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싯적 잡동사니를 발견했다. 윤동주, 이육사, T.S. 엘리엇, 릴케, 푸시킨의 시를 적어서 만든 책갈피와 카드 같은 건데, 기억으론 초등 5, 6학년에서 중 1 때 즈음 한창 만들었던 거 같다. 뭔가 오리고 색칠하고 써넣는 게 재밌어서 만든 거지 시를 좋아해서 책갈피로 만든 건 아니었다.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었...... 멋모르고 시를 적은 건 짧지만 멋있어서였을 거다. 아부지 책장을 뒤적일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시였다. 그러니까 내가 시를 탐독(?)했던 시기는 공작 놀이에 빠져 있던 초등학생 때란 얘기. 넘치는 호기심으로 시를 본 적이 이후론 없었던 것 같다.
마침 지나는 길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들렀다. 오랜만에 쓱 구경이나 하자 싶었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이젠 — 그러니까 2월 이후로 — 책을 사지 않겠다는 거(였)다. 있는 종이+전자책 읽고, 빌려 보는 것만으로도 남은 생에 읽을 책은 차고 넘친다는 논리다. 난 책은 좋아해도 다독가는 아니니까. 자금과 공간이 달려서라는 슬픈 변명은 하고 싶지 않...... 근데 알라딘 적립금 탈탈 털어서 '1권' 샀다. 정체 모를 호기심(+허영)으로 '현대 시집'을 산 것이다. 올해 계획은 깨졌다.
<말도로르의 노래>. 고수들도 난해하다고 하는 현대 산문시다. 이 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재봉틀과 우산이 해부대에서 어쩌구 하는 것뿐인데 이것도 대학 때 세미나로 달달 읽을 수밖에 없었던 책 덕분이다.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브르통이 내세운 가장 완전한 보기. 대체 해부대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뭘 어쨌단 말인가. 무슨 의미인지, 어떤 점이 엄청난 건지, 왜 '현대미술의 개념'이란 세미나를 굳이 실기 수업에서 해야 하는지 의아해서 더 각인돼버린 세미나. 교수님은 나중에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된다며 우릴 독려하셨다.

아득해진 로트레아몽 백작과 해부대, 재봉틀, 우산을 확실하게 소환하게 된 계기는 앙리 미쇼의 <주기적 광증의 사례> 때문이다. 애먼 착각으로 교양 과학서 쯤으로 생각해서 골랐는데 막상 포스트모던 시집이라 얼마나 황망했던지...... <주기적 광증의 사례>는 앙리 미쇼의 초기 시선집이다.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 글을 쓰고, 언어로 존재하는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앙리 미쇼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가 바로 로트레아몽이다. 이쯤 되면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자장 안에서 로트레아몽의 영향력 밖에 놓인 작가가 있기나 할까 싶다.
<주기적 광증의 사례>가 나오고 오래지 않아 <말도로르의 노래>가 새로 번역되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냅다 장바구니에 담았건만 나의 묵히기 신공으로 긴긴 침묵을 지키다 2022년 기어코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연히 알게 된 미쇼 덕에, 난데없이 들른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마침내 손에 넣은 <말도로르의 노래>. 기억 속 파편으로 떠돌던 해부대 위 재봉틀, 우산. 해묵은 호기심으로 책장을 뒤적인다. 대체 어떤 불꽃을 일으켰는지 이제 보게 될 터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 말이 틀린 건 아닌가 보다. 피와 살까진 아니지만 세포 1개 정도에 남은 배움 덕분에 해부대, 재봉틀, 우산을 잊지 않은(못한) 건지도 모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