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정원』 책제목에서의 '영서'와 책 표지가 주는 은은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어요. '용서'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힘과 파스텔톤과 흑백의 조화가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 손의 모양과 손안에 들고 있는 돌멩이의 모양이 달라요. 그리고 그 돌멩이를 쥐고 있는 손의 모양새도 다르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 가지를 가지고도 각자의 생각대로 취향대로, 자기 맘대로 하길 원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교육으로 인해 키워나간 생각들도 제각각 다를 수 밖에요. 이것이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요?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바얌마을과 감테마을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은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채로 서로를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며 개울이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며 평화와는 점점 멀어져가지요. 서로를 향한 돌은 바얌마을 사마의 머리에 맞고 떨이지며, 사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요. 서로를 향한 비난과 미움, 복수는 날로 거칠어지고, 돌을 던진 카룬은 용감했다고 인정받아요. 그러나 카룬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요. 자신의 섣부른 행동이 사마를 다치게 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두 마을은 그 전보다 더 으르렁거리고 미워하고 비난하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용감했었던 것인지? 상대방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지? 사마는 개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해요. 화가 나고 우울하고, 곧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마는 건너편 감테마을 아이들의 표정도 자신과 같음을 발견하지요. 우울하고 겁먹고, 화가 나고 슬픈 모습. 나와 같이 그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전쟁 그리고 다툼은 어느 한 사람만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어요. 개울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은,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는데 온 힘을 다하다보니 정작 자신을 돌보고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거에요.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왜 서로 미워하고 분노해야 하는지, 그들은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습관처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로 각인되어 미워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요. 사마는, 돌멩이를 던질 기회를 얻지만 그들이 아닌 바닥을 향해 돌을 던져요. 그리고 그 곳에 정원을 지어 함께 그 정원에서 모든 걸 결정하자고 하지요. 두 마을이 분노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돌로 『용서의 정원』 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사라의 용기는 마음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 되었어요. 선듯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라의 머리에 돌을 던진 카툰이 해보겠다고 나서지요. 카툰 또한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던 거겠지요. 『용서의 정원』 은 서로를 향해 창을 들이대고 상처내는 것만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전쟁의 상황에서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어요. 전쟁을 끝내고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봐주는 그 순간, 절대 놓치지 말아야해요. 그 순간이 바로 화해의 순간이며, 서로에 대한 미움을 떠나보낼 수 있는 용서의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용서는 어려워요. 그 동안 미웠던 감정, 아프게 했던 상처들을 인정해주고 받아주어야 하거든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먼저 다가서야 분노도 미움도 끝이 납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의 정원』 은 사라의 돌멩이 하나로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려 정원의 벽이 되고, 두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어요. 미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관심과 그리움, 화해와 사랑이 보이기 시작해요. 바로 그것이 용서이고, 용기입니다. 사라의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지요. 미움을 쌓을 힘이 있다면 용서하는데 그 힘을 쓰고, 분노할 힘이 있다면, 보듬는데 그 힘을 사용하며 다툼할 힘이 있다면, 다가서서 먼저 손을 내밀 용기를 내라고 말이에요.
『용서의 정원』
책제목에서의 '영서'와 책 표지가 주는 은은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어요.
'용서'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힘과 파스텔톤과 흑백의 조화가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 손의 모양과 손안에 들고 있는 돌멩이의 모양이 달라요.
그리고 그 돌멩이를 쥐고 있는 손의 모양새도 다르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 가지를 가지고도 각자의 생각대로 취향대로, 자기 맘대로 하길 원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교육으로 인해 키워나간 생각들도 제각각 다를 수 밖에요.
이것이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요?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바얌마을과 감테마을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은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채로 서로를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며
개울이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며 평화와는 점점 멀어져가지요.
서로를 향한 돌은 바얌마을 사마의 머리에 맞고 떨이지며, 사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요.
서로를 향한 비난과 미움, 복수는 날로 거칠어지고, 돌을 던진 카룬은 용감했다고 인정받아요.
그러나 카룬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요.
자신의 섣부른 행동이 사마를 다치게 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두 마을은 그 전보다 더 으르렁거리고 미워하고 비난하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용감했었던 것인지? 상대방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지?
사마는 개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해요.
화가 나고 우울하고, 곧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마는 건너편 감테마을 아이들의 표정도 자신과 같음을 발견하지요.
우울하고 겁먹고, 화가 나고 슬픈 모습.
나와 같이 그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지요.
전쟁 그리고 다툼은
어느 한 사람만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어요.
개울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은,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는데 온 힘을 다하다보니
정작 자신을 돌보고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거에요.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왜 서로 미워하고 분노해야 하는지,
그들은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습관처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로 각인되어
미워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요.
사마는, 돌멩이를 던질 기회를 얻지만 그들이 아닌 바닥을 향해 돌을 던져요.
그리고 그 곳에 정원을 지어 함께 그 정원에서 모든 걸 결정하자고 하지요.
두 마을이 분노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돌로 『용서의 정원』 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사라의 용기는
마음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이 되었어요.
선듯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라의 머리에 돌을 던진 카툰이 해보겠다고 나서지요.
카툰 또한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던 거겠지요.
『용서의 정원』 은 서로를 향해 창을 들이대고 상처내는 것만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전쟁의 상황에서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어요. 전쟁을 끝내고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봐주는 그 순간, 절대 놓치지 말아야해요. 그 순간이 바로 화해의 순간이며, 서로에 대한 미움을 떠나보낼 수 있는 용서의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용서는 어려워요.
그 동안 미웠던 감정, 아프게 했던 상처들을 인정해주고 받아주어야 하거든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먼저 다가서야 분노도 미움도 끝이 납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의 정원』 은 사라의 돌멩이 하나로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올려 정원의 벽이 되고, 두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어요.
미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관심과 그리움, 화해와 사랑이 보이기 시작해요.
바로 그것이 용서이고, 용기입니다.
사라의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지요.
미움을 쌓을 힘이 있다면 용서하는데 그 힘을 쓰고,
분노할 힘이 있다면, 보듬는데 그 힘을 사용하며
다툼할 힘이 있다면, 다가서서 먼저 손을 내밀 용기를 내라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