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스콜라 어린이문고 29
원명희 지음, 서영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아이들은 얼마나 마음을 털어놓고 지낼까?

힘들고 지치고, 슬프고 울고 싶을 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있을까?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단언하는 부모들이 있다. 내 마음도 내가 몰라 갈피를 못 잡기 일쑤인데, 내 아이의 마음을 모두 안다고 하는 것은 곧 자만이다.

우리의 눈에 아이는 하염없이 어리고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그들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투쟁을 열렬히 치르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기 위해서, 선생님의 눈에 더 잘 띄기 위해서, 친구가 다른 누구보다 나와 더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서  등 다양한 고민을 하루에도 몇번씩 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하며 이겨내려 무단히 애를 쓴다.

하늘이는 오늘도 여전히 외롭다. 진구의 억지스런 심부름과 쉴틈도 없이 쏟아져오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 그 틈에서 하늘이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무엇이 얼마나 좋은지 조차 생각해 볼 틈 없이 하루가 빡빡하게 지나간다. 속으로 수천번도 더 용기를 내지만, 반에서 혼자인 하늘이는 진구의 명령이 나쁜 행동인지 알면서도 시험지를 고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엄마의 지극정성이 진구에게는 '마마보이'로 비춰지고, 진구의 명령에 맞춰 친구들까지 하늘이를 향한 무관심과 질타로 일관한다.

"이거 떨어졌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필이면 시험지 두 장이 형태 손에 들려 있었다. 꾸깃꾸깃한 시험지가 형태의 손아귀에서 펄럭거렸다. 나의 껍질이 하나하나, 형태 안페서 발가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화가 났다. 내게 화가 나는 것인지, 형태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97~98쪽

진구는 하늘이의 외로움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점수에 집착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거짓 시험지를 만들어내면서도 진구는 하늘이 앞에 당당하다. 그러나 그 당당함은 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너지고, 그 무너짐은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하늘이는 진구의 궂은 장난과 거짓 시험지 심부름을 당당하게 막아설 용기가 없다. 하늘이의 편이 아무도 되어주지 않는 교실은, 하늘이에게 무기력만 안겨줄 뿐이다. 진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교실 속 아이들과 하늘이의 불만도, 하늘이 엄마의 전화도 없다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여기는 담임 선생님. 그리고 하늘이의 모든 것을 지시하기에 바쁜 엄마까지. 그 누구도 하늘이를 진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학교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한 하늘이를 누구라도 한 번 "왜 그리 힘이 없냐?"고 물어주었더라면, 지금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지 않았을까 싶다.

 


허물 계획 속에 있는 건물에 신장개업해서 들어온 '행복 세탁소' 세탁소를 지키는 작은 할아버지. 유일하게 하늘이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이로, 하늘이는 그 앞에선 자신의 눈물을 과감히 보여준다. 하늘이의 편 또 하나. 바로 전학생 형태이다. 목발을 짚어야만 걸음이 되는 불편한 몸을 가졌지만, 형태는 항상 당당하다. 그리고 하늘이의 친구가 되고자 손을 내밀어오지만, 하늘이는 진구의 눈빛에 주눅들어 형태와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하고, 급기야는 진구의 명령에 무기력하게 움직여 형태를 위기에 빠뜨리게 한다.

                                                                                                                                                                                                                                                                             

 

폭력은 비극을 낳는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은 나약한 아이로 만든다.

스스로 일어서고 싶었던 하늘이와 끝까지 친구를 지키기 위해 버텨내려 한 형태 그리고 외로움을 외로움을 주는 자가 되어 잊기 위해 애쓴 진구까지. 상처를 하나씩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아왔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섣부른 행동들이 아이들의 내일을 그늘로 만들어버린다. 아이들이 깊은 숨을 내쉬면 자신의 몸에 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고 어른들의 몫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기댈 곳, 그 곳이 바로 아이들의 마음이 흐르는 그 곳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