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하자! 푸른도서관 79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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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두 아이의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중 인근 중학교에서 수행평가를 위한 '지역사랑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학기가 시작되면서 7~10명 정도의 친구들이 모둠을 조직하여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변화가 필요한 곳곳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사진과 설명으로 만들어 이웃들에게 설명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 오는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교복만 입었을 뿐 어리게 만 보았던 그들이 마을 곳곳을 돌며 관심을 기울이면서 활동한 그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료를 보면서 참 대견스럽기도 하고, 나의 청소년기보다 적극적이고 표현력이 좋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풋풋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가끔 1인 시위를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매체를 통해 만날 때가 있다.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든 그들의 간절한 이유,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한 그들의 용기,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에 절로 눈물이 난다.

 

오늘도 의지는 1인 시위 중이다.

4월 16일 노란 리본을 떼라는 수학선생님과 애도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지.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 것을, 선생님은 의지가 말하는 권리를 무시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의지를 학생들 앞에 세우게 만든다.

"사과는 종이컵이 아니거든."

사과와 시간과 종이컵의 조합이라. 자판기에서 잠깐이면 뽑는 인스턴트커피처럼 성의 없이 건네는 사과가 아니라, 예쁜 머그잔에 시간을 들여 내린 향 좋은 원두커피.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서 내던지는 사과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과를 받고 싶다는 얘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사과 주세요' 중에서  25쪽

 

"그러니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지금 우선 귀찮고 입장 곤란하니까 선심 쓰듯 던져 주는 사과는 진짝 사과가 아니라는 얘기지, 내 말은. 시간에 정성을 더해서 상대가 왜 상처받았는지 알아가는 게 먼저. 사과는 그런 다음에 진심으로 다가서는 일이어야 해. 가능하다면 여러 번, 그리고 지속해서. 성가시니까 치워 버리기 위해서, 부끄러우니까 잊어버리고 묻어 버리기 위해서, 먹고 난 종이컵 쓰레기통에 내던져 버리듯이 한 번 쓱 해치우는 행동이 아니라."  

'사과 주세요' 중에서 33쪽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그 말 중 또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나의 입에서 떠난 말은 고스란히 상대방의 몫이 된다. 이미 떠난 말까지 되짚으면서 되새기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급함으로 내가 컨트롤하기 전에 떠났다면, 미안함과 진심이 담긴 사과로 상처를 치료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은근슬쩍 넘어가 주기를 바라거나, 사과하는 척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것이 싫다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는 의지의 의지. 의지의 1인 시위는 수학 선생님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강자'라고 착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적극적인 표현인 것이다.  의지의 확고한 신념을 보면서 한참이나 어린 그녀에게 존경심과 부러움의 시선이 머문다.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그들에게는 친구. 사랑. 꿈이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바라보던 친구사이가 공부와 학원 그리고 또 다른 친구로 인해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하며 고민을 안고 살게 되고, 이성에 눈을 뜨면서 나와 상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애써보기도 하며 그에 따른 기분의 높낮이가 롤러코스터보다 더 한 시기가 바로 이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꿈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하는 긴 터널, 그 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장담할 수 없는데, 어른들은 이미 겪어본 듯 착각하여 터널의 앞을 막아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꿈을 꾸는 모습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꿈꿀 시간에 공부하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 진심인 거냐고."

"공태오. 너까지 내 꿈의 순수성을 의심하냐?"

"의심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거다, 인마."

"평생 가난하게 살까 봐?"

"좌절하게 될까 봐. 포기하고 쓰러져 버릴까 봐. 쓰러진 자리에서 버려진 꿈을 확인하게 될까 봐."

태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안다. 태오 걱정처럼 어쩌면 내 꿈도 이루지 못한 짝사랑으로만 끝날지 모른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버려진 꿈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순간이 찾아들지도. 그렇지만 오지도 않은 그 순간이 두려워 지레 물러서진 않겠다. 걱정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살아가진 않겠다. 그러기에는 내가 품은 진심이 너무도 찬란하니까. 영원히 짝사랑이어도 괜찮다. 꿈이든, 의지든, 지금은 행복한 진행형이니까.    '짝사랑 만세' 중에서   146쪽

아이들은 힘들다. 학교와 가정은 아이들에게 공부도 악기도 춤도 노래도 모두 잘 하라고 한다. 그 모든 것을 잘 해나기기 위해서 그들은 너무나 바쁘다. 옆에 있는 친구의 표정을 읽어낼 시간조차 부족하고, 나만 앞으로 나가면 된다는 교육방법은 그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외롭게 만든다.


"다 부서져 버렸어요. 무너져 버렸어요. 남은 게 없어요. 그래서 난 ……."

폐허 같아요. 고아 같아요.

미처 토하지 못한 말들을 안고 눈시울이 와락 뜨거워졌다. 비죽 비어져 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아 냈다. 흐를 새도 없이 지워진 눈물은 다시 가슴 안에 담겼다.

"한꺼번에 다 쓰지 마."

"그게 뭐든. 슬픔이든 원망이든 미움이든 분노든 다른 그 무엇이든 한꺼번에 다 써 버리면 금세 지쳐. 무너져 버려. 통장에서 귀한 저금 꺼내 쓰듯 매일 조금씩 조금씩만 아껴 써. 알뜰하게." 

'가출기록부' 중에서 119쪽

『데이트하자!』는 치매걸린 할머니의 외출과 짝사랑하는 학교선배를 만나기 위해 공원을 찾은 나래가 만나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두 세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래의 입장과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할머니. 그 두사람의 만남은 마치 우리 청소년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또다른 만남을 보여주는 모습 같기도 하다. 당황스럽고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전개, 그렇지만 그 전개 끝에 짝사랑 수현선배가 나타난다면, 수현선배의 할머니라면 나래의 당황스러움은 자연스러움과 반가움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모인 『데이트하자!』를 읽는 동안 함께 고민 나누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했던 못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1인 시위하는 의지에게 엄지척을 하는 태오와 배우가 되겠다는 재현이에게 유관순을 들먹이며 의남매가 되어준 의지, 짝사랑 수현이를 기다리며 치매 할머니를 보호하며 즐거운 데이트를 즐긴 나래와 형의 꿈을 지지해 준 수현 그리고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의 마음을 들여보게 된 이유와 해밀, 그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는 강주와 유대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 비록 비틀거리고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시간을 보낼지라도 괜찮다. 그들 모두는, 우리 모두는 행복한 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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