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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평점 :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작가 엄우흠과 문맥상 너무나 어색한 책의 제목 "마리의 돼지의 낙타"를 만났다. 마리와 돼지와 낙타, 그 셋이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경찰이란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경수 아버지는, 새로운 인연과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함으로 또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경찰을 그만 두면서 커피숍에서 분식집으로, 문방구에서 통닭집으로, 재기를 위한 도전이 번번히 실패를 돌아가고, 실패만큼 빚은 쌓여만 간다. 경수 아버지가 겪은 여러번의 실패는 『마리의 돼지의 낙타』 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무동' 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한다.
위성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무동'은 도시에서 밀려난 실직자와 철거민들이 모여 정착하는 곳으로, 경수아버지에게는 피난처를, 경수에게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성장해가는 어릴 적 동네가 되어준다.
경수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이 그러하듯, 인연이란 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 인연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인연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될 수도, 또 다른 삶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의 돼지의 낙타』 에서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짜놓은 극본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우리의 순간적인 판단과 강하게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자연스러움이라는 가면에 가려져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듯 보인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어쩜 이렇게까지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인연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던 제목 『마리의 돼지의 낙타』 의 비밀이 드디어 밝혀졌다. 믿는다 안 믿는다의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서로를 가족의 울타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소녀 마리와 돼지 그리고 낙타, 마리와 무동 그리고 경수아버지, 그들의 인연은 믿음에서 오해로, 죽음과 숨어버림으로 서로가 맺은 인연을 끝마친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 에는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고, 인연은 오해로 새로운 삶과 마주하게 하고, 오해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경수네 가족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인연이란 줄기는, 쉴새없이 뻗어나가 새로운 인연 줄기와 만나고, 그 줄기는 다시 상대를 찾아간다. 마치 이야기가 자유를 얻어 세상 구석구석을 날아다니듯, 그들의 인연또한 멈춤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과거의 인연이 현재의 시간으로 등장한다. 그들에게 인연은 다음 세대에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 를 읽으면서 나 한사람이 시작한 인연의 줄기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어디까지 뻗어나갈수 있을까? 인연이 가진 색은 어떤 빛깔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치 무동 사람들의 인연이, 인연에서 인연으로 연결되어 가듯이 말이다.
『마리의 돼지의 낙타』 는 그동안 읽어왔던 책과는 좀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고, 그 관계 속에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 주고 받은 상처로 무너지기도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만큼,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어떤 인연으로 관계를 형성해가는지를 따라가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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