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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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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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틈으로 또 다른 세상을 갈구하는 여자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난 표지는,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고, 여자가 바라보는 세상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유혹이 나를 반긴다. 여자가 있는 세상과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여자가 간절하게 바라보는, 보고 싶어하는 그 세상엔 무엇이 있을까? 물음표를 품고 읽기 시작한 『훔쳐보는 여자』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은 멈추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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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10대에 낳은 딸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것보다 나은 환경을 주고 싶어 입양을 보낸다. 10년 전에. 그 후 오텀은 7년이란 시간동안 노력과 우연이라는 기적으로 입양 보낸 딸 그레이스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그레이스를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진짜 엄마의 사랑이고, 잘 성장하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오텀의 진짜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레이스를 입양한 그레이엄과 대프니, 두 사람은 따듯한 가정을 일군 부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이고 싶기에 대프니는최선을 다한다. 항상 정갈하고 사랑받은 여자가 되기 위해 준비된 여자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을 SNS에 올리는 것으로 인정받는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리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대프니의 꿈같은 삶은 어느 순간 금이 가기에 이른다. 그레이엄이 대프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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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그레이스가 있는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벤'의 주위를 맴돌고 결국 한집에 살게 이른다. 대프니의 SNS 계정을 살피면서 그녀의 모든 것을 익히고, 그들의 공간을 살피면서 그레이스와 함께 할 행복한 하루를 꿈꾸며 살아간다. 오텀은 그레이엄, 대프니 가정의 돌보미로 되고, 그레이스와 가까이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행복한 시간과 더불어 대프니의 비밀스런 대마초 흡입과 그레이엄의 또 다른 사랑과 마주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이 아이를 포기했다.

아름답고 순수한 이 작은 영혼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내 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본다. 그레이스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곧 다가올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더없이 순수하고 행복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레이스의 얼굴을 감싼다. 대프니가 진작에 그레이스에게 해줬어야 할 행동이다.

바쁜 아침이지만 단 몇 초만이라도 울고 있는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걱정을 덜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대프니는 정말 이기적인 여자일까?

제발 그녀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길 신께 기도한다. 그 누구도 내 딸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기를. 특히 내 딸의 가짜 엄마가.

훔쳐보는 여자. 290~291쪽

 

자신의 딸을 만나기 위해 벤의 곁을 지키는 오텀, 타인의 눈에 완벽한 가정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놓아주지 못하는 대프니,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대프니의 남편 그레이엄, 그레이엄의 사랑을 받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는 벤의 여동생 마르니. 오텀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고자 간절히 원하는 벤. 이들은 제일 가까운 이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면을하나씩 쓰고 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긴장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필요한 방어와 적응 기제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쳐보는 여자』 의 인물들의 모습은 안쓰럽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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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선택한 대마초는 대프니의 온전한 모습을 잃게 하고,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완전한 가정도 잃게 만든다. 오텀은 자신의 딸 그레이스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대프니와 같은, 대프니처럼 완전한 엄마가 되고 싶어했으나, 오텀은 온전한 자신을 버린 또 다른 인격체라는 것이 밝혀진다. 부인의 가면 뒤에서 자상한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쇼가 숨막혔던 그레이엄은 또 다른 사랑을 얻으면서 가정은 서서히 금이 가고, 부인을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사랑의 희생양이 되도록 만든다.

