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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자르는 가게 ㅣ 저학년 사과문고 6
박현숙 지음, 권송이 그림 / 파랑새 / 2017년 12월
평점 :
우리는 기억이라는 장치로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며, 그 틀에 박혀 새로운 삶을 방해받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 장치가 온 오프 기능이 있다면 우린 좋은 기억만을 담고 살아가지 않을까.
두 아이를 기르면서 '엄마'라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들과 말로 나와 아이 모두 상처받았던 그
때가 가끔 떠올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는 거였는데, 누군가를 보니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던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되어 스스로 내 자신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그 때 그 기억을 현준이가 만난 특별한 미용실의 꼬깔모자 아저씨를 만나 잘라낸다면, 엄마로서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상 누구나 실수하고, 후회하고, 때로는 위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쯤 있는 것처럼, 그 기억 하나쯤 가지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현준이는 동수에게 서운하다. 함께 오줌을 누었고, 우연히 그 앞을 지난 교장선생님의 바지 밑단에 오줌이
맞은 것데, 동수는 현준이의 오줌이라고 말했다. 현준이가 오줌 마렵다고 했으니, 현준이가 먼저 오줌을 누자고 한 거라고 말이다.
현준이는 억울하다. 마렵다고는 했지만 화장실이 아닌 학교 건물 모퉁이에서 누자고는 하지 않았으며,
교장선생님 왔을 때는 이미 오줌이 다 눈 상황인데, 내 오줌이 묻었다고 선생님께 이르다니...
너무 화가 난 현준이는 화장실에 동수를 향해 "똥수는 거짓말쟁이"라고 쓰며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려놓는다. 선생님도 동수도 현준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준이의 미흡한 실수로 말이다.
현준이는 동수에게 사과를 해야 선생님께 덜 혼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과만은 안하고 싶다.
왜냐하면, 동수가 먼저 거짓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수가 밉기 때문이다.

현준이는 동수와의 일들을 잊기 위해 찾은 특별한 미용실, 기억을 자르는 가게.
안 좋은 기억들, 동수와의 기억들을 잊을 수 있는 신기한 가게에서 현준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기억을
잃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동수와의 기억뿐 아니라 동수와 함께 했던 학교마저 잊게 된다.
현준이는 학교를 찾아 등교할 수 있을까
동수에게 진심담은 사과를 할 수 있을까
현준이와 동수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억이라는 하나의 저장 장치로 때로는 참 많이 괴롭고, 때로는 참 많이 행복하다.
또한 기억에 남은 그 날 그 때는 힘들고 지쳤을지라도 훗날 지나고 되짚어보면 또 하나의 추억이 되고,
소중한 삶의 한 페이지로 남는 때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억 때문에 웃고 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억은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잘 담아두었다가 조심스레 펼쳐내어 오늘 내가 그 때보다 얼만큼 자랐는지
가늠할 수 있는 성장의 척도로 삼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