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를 쓴 앨버트 잭이다. 특유의 영국 유머도 여전하다. 주요리(본문)에 양념(역주와 원어명)이 과하지만 음식과 역사, 언어(+영국 유머)를 좋아하는 이들은 제법 입맛을 돋을 수 있으리라. 


흥미로운 음식 몇 가지.


청어 피클, 롤몹 Rollmop

베를린 특산물. 포 뜬 청어로 오이 피클을 돌돌 말아 작은 나무 이쑤시개로 고정.

  • 롤몹이란 이름은 롤렌(말다)과 몹스(퍼그)에서 왔는데 동그랗게 눌린 롤몹의 옆 모양은 퍼그의 얼굴과 비슷하다.
  • 독일식 숙취 해소법인 '카테르프뤼스튀크'에는 흔히 롤몹을 곁들인다. 이 숙취 해소법의 뜻은 '고양이의 아침밥'이다.
  • 개털 the hair of the dog은 아침에 숙취 해소로 술을 두어 잔 마신다는 관용구로 쓰인다. '고양이의 아침밥'과 '개털'이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패곳 Faggot

    소시지와 미트볼의 중간 형태. 다진 자투리 고기와 내장, 빵가루, 양파를 섞어 만들고 보통은 그레이비를 곁들여 먹는다.

    • 내가 아는 (영화에 종종 나오는) 그 패곳 맞나 했는데 그 패곳 맞다. 원래 패곳은 크기 단위로 3피트나 4피트 길이의 막대기를 2피트 둘레로 만든 다발이다. 
    • 어원은 그리스어 파켈로스 phakelos → 고대 프랑스어 파고 fagot → 패곳 faggot. Faggot은 현대 영국 영어에서 '고기 경단'과 '나무 한 단'의 뜻으로 여전히 쓰인다.
    • 파켈로스는 파시즘의 어원이기도 한데 이 지독한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패곳은 중세에 야만적인 맥락으로 쓰였다. 존 위클리프를 추종하던 롤러드파를 처단하기 위해 1414년에 수립한 '불과 패곳 의회'처럼. 패곳은 화형식 장작으로 쓰여 이단자들을 불태웠다.
    • 화형식이라는 '리얼리티 쇼'를 보기 위해 군중이 모이고 음식 행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패곳을 팔아댔다. 패곳에 불이 붙기 전 군중은 간식으로 패곳을 먹으며 쇼를 기다렸다. 
    • 저자의 경고 : 패곳은 여전히 영국 전통 요리지만 미국에서 패곳을 주문하면 안 된다. 오해받을 수 있다.


      국민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

      •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가 <해기스에게 바치는 노래>를 쓸 정도로 해기스 Haggis는 18세기에 이르러 국민 음식이 되었다. 번스의 생일(1월 25일)에 함께 해기스를 먹고, 역시 번스가 쓴 시에 곡을 붙인 <석별의 정>을 부르는 '번스 나이트'는 스코틀랜드 전통이다. 
      • 스코틀랜드는 제임스 2세와 그 자손을 지지하는 자코바이트의 최대 지지기반이었다. 자코바이트 반란이 거듭되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억센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쓴 <해기스에게 바치는 노래>는 익살스러운 풍자시 같지만 실은 잉글랜드의 탄압에 맞선 문화 저항이었다.
      • 굴라시 Goulash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소련의 압제를 거치면서 헝가리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헝가리는 '굴라시 공산주의' 등으로 서서히 자유주의 체제 기반을 닦아나간 끝에 1989년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다. 소박한 소고기 스튜였던 굴라시는 해기스가 그랬듯 헝가리 국민 요리로 거듭나면서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 무솔리니의 적들은 무솔리니가 파스타 Pasta를 금지할 것이라는 소문을 전략적으로 퍼트렸다. 실제로 무솔리니는 파스타를 장려했지만.
      • 파스타를 거리낌 없이 비판한 이들은 미래파뿐이었다. "숨 막히는 둔감함, 느려터진 심사숙고, 툭 튀어나온 배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은 미래파가 멸시하기에 충분했다. 미래파가 오래가지 못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 보면 지지자들이 너무 배고팠을 것이다."


      중국 요리

      • 삶기와 찌기는 음, 볶기와 굽기는 양의 기술로 간주하는 것은 도교의 영향.
      • 기름진 북경오리에 파채를 곁들이는 등 음식의 균형과 식사 시 친목을 중시하는 것은 유교의 가르침.


        크리스마스 음식

        • 1644년 올리버 크롬웰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금지하고 민스파이 Mince pie를 없앤 이래 민스파이는 여전히 불법이다. 즉, 크리스마스에 민스파이를 먹는 건 위법 행위인 셈이다. 
        • 전통 크리스마스 푸딩 Christmas pudding은 13가지 재료로 만들어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를 기린다. 대림절 마지막 일요일에 동방박사의 여정을 좇아 동서 방향으로 휘휘 저어가며 만든다. 
        • 크롬웰은 크리스마스 푸딩 역시 금지했다. 가톨릭과 척지는 교회 모두 푸딩에 적의를 보였다. 퀘이커가 특히 그랬지만 이는 파스타에 대한 미래파의 저항과 다를 바 없었다.


          + 해보고 싶은 터키 요리 이맘 바일디 İmam bayildi

          오죽 맛있으면 '이맘이 기절했다'가 요리명일까. 구하기 쉬운 재료로 입맛에 따라 응용도 가능하다. 아, 이맘이 기절한 이유가 아낌 없이 들어간 올리브 오일 때문이란 설도 있다. 당시 올리브 오일은 금보다 귀했기에. (그야말로 재산 거덜 나도 모를 맛).




          이 음식 만들어 먹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한 책 하나 더. 요리책은 아니다. 일본 안과의가 쓴 <1일 1분 시력 운동>으로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안구 운동과 식단을 소개한다. 대부분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의사가 쓴 책이라 좀 깐깐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식하라는데 기준은 식사 후 바로 달릴 수 있을 정도 혹은 산에 오르기 전 가볍게 먹는 수준이란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저렇게 매일 먹으면 산도 못 타고 달릴 수도 없을 것 같은데...... 건강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음식 얘기로 돌아와서,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는 '새우 두부조림' 그리고 '토마토 미역 수프'다. 전자는 손쉬운 재료와 조리법 때문에, 후자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다. 둘 다 닭뼈 육수를 사용한다. 새우 두부는 녹말가루를 입혀 노릇하게 튀긴 두부를 뜨거운 물을 부어 기름기를 빼는 약간의 난도가 있지만, 얼추 해 볼 만하다. (눈을 의심하게 만든)토마토와 미역의 조합은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지만 가늠이 안 된다. 먹어보지 않고는 모를 맛이라 언제고 만들어 봐야겠다. 마법의 식재료 토마토 때문에 의외로 맛있을 것 같기도. 설령 망하더라도 눈에 좋다니 먹기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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