얽히고 얽힌 그들의 이야기는, 긴장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누가 언제 폭탄을 던질까 조마조마하던 나의 마음에 피~익 하며 바람이 빠지는 듯한 나른함이 깃들어온다. 아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되고, 또다른 이의 침입이 밝혀지면서 바짝 하고 있던 긴장이 확 풀려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지 못했던 오텀의 과거가 심리학자로부터 풀려지고, 그녀의 닫혀진 과거의 문이 열리면서 그녀 또한 가해자이며 희생양이었던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한 방법으로 오텀의 인격 뒤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일종의 방어기제를 사용한 것이다. 휘트모어 박사는 내가 계속 트라우마와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트라우마와 맞서야'할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사라가 되는 건 진짜 싫다. 사라는 불안하고 지루하고 걱정도 많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으며, 그녀의 마음은 하루 종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그녀는자기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자신, 즉 사라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훔쳐보는 여자. 418쪽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 한 여자의 가면으로 시작된 이야기 『훔쳐보는 여자』 는,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불안감에 휩싸인 오텀의 시간과 마주하게 한다.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 여인과 완벽한 삶을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여인,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삶을 기웃거린 이들의 비극이 『훔쳐보는 여자』 를 통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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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 -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법
앨리슨 데이비스 지음, 윤동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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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빠르게 지워지는, '순식간'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시간 속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숨가쁘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말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한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고 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아주 바쁘게, 때로는 아주 정신없게, 가끔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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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무늘보'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 싶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하면 떠오르는 '나무늘보'의 생활패턴과 삶의 방식을 살펴보고 그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우리의 일상 속에 곁들여보는 이야기 『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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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는 참 느리다. 그리고 '빨리 빨리'와 어울리지 않는 둥글고 커다란 몸집을가지고 있으며, 거꾸로 매달려 나무를 이동하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생활모습을 보이는 귀여움과 안쓰러움이 곧 웃음으로 대신하게 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무늘보는 말한다. "조급함은 떨쳐버리고, 차분하게, 걱정은 뒤로하고, 느긋하게,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이것이 바쁜것이 잘 살아가는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는, 바쁜 생활속에서 허우덕거리면서 막연하게 자신을 떠올리는 우리를 바라봐준다. 무조건적인 휴식이나 여유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나와 변화될 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또한 지금의 자리에서 나의 잘못을 꼬집어내면서 자신을 스스로 상처내는 일도 없이 우리가 지금 해야 되는 일, 실천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전달해준다.

 

나처럼 매력적으로 사는 비결을 알고 싶지?

그건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에 달려 있어.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는 나처럼, 마음속에 숨어 있는 슈퍼히어로를 불러내면 넘쳐나는 가능성과 선택의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야.

누구나 세상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테리 프래쳇

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 46.47쪽


우리는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싶은 강한 충동을느끼지만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금 일어나 내 자리라고 하는 곳을 찾아간다. 우리는 용기보다는 쉬어가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바쁘게 움직이고, 하는 일이 뚜렷해야만 잘 하고 있다고 인정해 주었기에 우리 또한 그 패턴에 자연스럽게 녹아버린 듯 싶다. 쉬었으면 일어나야 하고, 일어났으면 걸어야 하고, 걸었다면 이제 뛰어올라야 하는 것, 우리는 지금껏 자신을 훈련시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인정받는 또 다른 나를 꿈꾸면서 말이다.

 

namu4.jpg『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 는 하루에 다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잘 읽혀지는 글로 담겨져 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무겁지 않고, 누구나 읽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쉽게 풀어낸 글이다. 그렇게 쉽게 읽혀짐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을 지난 뒤에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왜 그러지? 하고 생각해 보니,나무 늘보가 우리가 전하고자 메시지 속에는 그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그 간절함이 나에게 작은 울림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꽤 오래도록 나에게 머물렀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나무늘보는 말한다. 우리에게. 자신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후회되는 일에 오래도록 집착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집중하고, 자신에게 감춰진 재능의 빛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너 역시 마찬가지야. 너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바로 너야. 너다운 너를 지켜가기 위해 스스로 다짐하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성취해 나가봐. "잘하고 있구나. 대단한 걸 !"이라고 칭찬하는 것도 잊지 말고.

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 66쪽


『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는 온전한 내가 온전한 시간을 누리길 바라는 이에게 참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을 위한, 자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책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읽는 동안 평온하고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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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시
은기에 지음 / B&P Art&Culture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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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기에'라는 작가명보다는 '녹색도시' 작가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는 작가의 바람이 실린 이야기 『녹색도시』는 평범함을 벗어난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과감히 표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이야기, 언젠가는 이란 수식어가 무서우리 만큼의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가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식물'로 변해가고, 도시는 녹색으로 물이 들고, 식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간의 모습과 식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쥐떼의 모습 그리고 쥐를사육하면서 인간을 먹이로 던져주는 또 다른 부류의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오싹한 기운이 피부에 내려앉는다.

