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떨어뜨린 것 반올림 40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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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세상이 나를 버린 듯한 고독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머피의 법칙이 너무나 잘 들어맞듯이 그 하루는, 무얼 해도 안 되고, 하려고 애쓰면 더 어긋나고, 내가 힘들게 이룬 성과가 다른 이에게로 전달되어 찬사가 쏟아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정말 좌절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그런 날이 있다. 쓰러질 듯, 모든 걸 버리고 싶지만 우리는 울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일으켜 세우며 살아왔다. 참 마음이 아프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누군가 나에게 손이라도 내밀 수 있도록 칭얼거려도 될 것을 우리는 사회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참 무던히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경혜님의 단편을 다른 책이나 매체를 통해 만났는데, 단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반갑게 두 손으로 맞이해 본다.

『그들이 떨어뜨린 것』이란 제목으로 5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로 다른 인물과 배경 그리고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하고 묻게 된다. 나의 잘못이 드러나서도 아니고, 상대의 잘못으로 내가 피해를 입어서도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가는 줄만 알았던 조금은 자기 자신에게 어리석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명령」은, 수학선생님이 된 성인이 열여섯에 명령에 의해 빼앗긴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제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로 전달하는 형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루하고 힘든 수학이란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사랑보다는 불편한 선생님이었던 인물은, 학교를 떠나면서 제자들에게 친구의 이야기를 처음 꺼낸다. 

1980년 5월, 우리나라의 비극은 열여섯 남학생의 죽음을 부르고, 친구를 잃어야 했던 가슴 아픔을 안겨주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그 시대의 비극을 성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엔 그 비극과 다르지 않은 강압적이고 나라에 충성을 다짐했던 시대였기에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다. 성인이 된, 다큐와 신문, 책을 통해 그 날의 일들을 겪으면서 얼마나 무섭고 살이 떨리던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해야 하는 건지 조차 모를 만큼 눈물이 차오른다. 

5.18 묘지에 묻힌 '박기현'학생의 인적사항을 보고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명령」.

5.18 사건의 내막은 잊더라도 '동신중학교 3학년 박기현'만은 잊지 못하리라. 그리고 꼭 기억해주리라.

그 시대를 피해간 국민의 한 사람의 미안함으로 그 이름 석자만은 기억하리라 다짐한다.

 

「울고 있니, 너?」의 소미는 참 행복한 아이이다. 가정 형편이 어렵지도, 친구가 없어 외롭지도,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사지도 않는, 평범한 일상을 아주 잘 보내는, 나름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소미에게 언젠가부터 '그 애'가 따라다닌다. 방에도 교실에도 벤치에서도 항상 고개 숙인 채 소미 앞에 나타나는 '그 애'.

'그 애'가 울고 있다. 외롭다 한다. 그 애의 눈을 보는 순간 소미는 숨이 멎는다. 너무나 낯익은, 소미의 눈과 너무나 비슷해보인다. 소미는 '그 애'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를 마주한 채 울어버린다.

우리는 항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애쓴다. 괜찮은 아이로 보여주고 싶고, 성격좋은 친구로 보이고 싶고, 예절바른 우리 아이의 친구로 보여주고 싶어 나를 포장하고 진짜의 나를 감춘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조차도 나를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 소미는 '그 애'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동안의 힘겨움과 외로움 그리고 괜찮은 척한 자신을 보듬으며 자신을 위로해준다. 눈물을 쏟아내면서.

소미는 이제 진정한 자신을 찾는 길을 발견했다. 지금보다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소미의 진짜 나를 응원해 주고 싶다.

 

「그건 사랑이라고, 사랑」의 민하와 민하 엄마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엄마와 소통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딸 민하와 민하와의 소통을 엄마만의 대화법으로 이어가려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와 우리 두 소녀의 모습이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어른이라는 이유와 엄마라는 이유로, 나의 생각과 나의 잣대를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그들과 소통한다는 이유로, 나의 주장만을 펼치지는 않았는지 고민하게 하였다. 사랑이 때로는 그들의 마음 속에 독을 품은 씨앗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저주의 책」은 어릴 적 나의 첫 친구 그리고 친구와의 이별을 떠오르게 하여 조마조마 가슴을 졸였다. 규리가 스스로 만든 저주의 책에 미움을 말들을 쏟아내는 순간순간, 점점 죽음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나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고, 냄새나는 친구의 곁에 다가서기라도 하면, 친구의 아빠가 친구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피했던, 어린 시절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그 모습이 어른거려 규리가 어떠한 선택을 할까봐 불안하기만 했다. 규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일상의 편안함이 깃들 그 날만을 응원한다.

 

「그가 떨어뜨린 것」 석호는 고단하다. 조금 가벼워지고 싶어 창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후회되는 순간 벌써 몸은 떨어지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석호가 바라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석호가 떨어뜨리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집착과도 같은 증상이었고, 주위의 수근거림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그 마음이었는데.

청소년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이 아프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나눌 대상이 너무나 한정적이라는 것이 아프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세상은 날로 좋아지고 변화되고 발전하는데, 우리의 아이들 마음은 점점 더 아파지고 염증으로 곪아간다. 그들의 아픔만은 떨어뜨려주고 싶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어른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손 내밀어주고 안아주는, 덜 큰 어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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