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일로나 예르거 지음, 오지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선생님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선생님은 이 세계가 물질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하셨고 마르크스씨는 그걸 자기식으로 풀이했을 뿐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 마르크스라는 자와 함께 그 사람의 공산주의를 새로이 정돈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거든요. (175)


찰스 다윈(1874년)과 카를 마르크스(1875년) 

source : wikipedia.org



<두 사람>은 세계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두 인물, 다윈과 마르크스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논픽션은 아니다. 가상의 인물 베케트 박사를 통해 두 사람의 삶의 교차점을 조망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두 인물의 시기적인 연관성에 근거해서 베케트 박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다. 다윈과 마르크스는 비슷한 시기에 지병으로 고생했고 근거리에 살면서 서로의 저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의사인 베케트 박사는 두 사람의 주치의로 등장하는데, 소설은  관찰자적 시점으로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엮어 두 사상가의 성정과 종교적, 사상적 토대를 풀어낸다. 베케트 박사의 생각이 곧 작가 자신이 던지는 질문과 답이라고 봐도 좋겠다. 사실과 허구를 짜 맞추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구멍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영리함도 있다. 두 불온한 사상가, 다윈과 마르크스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정점이다.



이제 잠시 후면 함께 저녁 식탁에 앉을 손님은 무신론자 둘, 그중 독일인이 하나에 거기에 더해 다른 쪽 장인인 것이 아니라, 무신론자 셋 중에 독일인이 둘이었고 최소 한 명은 공산주의자인 상황이었다. (223)



두 사람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다. 진화와 혁명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의 만남에서 날카로운 지적 공방이나 긴장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데 온갖 병치레로 체력이 안 따라주기도 하고, 다윈의 표현을 빌자면 한 사람은 영어가 서툴고 다른 이는 독일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성정과 종교에 관한 이견으로 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순진무구한 안주인이 리드하는 저녁 식사는 웃픈 상황 끝에 어색하게 마무리된다.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다윈의 정원에서 산책하는 두 사람. 역시 어색하게 걷기만 할 뿐 별다른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다윈의 정원에서 마르크스는 문득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상상해 보라. 한편의 그림이자 시적인 장면으로 가슴 뛰게 하는 연출 아닌가. 원제 역시 Und Marx stand still in Darwins Garten으로 울림이 큰 제목인데 부제로라도 책에 반영이 안 된 건 아쉽다.


전후 전개는 이 가상의 대목을 위해 쓰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의사인 베케트 박사의 직업 강점을 십분 살려 소설은 두 사상가 사이에 균형을 잡으며 허구적 장치를 소소하게 쌓아간다. 그러다 가장 극적인 대목에서 설전이 아닌 상황 제시로 풍부한 메타포를 만드는 데 이 먼지처럼 쌓인 허구적 장치들이 한몫한다. 이후 먼지처럼 감흥이 흩어져서 문제지만...소소한 긴장감, 소소한 재미로 읽어 볼 만한 소설.



+ 다윈과 마르크스에 관한 사실 정리


1. 두 사람은 겨우 20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다.

2. 1873년 마르크스는 다윈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헌사를 <자본론>에 써서 그에게 직접 보냈다.

3. 다윈은 감사 인사를 적어 마르크스에게 보냈다.

4. 마르크스는 <종의 기원>을 열심히 읽었지만 다윈은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다윈은 공산주의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시피 했다.

5. 그럼에도 <자본론>은 오늘날까지 다윈의 서재에 그대로 꽂혀 있다. 여전히 전반부 104쪽 까지만 책장이 갈라져 있다.

6. 다윈은 보수적이고 부유한 신사로 자본을 철도 회사에 투자해 재산을 불릴 줄 알았다.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등 그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적 활동에 부정적이었다.

7. 마르크스는 거친 성정과 저주의 말을 해대는 불같은 성미의 사람이었다. 앵겔스와의 서신을 보면 “개새끼”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8. 다윈과 마르크스는 어릴 때 목숨을 잃은 자식이 여럿 있었다. 특히 가장 아끼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겪었다.

9. 두 사람은 속울렁거림, 기관지염, 편두통, 불면증, 피부병에 시달렸다. 둘 모두 아편을 처방받았다.

10. 두 사람은 생각이 많을 때면 특정한 경로로 걷곤 했다.

11. 무엇보다 둘 다 멋드러진 수염을 가지고 있다. 


+ ‘탈탈 털리다’라는 표현이 원래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인지 궁금해졌다. 


+ 작년에 읽고서 이제야 정리를...게으름을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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