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후의 철학
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음, 최승현 옮김 / 이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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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게 명확한 세계에서 인간 또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여기서 인간이 산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가, 무엇이 요청되는가를 묻는 것이다(276). //


    

시노하라 마사타케는 <인간 이후의 철학>에서 묻는다. 인간 세계가 끝나더라도 행성으로서의 세계는 지속한다. 현재를 인류세라 칭할 만큼 지구 시스템이 인간의 척도로 재편되고 있을지라도. '인류'는 종말을 맞을 것이고 이는 46억 살의 지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지구는 8억 년을 홀로 잘 살아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 세계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기후학을 포함하여 현대의 '신비주의'는 우리의 현실 세계를 무어라 정의하기 힘들게 한다. 절대로 '어떤'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이후의 철학>은 인류세를 사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탐구하며 티머시 모턴, 그레이엄 하먼, 퀑탱 메이야수,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사상과 더불어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한계도 짚는다. 니시다 키타로 등 일본 현대 철학자도 만날 수 있다. 요네다 도모코, 오카다 도시키 같은 일본 예술가의 작품과 비욘세, 프랭크 오션의 음악을 넘나들기도 한다. 세상의 소란을 벗어난 곳에 현실 세계가 있다는 저자는 모턴의 논의를 독창적으로 꼽는다. 음악을 필두로 예술과 더불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 바깥에서 사물의 잔향을 탐구한 모턴이 비외르크(비요크)의 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 세계와 지구 사이에는 공백, 수수께끼의 영역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유하는 순간에야 자각되는 어떤 공간. 미디어학자 유진 새커는 이를 '행성'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간 이후의 철학은 비인간적인 장소, 바로 행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인간의 조건을 제시한다.


// 우리는 역사적 세계에 대한 타자로서의 세계를 지구 규모 사물의 침투로 경험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 부재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의 삶을 일부로 삼는 살아 있는 세계이다. 즉 이는 인간의 삶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면서 인간 세계를 다른 생명 형태와의 관련 속에 포함시키는 생생한 생명의 장으로서의 세계이다.우리는 여기 살고 있다(273). //

  '새로운 인간의 조건' 중에서




존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인간 이외의 것에 대한 감수성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강조하는 철학적 사고의 재설정이며, 인류세를 사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 아닐까.


<인간 이후의 철학>은 사변적 실재론을 포함하여 낯설고 어려운 개념으로 가득하다.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 음악을 들으며 언어적 사고를 잠시 멈춰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이 언급하는 비요크, 프랭크 오션, PM 돈을 들어보자. 그러다 보면 지금, 여기 인간의 척도를 넘어 행성에 존재하는 존재의 전체성, 미를 넘어서는 숭고, 형태 없는 형태를 불현듯 감각하게 될지도 모를 테니.



>> 비요크, <오로라> 2001 <<

 https://youtu.be/3dSakkswGYA?si=dQi81gaK3Qc9qmLX



// 오로라에서 눈은 마치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동시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인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눈이 아름다운 것이다(29). //

— 티머시 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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