'정태우'는 녹색으로 물든 도시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간이다. 완전한 식물로 변하기 전 식물화로 되어가는 과정의 인간들의 모습과 식물화가 된 인간의 모습을 작가 '은기에'의 손을 빌어 글로 그 시간 그 공간의 모습들을 전달한다.

'운이 좋았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니, 그것도 멀쩡하게. 아직 난 죽을 운명이 아닌 듯하다.

휘잉-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 주는 것 같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눈에 담는다. 이제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식량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 무거워진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거워진다. 생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익숙함을 버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동안 지내왔던 곳, 그리고 수많은 추억거리들을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나야 한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자랑스럽기 보단 죄스럽다. 곧 고개를 저으며 손등에 깊게 패인 흉터를 바라본다. 살아야 해. 엄마를 위해서라도 동생을 위해서라도. 난 기필코 살아남아야 해. 난 끝까지 가야만 해. 그래서 식물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인간의 시대가 돌아온 것을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해.

72~73쪽.

 

녹색도시에 등장하는 식물은, 모두 인간이었다. 서로 경쟁했으며, 자신의 탐욕에 스스스로 무너지기도 했던,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식물화'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가려진 인간의 이면을 표현하고자 한 시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물화가 진행되는 인간에게 검을 휘둘러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단 하나 식량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식량은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부족한 현실 앞에 인간의 선택은 단 하나. 누군가의 희생을 물어서라도 나 하나 살아가고자 하는 것, 이것은 욕심과는 별개로 본능이고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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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시』의 책장을 넘기면서 식물이 되어가는 인간을 모습을 보면서, 혹시 「반지의 제왕」속 엔트 족과 같은 자연물의 한 집단의 등장을 떠올렸다. 그러나 누군가의 침략과 방해로 전투를 준비하는 엔트족과는 달리, 인간이 식물이 되어가는 설정은 무척 생소했으며, 요즘 등장하는 좀비와 흡사한 변형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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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을 한 무리에서 식물화가 되어가는 인간은 서로가 적이 된다. 또한 그들을 죽임으로써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은 유일한 식량이 되기에 칼을 휘두름에 있어 망설임은 있지만, 죽임에 대한 죄의식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당연한 절차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선택이라면 말이다.

『녹색도시』에서의 선택은 그리 폭이 넓지 않다. 다만 인물들이 놓인 상황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가 아닌 그럴 수도 있다는 무언의 긍정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이기에 가능한 선택이 아닐런지.

 

"같은 입장이고 같은 처지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목숨 걸고 싸워오면서 버텨왔어. 그걸, 앞으로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 더군다나 우리는 이렇게 똘똘 뭉쳐 있잖아? 같이 열심히 싸워보자고. 그럼 분명 살길이 열릴 거야."

 젊은 두 남자의 눈은 불타고 있다.

"알겠어요. 여기가 마지막이라도, 끝까지 싸울 거에요."

선주의 용기 있는결단에 젊은 두 남잔, 그를향해 승리의 브이를 날려보낸다.

매번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것을 넘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더 살고 싶어 함께 모여 있다. 열심히 그리고 후회 없이 싸울 것이다. 그러나 죽어도 된다. 이번엔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330~331쪽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방향을 보인 『녹색도시』에서 서점에 들린 정태우가 책 냄새에 파묻혀 식물화된 인간들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었던, 치열한 현실에서 잠깐의 쉼을 갖는 장면이 있다. 책 냄새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 마치 작가 '은기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가리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자신이 불리해지거나 위기에 봉착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힘을 발휘해 순간을 모면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인지 부정적인 결과인지는 그 뒤에 치뤄야 할 자신의 몫으로 남겨진다. 『녹색도시』를 통해 인간과 식물화가 진행되는 인간 그리고 식물이 된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보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식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내면 속의 울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짧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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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 2018 제12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1
조우리 지음 / 비룡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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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왜 이렇게 아파해야 할까요?

