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의 배신>
농경과 초기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너무 재밌다. 남몰래 자라는 덩이줄기 작물, 세금과 군대와 곡물의 관계(프리드리히 대왕, 백성들이여 감자를 심어라!)도 흥미롭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같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신석기 농경 이야기는 그야말로 '배신'이라고 할 밖에.
도리를 모르고, 물물교역을 하고, 곡물을 먹지 않는 야만인. 내가 게으르고, 꼼수 부리고, 밖으로 나도는 건 — 타고난 집순이인 것과 별개로 — "똑똑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야만인"의 본성이 채 죽지 않은 것(이라 믿고 싶다).
저자인 제임스 C. 스콧은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책 제목으로만, '산악지대 아나키즘'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로만 알던 학자다. 읽어 본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천둥벌거숭이 시절,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로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내가 아나키즘의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에 놀란 게 한 5년 전인 것 같다. '문명사회'의 일개 시민으로 전복의 서사를 꾀하긴 힘들어도 생각의 지점은 놓치지 말아야겠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스콧의 다른 책 <지배, 그리고 저항의 예술 - 은닉 대본>을 읽기 목록에 담는다('은닉 대본'이란 말에 안 끌릴 수가 없다).


🎧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를 성우의 낭독으로 들으니 제목처럼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 종종 튀어나오는 시니컬한 유머까지 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책이라니.
누가 그리스 신들을 변덕스럽다고 했나! 구약성서만큼 예측 불허의 반전 서사도 없는 것 같다. 독자로서 종교적 견해는 배제하고(알지도 못하지만) '재미'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니 혹여라도 오해 없기를. 신화와 종교가 지배 이념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괴테가 작고 뚱뚱한 바람둥이라고 불렸다는 건 처음 알았다. 가만, 괴테는 평생 한 여인만 사랑한 것 아니었나? 파우스트 마지막에 '그 여인'이 나오지 않나? 갑자기 혼란스러워 황급히 찾아보니.....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던 것. 괴테와 베아트리체라니. 정말 나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아무튼, 괴테 씨는 '작고 뚱뚱한 바람둥이'인 걸로. 슈트름 운트 드랑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군.
그나저나 중세였으면 난 사형감이구만.
조지 오웰의 첫 부인인 아일린 얘기는 어떻게 들어도 씁쓸하다.
털어도 먼지 안 날 인간 로베스피에르의 삶에 혁명이란 무엇이었을까. 저자의 마무리와 함께 <미라보 다리>, <당통의 죽음>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자기계발서 몇 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가 읽어 본 자기계발서는 0권. 그렇다. 난 자기계발서를 읽지도, 필요도 믿지 않던 사람이었다. 시류를 탈 수밖에 없고, 체화할 수도 없는 남의 얘기 아닌가. 차라리 고전을 한 권 읽는 게 낫지 자기계발서는 무슨.
과거형으로 쓰니 이젠 자기계발서 전도사가 된, 간증의 글 같지만 그건 아니고 방자했던 과거의 반성이라고나 할까.
나사 한두 개가 아니라 죄다 빠진 것 같은 요즘이다. 어차피 게으를 거면 책 읽는 게으름뱅이가 되자. 안 읽던 책도 보고.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


<해빗>과 <습관의 디테일>은 병렬로 읽었다. 의도한 건 아니고 그냥 빨리 읽어버리고 싶어서... 근데 의외의(?) 수확이었다. 전두엽이 고장 난 내 머리로 이렇게 이해가 잘 되다니! 의식과 비의식의 영역, 의지력의 두 얼굴, 행위의 자동화 등 습관을 파헤치는 데 학문적 접근과 생활 영역에서 흥미로운 생각거리가 많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 인간도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은영의 화해'는 예전에 칼럼 몇 개 읽은 기억이 있다. 오은영 박사가 이 분야의 권위자인 건 알았지만 TV를 거의 보지 않아서 유명한 방송인(?)인 줄은 몰랐다. 권위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담담하지만 단호하고 그러면서 따뜻한 필체는 이것이 전문가의 내공이구나 싶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안고 사는 이들뿐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찾는 누구든 읽으면 좋을 책이다.
새 습관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의욕을 불태우던 때, <예민한 사람도 마음이 편해지는 작은 습관>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해빗>과 <습관의 디테일>에서 누누이 강조한 작은 습관보다 '예민한 사람'에 시선이 꽂혔다. 이 책을 읽어야겠군! 난 게으른 것뿐이었나 싶게 예민의 온도차가 다르다가도 어떤 부분에선 날 봤나 싶어 놀라기도 했는데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실제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었다고 한다. 행간마다 조곤조곤 섬세한 향기가 괜히 도는 게 아니었어. 다만 단것을 먹지 말라는 대목은 과격했다(저걸 다 안 먹으면 뭘 먹나요...)


<시작의 기술>은 시퍼런 땡땡이 리커버가 무의식으로 작용해서 읽은 것 같다. 호통치는 자기계발서, 신선하군. 저자의 다른 책 <내 인생 구하기>는 제목에 혹해서 봤는데 이걸로 인생을 구하긴 힘들 것 같은데... 다만 우리의 앞날을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하는 것에 비유한 것은 울림이 컸다. 미래는 만드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것.
자기계발에서 간증형, 구루형, 호통형, 학술형 등등 성격은 다르지만 요지는 같다. 인정, 행동의 촉구, 스몰 스텝, 관찰자 전략, 끼워넣기, 덮어쓰기, 축하하기 그리고 무한 반복. 중요한 건 '작게'다. 스몰 스텝은 복리의 마법으로 나타난다. 뭔가 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근데 조금씩, 꾸준히 해보자는 글쓰기를 몰아서 한 번에 쓰고 있다. 오 신이시여...... 하지만 축하하자. 한 게 어디야. 글도 길어졌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