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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마마 무치 ㅣ 튼튼한 나무 26
프라우케 앙겔 지음, 야나 피샹 그림, 이기숙 옮김 / 씨드북(주)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익숙함이란 것은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단순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 동안 읽은 동화책들이 대화체 위주로, 부드럽고 편안한 문체였다면, 오늘 내가 읽은 『행운의 마마 무치』는 설명 형식의 진행으로 이루어져 책을 읽는 내내 우린 책 속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
독일의 어느 빈민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빈민 주택에서는 서로의 생활이 맞은편에서 보일 듯 가깝게 지어져있고, 서로의 생활을 보지 않아도 소리로 냄새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로 그들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그 가운데 렐리오가 있다.
엄마를 일찍 잃은 렐리오는 아빠 군나르와 살면서 그 나이 무렵의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보살핌과 사랑 그리고 잘잘못을 가려주는 애정에 굶주려 있다. 자기 인생 조차 힘에 버거운 아빠 군나르는 끊임없이 누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가운데 아들 렐리오는 자신의 아들이기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하나일 뿐, 그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아빠 군나르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닌 너무 빠른 시기에 모든 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좌절과 삶의 의욕이 바닥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렐리오는 맞은 편 주택으로 이사온 규조 연구가 마마무치를 만나면서 삶의 즐거움과 보호받는 따스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가족이기에 느끼는 최소한의 안정감을 렐리오는 마마 무치에게서 느끼게 되고, 그녀에게서 엄마의 냄새를 맡게 된다.
자신을 보면 항상 혼내 구실을 찾는 주민과 아빠의 친구라는 아저씨는 정상의 모습을 보일 때가 없으며, 고모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냉장고를 채우고 청소를 해 줄 뿐 렐리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렐리오가 자기를 봐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쓰지도 않기에 모두 그는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잘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관심조차 없기에, 나에게 직접적인 해만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그와의 삶을 이어간다.

렐리오는 아프다. 아무도 모르지만 당상자인 렐리오 자신도 모르지만 아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 얼마나 메말라가고 있는지, 그리움이 무언지 모르지만 자꾸만 누군가 그리워지고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아무도 몰라준다.
그런 렐리오에게 마마 무치의 등장은 새로운 시작과도 같은 빛을 선물한다. 아빠의 부재가 길어지고, 렐리오의 존재 자체를 잊는 순간에도 마마 무치는 렐리오가 보호자가 되어 그를 보호하고, 기꺼이 보호자가 되어 준다.

빈곤은, 삶에 의욕을 가라앉게 하는 잠재된 힘을 가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아주 무섭고도 황폐함을 준다. 렐리오의 아빠 군나르 또한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좌절에 자신을 스스로 놓아버리고 만다. 그 가운데 렐리오가 있다는 것을 군나르는 쉽게 잊는다. 그의 존재보다 자신의 나약함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행운의 마마 무치』는 한 가정이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유로 비춰지는 방임이 상대를 얼마나 쓸쓸하게 만들고 외롭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잡지 못한 군나르의 나약함은 아들 렐리오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그의 삶까지도 나약하고 위태로운 시간을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로 남기는지 말해준다.
다만, 마마무치가 그들의 가정에 행운이 되어준다는 것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