왜 이렇게 맘대로 되지 않을까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왜?

왜일까요?

청소년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그들이라면 꼭 한번은 묻고 싶은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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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리 작가의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는, 조금 새롭게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인물들이 서로 얽혀있고, 서로 관계맺음이 되어 있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준다. 한 공간 속에 함께 하는 인물들을 마치 다른 세계 속의 인물처럼 시작했다가 하나로 모여지는 응집력을 가진 이야기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를 만나본다.

           

이재경

김하연

이수영

천현준

연보라

최민기

           

서로가 다른 힘겨움으로 십대를 지켜내고 있는 6명의 아이들. 고작 열일곱 열여덟인 그들의 겪어나가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뭐가 이렇게? 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왜 그들이 그렇게 힘에 겨워하는지, 왜 아무도 몰라주었을까 하는 답답함에 깊은 숨이 쉬어지다가도 순간, 부모의 자리가 어디까지 인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좋아해서, 그게 잠깐의 불장난일지라도 그순간은 진실이었는데 그 결과로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긴 하연이는, 시도때도없이 울어버리는 아기가 원망스럽고, 아기를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연이 동생으로 호적에 올린 엄마도 원망스럽다. 그리고 가장 원망스러운 건 하연이 자신이다. 세상에서 외떨어진 것만 같은 쓸쓸함을 배워가는 하연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재경이의 눈빛도 부담스럽다. 재경이에게 일어난 신체 변화에도 하연이는 무감각할 뿐이다. 재경이의 빨갛게 물들어가는 얼굴의 변화를 지켜볼 만큼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처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경이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과 신체의 변화 사이에서 외롭게 싸운다. 재경이 앞에 나타난 부모님은 일을 부풀리고 부풀려 사건을 크게 만들고 더이상 학교에서 버틸 힘이 사라진 재경은 자퇴라는 최후의 선택을 내리게 된다.

 

친구와 하룻밤의 즐거움에 도취된 수영이, 항상 외로웠단 수영이에게 보라는 자유와 벗어남의 탈출구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탈출구가 때로는 들여놓지 말아야 하는 또다른 세계의 입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수영이는 보라를 데리고 뛰쳐나온다. 탈출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수영과 보라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비웃음을 사야하고, 부모의 가슴에 공허함을 안겨주고 만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 암담한 자식과 텅 빈 복도에서 무릎 꿇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그들 앞에 우린 조용히 자리를 비워줄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자식이라서 부모라서 이미 지나왔고, 또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고생처럼 까르르 웃으며 잡고 있던 내 손을 세게 꽉 쥐었다. 엄마에게서 받은 어떤 전류 같은 것이 찌르르 내 몸으로 흘러온다. 엄마는 내 눈을 잠시 바라보다 나를 꼭 안아 줬다. 내 키가 엄마보다도 큰데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영아, 엄마는 말이지. 네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한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끄덕끄덕했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마 위로 부드럽게 바람이 분다. 엄마랑 떡볶이 먹기 딱 좋은, 4월의 밤이다.

93~94쪽


현준이는 오늘도 아빠를 찾아본다. 아빠에게 진한 부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빠의 부재와 함께 아빠에 대한 사소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찍혔다는, 봤다는 제보자에게 시간을 할애하면서 아빠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스스로를 위안삼아 본다. 그러나 곧 그의 정체를 알게 되고, 아빠는 병원 냉동고에서 현준이와 마주한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보는 게 좋아. 내 인생이 나은 것처럼 느껴져. 마음에 위로가 돼."

남자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미친놈이다.

"사라진 지 14개월이면 이제 뭐 다 됐네. 그거 알아? 희망을 완전히 잃어야 절망도 끝나는 거야. 희망이 없을 때 절망하는 게 아니고. "

[중략]

"왜?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심심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갑자기 필요로 하잖아."

