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세미나 - 인생을 항해하는 데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대니얼 멘델슨 지음, 민국홍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오늘이 바로 내일이에요. 

- 영화 <사랑의 블랙홀> 中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기상캐스터 필 코너스는 매사 냉소적이다. 그러다 성촉절 취재 차 간 펜실베니아의 펑추토니에서 매일 같은 날을 반복하게 된다. 타임루프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즐거운 일탈도 잠시, 똑같은 하루하루가 지겨워 자살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심술궂던 필은 차츰 주변에 눈을 돌려 노숙자 노인을 도와주는 등 이웃의 대소사를 살피고 자기개발에도 열중한다. 필에게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이제 늘 같은 오늘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기 보다는 좀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어느 지점에서든  어느 시점에서든 출발할 수 있는 여정이 된 것이다. 반복되는 시공을 맴도는 여행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필은 이 모든 것을 버텨내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풍요로운 인간이 되어 마침내 저주에서 벗어난다.



원을 돈다는 것

<오디세이 세미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오디세이> 텍스트를 나침반 삼아 함께 한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인 대니얼 멘델슨은 대학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 제이 멘델슨이 이 수업을 청강하면서 부자의 여정은 시작한다. <오디세이> ‘세미나’라고 해서 서사시의 구조나 서구 문명화에 대한 비유와 상징이 넘쳐날 거란 생각은 마시라. 이 책은 미국 어느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이자 우리네 삶의 얘기다. 50년 전 지루한 선회를 거쳐 집으로 돌아온 여행 이후로 가장 멀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여행이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아들의 이야기,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두 번째 서른이 돼서야 <오디세이>가 인생지침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50년 전 꼬마 대니얼에게 아버지는 여행에 관련하여 수수께끼를 낸다. "아무데도 가지 않으면서 어떻게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을까?” 정답은 “원을 돈다”이다. <오디세이>의 첫 수식어 ‘폴리트로포스’  polytropos는 회전을 많이 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충분히 방랑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오디세이 세미나> 역시 그 원형 原形이 그렇듯 수학자였던 아버지와 문헌학자인 아들의 이야기가 각자의 궤적을 그리다 어느 지점 - 혹은 시점 - 에서 함께 선회하는 원형 圓形 구조를 따른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오디세이>를 세밀하게 읽으면서 큰 그림은 무엇이고 조그만 것들이 큰 그림에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가르치는 데 이런 문헌학적 독법과 <오디세이>의 궤적을 따르는 유람선 여행을 통해 멘델슨 부자의 교감은 차곡차곡 쌓인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것

<오디세이>는 뮤즈가 원하는 임의의 시점, 혹은 지점에서 시작한다. ‘아무도 아닌’ 한 남자가 트로이 전쟁 후 귀국길에 오른 지도 7년이 지났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 아내를 만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이 남자는 트로이 목마로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군주 오디세우스다. 이처럼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중요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이름과 유사한 발음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책략의 대가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와의 싸움에서 이를 영리하게 써먹는다. 네 눈을 찌른 게 누구냐고 묻는 동료들에게 폴리페모스는 ’아무도 아니야’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도망가면서 자만심으로 신상을 노출하는 통에 ‘아무도 받지 않을’ 저주를 사서 받는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데 10년이 걸린다. 


폴리페모스의 동료들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게 ‘누구냐’고 묻는 것 역시 오디세우스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언어유희라고 저자는 짚어준다. 그리스어로 ‘누구냐’(me tis)는 ‘술책’(metis)과 발음이 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에서 참과 거짓이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 세미나를 마치고 <오디세이>의 행적을 좇는 유람선 여행에서 저자는 아버지 제이 멘델슨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놀란다. 아들이 보아온 심술 맞고 완고한 노인은 유람선에서 호방하고 트인 노신사가 되어 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1930~40년대 자신감과 영악함, 건방진 행동의 시대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노인네라는 것을 깨닫고 저자는 정체성은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원의 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파노라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한 것

여행을 뜻하는 영어단어 중 ‘journey’는 본디 ‘하루에 한 것’이라는 프랑스 고어 ‘jornee’에서, 궁극적으로는 라틴어 ‘diudrum’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먼 옛날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달할 때 도로상의 ‘거리’보다 하루의 이동을 표현하는 것이 편했고, 자연스럽게 하루에 이동한 것이 여정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 ‘travel’은 감정의 영역으로, 여행의 고됨을 품고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오디세우스의 이름 Odysseus에 들어 있는 ‘odyne’은 고통이라는 뜻으로 ‘odyssey’는 오랜 방랑과 모험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방대한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타임루프의 저주에 빠진 필. <사랑의 블랙홀>의 원제 ‘그라운드호그 데이’ groundhog day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좋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는 관용어가 된 지 오래다. 필은 리타에게 이런저런 수작을 부리지만 호감을 사는 데 매번 실패한다. 하루하루 반복해서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진정으로 리타를 마주하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시를 읊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된다. 오늘은 무한히 반복되지 않는가. 어느덧 필은 지성과 예술로 충만한 삶을 살고 사랑도 이루게 된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필이 타임루프에서 보낸 시간이 족히 10년 이상은 걸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은 이타카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스 경제 위기로 전국적인 파업이 일어나는 통에 멘델슨 부자는 여행의 정점이자 최종 목적지인 이타카에 갈 수 없게 된다. 대신 저자가 번역하여 출간한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스의 시 <이타카>를 주제로 조그마한 강연을 연다. 카바피스의 <이타카>는 “도착하지 않는 것의 덕목”을 노래한 시로 예상치 못한 여정을 대신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항상 당신 마음에 이타카를 유념하라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너의 최종 목적이라네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서두르지는 말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 

이타카가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도중에 획득한 것으로 풍요로운 노인이 되어

그 섬에 닻을 내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오



저자의 말대로 이젠 대중문화 속 상투적 문구가 돼버렸지만 여행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인생의 의미는 인생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변화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달렸다고 저자는 재차 강조한다. 마침내 타임루프의 저주에서 벗어난 필은 펑추토니에 닻을 내린다. 1초도 있기 싫다며 치를 떨던 곳에서 말이다. 멘델슨 부자는 이타카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침반은 제 역할을 다했다.


이타카가 형편없다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그녀가 당신을 속인 것이 아니오

당신이 언제인가 많은 경험을 쌓고 현명해질 때

그때서야 당신은 이런 이타카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멘델슨 부자의 여정을 좇다 어느새 그 원형 原形을 다시 꺼내 본다. 이 그리스 고전은 이번엔 어느 방향으로 가는 나침반이 되어줄까?



#원탁의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