야말로 재산 거덜 나도 모를 맛).




          이 음식 만들어 먹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한 책 하나 더. 요리책은 아니다. 일본 안과의가 쓴 <1일 1분 시력 운동>으로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안구 운동과 식단을 소개한다. 대부분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의사가 쓴 책이라 좀 깐깐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식하라는데 기준은 식사 후 바로 달릴 수 있을 정도 혹은 산에 오르기 전 가볍게 먹는 수준이란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저렇게 매일 먹으면 산도 못 타고 달릴 수도 없을 것 같은데...... 건강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음식 얘기로 돌아와서,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는 '새우 두부조림' 그리고 '토마토 미역 수프'다. 전자는 손쉬운 재료와 조리법 때문에, 후자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다. 둘 다 닭뼈 육수를 사용한다. 새우 두부는 녹말가루를 입혀 노릇하게 튀긴 두부를 뜨거운 물을 부어 기름기를 빼는 약간의 난도가 있지만, 얼추 해 볼 만하다. (눈을 의심하게 만든)토마토와 미역의 조합은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지만 가늠이 안 된다. 먹어보지 않고는 모를 맛이라 언제고 만들어 봐야겠다. 마법의 식재료 토마토 때문에 의외로 맛있을 것 같기도. 설령 망하더라도 눈에 좋다니 먹기야 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식가의 어원 사전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앨버트 잭 지음, 정은지 옮김 / 윌북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나기보다 안타깝기는 처음이다. 제목을 이리 잘 지어 놓고(원제: What Caesar Did For My Salad) 편집이 왜 이 상태인지. 저 수많은, 원칙을 알 수 없는 영문 병기와 주석을 각주 처리나 미주로 빼면 안 됐을까. 본문에 음식 원어명을 한 번만 표기하는 것은 성에 안 찼을까. 어차피 만들 색인인데 ‘사전‘이란 제목에 어울리는 편집, 어려웠던 걸까. 후루룩 맛깔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마냥 흘려 읽지 말라는 새로운 가독술(術)인가, 원서도 읽어보라는 고도의 마케팅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농경의 배신>

          농경과 초기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너무 재밌다. 남몰래 자라는 덩이줄기 작물, 세금과 군대와 곡물의 관계(프리드리히 대왕, 백성들이여 감자를 심어라!)도 흥미롭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같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신석기 농경 이야기는 그야말로 '배신'이라고 할 밖에.


          도리를 모르고, 물물교역을 하고, 곡물을 먹지 않는 야만인. 내가 게으르고, 꼼수 부리고, 밖으로 나도는 건 — 타고난 집순이인 것과 별개로 — "똑똑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야만인"의 본성이 채 죽지 않은 것(이라 믿고 싶다).


          저자인 제임스 C. 스콧은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책 제목으로만, '산악지대 아나키즘'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로만 알던 학자다. 읽어 본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천둥벌거숭이 시절,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로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내가 아나키즘의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에 놀란 게 한 5년 전인 것 같다. '문명사회'의 일개 시민으로 전복의 서사를 꾀하긴 힘들어도 생각의 지점은 놓치지 말아야겠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스콧의 다른 책 <지배, 그리고 저항의 예술 - 은닉 대본>을 읽기 목록에 담는다('은닉 대본'이란 말에 안 끌릴 수가 없다).



          🎧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를 성우의 낭독으로 들으니 제목처럼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 종종 튀어나오는 시니컬한 유머까지 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책이라니.


          누가 그리스 신들을 변덕스럽다고 했나! 구약성서만큼 예측 불허의 반전 서사도 없는 것 같다. 독자로서 종교적 견해는 배제하고(알지도 못하지만) '재미'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니 혹여라도 오해 없기를. 신화와 종교가 지배 이념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괴테가 작고 뚱뚱한 바람둥이라고 불렸다는 건 처음 알았다. 가만, 괴테는 평생 한 여인만 사랑한 것 아니었나? 파우스트 마지막에 '그 여인'이 나오지 않나? 갑자기 혼란스러워 황급히 찾아보니.....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던 것. 괴테와 베아트리체라니. 정말 나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아무튼, 괴테 씨는 '작고 뚱뚱한 바람둥이'인 걸로. 슈트름 운트 드랑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군.


          그나저나 중세였으면 난 사형감이구만.

          조지 오웰의 첫 부인인 아일린 얘기는 어떻게 들어도 씁쓸하다.

