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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담아요, 마음 ㅣ 반올림 39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10월
평점 :
엄마들은 간혹 착각을 한다. 내가 낳은 아이에 대해서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 알고 있다는 자신을 갖는다. 그런 때도 분명 있었고, 아이또한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만큼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의 입에서 어느 날 부터인가, "우리 반의 누구와 누구가 사귀기로 했대. 엄마 누구랑 누가 사궜었잖아, 그런데 깨졌대."등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는 날이 많아졌다. 선생님이 내주신 수행평가를 위해 남자네 집, 여자네 집 오고가는 것이 아직은 자연스러운 그들에게 이성의 감정이 생겨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날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니,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주말이면 초인종을 눌러 놀러오던 친구들의 발걸음이 줄어 이유를 물어보니, 이성친구가 생겨서 놀러 간다는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간식챙겨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면서 친구 엄마인 나에게 말도 잘 걸고, 수다도 늘어놓던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아이의 말에 마냥 웃음이 텨져나오면서, 우리 아이에게도 멀지 않은 일이구나 싶어서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빨리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혜진님의 『가방에 담아요, 마음』에는 5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만남과 시간을 통해 자라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잎사귀를 키우면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꾸밈없이 그대로 담담하게 담아내어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주었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거잖아. 물론, 기나긴 과정을 거쳐서. 그러니까 아무리 작은 소원이라도 시시한 게 아니야." 30쪽
누구에게나 사랑은 쉽지 않다. 상대를 위한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힘들고, 알아도 내 마음을 그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몰라서 힘들고, 그에게 전달한 내 마음이 잘 도착했는지 대답이 오기까지가 힘이 든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다해도 그 마음이 수평선을 그을 수 없듯이 항상 다르게 변화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까기의 힘겨움이 우리를 또 기다린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우린 나의 작은 감정하나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날려보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그 마음은 단 한번도 날개짓하지 못한 채 영원히 잠재워있어야만 한다. 사랑은 우리에게 힘듦과 함께 도전을 부추키는 용기를 함께 실어다준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 좋지 않았던 이유를 밖에서 찾았을 텐데, 자기 자리도 잡아 주지 않고 먼저 밥을 먹어 버린 친구들에게 가볍게 투정이라도 부렸을 텐데, 에이는 그 식사 기간 동안 멍청하게 아무 말 못하고 꾸역꾸역 밥을 먹은 자기 자신이 너무 싫었다. 되새겨 보면 볼수록 그 때의 자기가 너무 싫어서 이불을 걷어차고 또 찼던 것이다. 78쪽
사랑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절대. 나 혼자 상대를 바라보는 외로운 사랑도 상대가 있으니 절대 혼자는 아니다. 다만 바라보는 방향이 나를 향하지 않고 있음에 외로울 뿐 절대 외로울 수 없는 게 사랑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순간, 가장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때이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나만을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며 더 많은 것을 채워주기 위해 애를 쓰면서 나를 향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이 가장 많이 깊어지는 순간, 내가 내 스스로를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때이기도 하다.
우리는 힘들지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 우리는 누구나 나를 위해 사랑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방에 담아 둘까, 내 마음. 버리려 하지 말고 철지난 옷처럼 잊었다가 계절이 돌아올 때 꺼내보면 어떨까. 봄이 올 때까지, 저 작은 섬이 연둣빛으로 뒤덮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변해 버렸으면 그결로 된 거다. 만일 조금 묵은 냄새가 나고 눅눅해지긴 해도 변하지 않았으면 …… 그건 그 때까서 생각하자. 봄 햇살에 말려 찬찬히 들여다보았을 때 뭘 발견하게 될까. 어쩌면 버리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이 들었던, 마음을 넣어 둘 가방을 고쳐 매었다. 126쪽
『가방에 담아요, 마음』 속 5편의 이야기 속에는 설레고, 가슴졸이고, 출구없는 답답함과 스스로 문을 찾기 위해 애쓰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친구와의 만남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랑도 있고, 친구의 사랑을 보며 눈물을 내는 그리운 사랑도 있고, 다가서지 못한 채 끝을 낸 아쉬운 사랑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하고 있다. 다만 빛깔이 다르고 어떤 감정을 더 많이 소모했는지 다를 뿐, 끊임없이 사랑의 감정을 소비하고 있다. 그 소비의 감정을 잘 담아두고 하나씩 꺼내어보는 순간이 오면, 그 땐 분명 지금보다 더 깊고 넓은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사랑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또 하나의 사랑스런 모습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