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인상적인 묘사 중 하나.

팡글로스는 온통 부스럼이 나고 퀭한 눈에 코끝은 문드러지고 이는 새까만 거지꼴이 되어 캉디드와 재회한다. 그 고상하던 철학자가 처참한 몰골로 지독하게 기침을 해대며 그때마다 번번이 이를 뱉어 내다니! 한데 저 몰골이 되고도 여전히 예정조화설을 신봉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으니 측은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워 실소가 절로 난다. 아, 볼테르는 어쩜 이렇게 글을 재밌게 썼을까! 팡글로스는 당시 유럽에 퍼져있던 마구잡이식 낙관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교수형에 열십자 절개 등 온갖 시련을 겪고도 대철학자 팡글로스는 '예정 조화'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개념이기 때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강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최선을 향해 나아간다."        


처음엔 열린책들로 읽었는데 다른 판본도 몇 가지 읽어보니 저 대목, 사랑의 원인과 결과 및 충족 이유로 불쌍한 지경이 된 팡글로스를 묘사한 번역이 살짝 다르다. 특히 팡글로스가 기침으로 괴로워하면서 그때마다 이를 뱉어낸다/침을 뱉어낸다 두 가지 번역으로 나뉘는데 부북스와 열린책들은 이를 뱉는다고 쓴 반면 문학동네, 한울 등 다른 몇몇 판본은 침을 뱉는다고 표현했다.



불어

Le lendemain, en se promenant, il rencontra un gueux tout couvert de pustules, les yeux morts, le bout du nez rongé, la bouche de travers, les dents noires, et parlant de la gorge, tourmenté d'une toux violente, et crachant une dent à chaque effort.


영어(구텐베르크)

The next day, as he took a walk, he met a beggar all covered with scabs, his eyes diseased, the end of his nose eaten away, his mouth distorted, his teeth black, choking in his throat, tormented with a violent cough, and spitting out a tooth at each effort.


영어(펭귄 드롭 캡스)

The next day, as he was taking a walk he met a beggar covered with sores; his eyes were lifeless, the tip of his nose had been eaten away, his mouth was twisted, his teeth were black, his voice was hoarse, he was racked by a violent cough, and he spat out a tooth with every spasm.


한글(열린책들)

다음날 그는 산책길에 한 거지를 만났다. 그의 몸은 종기투성이였고 눈은 푹 꺼진 데다 코끝은 문드러지고 입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게다가 이빨은 온통 새카맣고 말을 할 때면 코를 킁킁거리고 때로 지독하게 기침을 하였는데 그때마다 이빨을 한 개씩 뱉어내었다. 


한글(문학동네)

다음날 캉디드는 산책을 하다가 거지 하나를 만났다. 그 거지는 종기가 잔뜩 나고 눈빛은 퀭하고 코끝은 빨갛고 입은 비뚤어지고 이빨은 누렇고 목구멍에서 그렁그렁 소리가 나고 심한 기침으로 괴로워하더니 그때마다 침을 뱉어냈다.



불어 crachant는 잘 모르겠지만, 영문 spit은 자동사로 쓰인 것 같지 않은데 왜 한글 번역은 두 가지로 갈리는 걸까? 외형 묘사는 의역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되지만(그래도 시꺼먼 이와 문드러진 코끝이 더 극적이긴 하다) 이를 뱉는 것과 침을 뱉는 건 차이가 있는데. 연민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지경이라면 더더욱. 하기야 불영 번역도 역자마다 다를 테니 두 불영 번역을 갖고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볼테르라면 이를 뱉는다고 표현했을 거 같다. 


극적인 표현이 다소 아쉽긴 해도 ‘에덴동산’과 ‘정원’의 상관관계를 살린 번역과 <미크로메가스>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 끌려 문학동네 버전을 종이책으로 구매했다. 간결하고 강렬해서 술술 읽히는 <캉디드>. 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하지만 촌철살인을 날리는 블랙 유머가 좋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