          털어도 먼지 안 날 인간 로베스피에르의 삶에 혁명이란 무엇이었을까. 저자의 마무리와 함께 <미라보 다리>, <당통의 죽음>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자기계발서 몇 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가 읽어 본 자기계발서는 0권. 그렇다. 난 자기계발서를 읽지도, 필요도 믿지 않던 사람이었다. 시류를 탈 수밖에 없고, 체화할 수도 없는 남의 얘기 아닌가. 차라리 고전을 한 권 읽는 게 낫지 자기계발서는 무슨.

          과거형으로 쓰니 이젠 자기계발서 전도사가 된, 간증의 글 같지만 그건 아니고 방자했던 과거의 반성이라고나 할까.

          나사 한두 개가 아니라 죄다 빠진 것 같은 요즘이다. 어차피 게으를 거면 책 읽는 게으름뱅이가 되자. 안 읽던 책도 보고.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




          <해빗>과 <습관의 디테일>은 병렬로 읽었다. 의도한 건 아니고 그냥 빨리 읽어버리고 싶어서... 근데 의외의(?) 수확이었다. 전두엽이 고장 난 내 머리로 이렇게 이해가 잘 되다니! 의식과 비의식의 영역, 의지력의 두 얼굴, 행위의 자동화 등 습관을 파헤치는 데 학문적 접근과 생활 영역에서 흥미로운 생각거리가 많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 인간도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은영의 화해'는 예전에 칼럼 몇 개 읽은 기억이 있다. 오은영 박사가 이 분야의 권위자인 건 알았지만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유명한 방송인(?)인 줄은 몰랐다. 권위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담담하지만 단호하고 그러면서 따뜻한 필체는 이것이 전문가의 내공이구나 싶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안고 사는 이들뿐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찾는 누구든 읽으면 좋을 책이다.


          새 습관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의욕을 불태우던 때, <예민한 사람도 마음이 편해지는 작은 습관>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해빗>과 <습관의 디테일>에서 누누이 강조한 작은 습관보다 '예민한 사람'에 시선이 꽂혔다. 이 책을 읽어야겠군! 난 게으른 것뿐이었나 싶게 예민의 온도차가 다르다가도 어떤 부분에선 날 봤나 싶어 놀라기도 했는데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실제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었다고 한다. 행간마다 조곤조곤 섬세한 향기가 괜히 도는 게 아니었어. 다만 단것을 먹지 말라는 대목은 과격했다(저걸 다 안 먹으면 뭘 먹나요...)


          <시작의 기술>은 시퍼런 땡땡이 리커버가 무의식으로 작용해서 읽은 것 같다. 호통치는 자기계발서, 신선하군. 저자의 다른 책 <내 인생 구하기>는 제목에 혹해서 봤는데 이걸로 인생을 구하긴 힘들 것 같은데... 다만 우리의 앞날을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하는 것에 비유한 것은 울림이 컸다. 미래는 만드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것.




          자기계발에서 간증형, 구루형, 호통형, 학술형 등등 성격은 다르지만 요지는 같다. 인정, 행동의 촉구, 스몰 스텝, 관찰자 전략, 끼워넣기, 덮어쓰기, 축하하기 그리고 무한 반복. 중요한 건 '작게'다. 스몰 스텝은 복리의 마법으로 나타난다. 뭔가 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근데 조금씩, 꾸준히 해보자는 글쓰기를 몰아서 한 번에 쓰고 있다. 오 신이시여...... 하지만 축하하자. 한 게 어디야. 글도 길어졌다. 하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장에 오래도록 자리한 <신곡>이 있다. 다 읽기나 한 건지 가물가물하고 (다시)읽어봐야지, 연례행사 같은 다짐은 사라지기 일쑤. 700년도 넘은 고전은 내 책장 구석에서 유물이 돼버렸다. 

          올해는 반드시 읽으리라 하는 책 중에 어김없이 (또) 들어간 <신곡>. 근데 미래타임즈에서 명화와 함께 본다는 컨셉으로 <신곡>이 편역되어 나왔다. 신간은 아니고 새단장을 한 것이다. 와, 이걸 봐야겠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쓴 데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비롯해서 300여 점의 그림을 이야기에 맞게 구성했다니 구미가 안 당길 수 있나. 내 오랜 책과 환상의 짝꿍이 되어 줄 것 같다. 

          근데 열린책들에서 도레의 삽화를 모두 실어 <신곡>이 나왔다. 작년 700주기를 기념해서 나온 개역 한정본에 도레의 삽화까지 더해져 천 쪽이 넘는다. 













          4월은 추가 지출이 꽤 잡혀서... 그래서 책 예산은 0원인데... 도레의 삽화 135점이 다 들어 있다니...... 내 <신곡>은 너무 오래됐으니까 21세기 판본으로 구비하는 것도 좋겠...... 가만, 장바구니를 좀 보자...

          ......

          이대로 4월은 잔인한 달이 되고 말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