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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끝의 검은덩이
이주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평점 :
![sison1.jpg](http://tpimage.kyobobook.co.kr/upload/blog/2019/06/11/66a889bf91fa4f9b970a349369f4e088.jpg)
텅빈 액자와 시선을 회피한 여인의 모습에서 쓸쓸함과 우울함이 느껴진다. '검은덩이'라는 제목의 단어에 마음이 걸려 한참동안 책장을 열어보지 못한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겠구나 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 이주숙님의 두번째 책으로 세상에 나온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내가 짐작하고 앞으로 나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짐작하고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글이 흘러가기에 거스릴 수 없음을 말한다.
![sison2.jpg](http://tpimage.kyobobook.co.kr/upload/blog/2019/06/11/7dd4f1e58e9d4d81905ae8761aa2f52d.jpg)
우리는 누구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어떤 삶을 이루어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와 세상을 살아간다. 내가 꿈꾸는 대로 이루기도 힘들 뿐 더러,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삶의 모습이 완전히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예기치 못하고 살기에 삶이라고 하고, 삶이기에 우린 더 애써보고 노력하고 힘을 내어본다.
『시선끝의 검은덩이』의 중심에는 '김정희'라는 인물이 있다. 김정희는 아버지가 지어보일 수 있는 인자한 미소와 나긋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학생들의 사랑을 한껏 받는 물리교사이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그림자와 같은 아내 '이선희', 그녀는 부산에서 화가의 꿈을 꾸며 서울로 유학온 아가씨로 김정희와는 교사와 제자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들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교복입은 여학생에 대한 집착으로 이선희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화가보다는 학교재단 이사장 부인이라는 직함에 대한 부모의 욕심으로 관계는 결혼이란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다.
'김정희'의 성도착증은 '이선희'에서 그치지 않고 '김영신'으로 또 다른 여학생으로 번져간다. 그의 병적인 행동은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선명하게 남은 채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김정희의 불안정한 성에 대한 집착과 김정희 엄마와 이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암투, 꿈꾸는 소녀 이선희와 부모의 권력 욕심, 스스로를 이겨내려는 김영신 그리고 부인에게 떠밀려 사라진 존재로 남은 아빠와 허영심 가득한 엄마, 김정희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오형사. 『시선끝의 검은덩이』를 이끌어가는 인물과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인물들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들이 단편으로 그려진다.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그 어느 것도 나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김영신의 몸에서 자라고 있는 김정희의 아기를 알아본 이선희의 분노와 배신감은 영신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해 주는 도움으로 전환되어 '김정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김영신과 이선희의 절친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십대 소녀를 혼자 두고 남자를 따라 외국으로 재혼해서 가는 김영신의 엄마, 언니의 눈을 속이고 형부를 사랑한 처제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정희 그리고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 갇힌 언니이자 김정희의 서류상 엄마. 인물들의 관계 또한 서로 얽히고 얽혀 하나를 풀어내면 또 하나의 실이 엉켜 들어온다.
『시선끝의 검은덩이』는 끝까지 김정희를 죽음으로 몰고간 누군가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사라진 영신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남자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우리는 김정희의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하면서도, 대체 누가? 언제?어떻게? 라는 의문을 갖도록 남겨둔다.
이선희가 김정희의 아이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애썼지만, 결국 어디선가 영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 그렇게 애썼지만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만다.
![서명4.png](http://tpimage.kyobobook.co.kr/upload/blog/2019/06/11/8c68bfd08bfb4d8b9cb563c60588a27b.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