111~112쪽.

 

우리 인간은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신호를 보낸다. 십대들의 반항도 부모, 친구, 교사 등 대상은 다르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 더욱 거칠고 강하게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마치 중독성처럼 점점 깊게 상처를 내야만 반응이 전달되기 때문에 점점 더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행위로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상처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우리의 십대들은 모두 아프다. 잘나도 아프고 못나도 아프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 또한 아프다. 그들이 겪어내는 많은 일들이 어른들의 눈에는 어린 녀석들의 발악쯤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만나는 학교라는 세상과 사회라는 세상은 권리와 의무, 경쟁과 유혹으로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성장 속도와 그들보다 앞서고 있다고 자부한 어른들의 성장 속도가 다르다면, 누가 누구에게 맞춰가야 하는지 생가해 본 적 있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나는 싫다. 다만 꽃을 피우기 위해 그 시간만큼 기다릴 줄 아는 청춘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그대들이 제일 어여쁜 청춘이고, 십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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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끝의 검은덩이
이주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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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액자와 시선을 회피한 여인의 모습에서 쓸쓸함과 우울함이 느껴진다. '검은덩이'라는 제목의 단어에 마음이 걸려 한참동안 책장을 열어보지 못한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겠구나 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 이주숙님의 두번째 책으로 세상에 나온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내가 짐작하고 앞으로 나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짐작하고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글이 흘러가기에 거스릴 수 없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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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어떤 삶을 이루어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와 세상을 살아간다. 내가 꿈꾸는 대로 이루기도 힘들 뿐 더러,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삶의 모습이 완전히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예기치 못하고 살기에 삶이라고 하고, 삶이기에 우린 더 애써보고 노력하고 힘을 내어본다.

『시선끝의 검은덩이』의 중심에는 '김정희'라는 인물이 있다. 김정희는 아버지가 지어보일 수 있는 인자한 미소와 나긋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학생들의 사랑을 한껏 받는 물리교사이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그림자와 같은 아내 '이선희', 그녀는 부산에서 화가의 꿈을 꾸며 서울로 유학온 아가씨로 김정희와는 교사와 제자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들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교복입은 여학생에 대한 집착으로 이선희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화가보다는 학교재단 이사장 부인이라는 직함에 대한 부모의 욕심으로 관계는 결혼이란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다.

'김정희'의 성도착증은 '이선희'에서 그치지 않고 '김영신'으로 또 다른 여학생으로 번져간다. 그의 병적인 행동은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선명하게 남은 채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김정희의 불안정한 성에 대한 집착과 김정희 엄마와 이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암투, 꿈꾸는 소녀 이선희와 부모의 권력 욕심, 스스로를 이겨내려는 김영신 그리고 부인에게 떠밀려 사라진 존재로 남은 아빠와 허영심 가득한 엄마, 김정희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오형사. 『시선끝의 검은덩이』를 이끌어가는 인물과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인물들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들이 단편으로 그려진다.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그 어느 것도 나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김영신의 몸에서 자라고 있는 김정희의 아기를 알아본 이선희의 분노와 배신감은 영신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해 주는 도움으로 전환되어 '김정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김영신과 이선희의 절친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십대 소녀를 혼자 두고 남자를 따라 외국으로 재혼해서 가는 김영신의 엄마, 언니의 눈을 속이고 형부를 사랑한 처제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정희 그리고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 갇힌 언니이자 김정희의 서류상 엄마. 인물들의 관계 또한 서로 얽히고 얽혀 하나를 풀어내면 또 하나의 실이 엉켜 들어온다.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끝까지 김정희를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사라진 영신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남자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우리는 김정희의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하면서도, 대체 누가? 언제?어떻게? 라는 의문을 갖도록 남겨둔다.

이선희가 김정희의 아이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애썼지만, 결국 어디선가 영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 그렇게 애썼지만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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