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즈 상상도서관 (푸른책들) 5
정소영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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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공부해라, 시험 잘 봐라, 점수는 몇 점이냐,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 새벽 몇시에 깨워줘야 한다고 엄마에게 신신당부하면 항상 30분은 늦게 깨워주셨다. 초조한 마음에 울고불고 하면 정신차리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엄마의 다그침이 없어도 내 스스로가 느끼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말 졸였던 기억이 난다. 지켜보는 이보다 당사자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훨씬 더 크며, 그에 대한 부담감 또한 무겁다.

 

언제부터일까.

우리 사회가 '공부'를 외치고, '1등'을 외치게 되었던 걸까.

평준화라는 말과는 다르게 특목고가 생기고, 자사고가 생기면서 성적 위주의 진학이 번지면서 부모도 아이도 옆집아이보다는 좋은 곳, 친구보다는 나은 곳을 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올해 수능시험이 다가오면서, 올해는 점수로 상처받고 죽음을 선택하는 학생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미달된 점수가 주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내일 나의 삶을 단정지을 수 없는 우리가 포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암울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우리 아이들에게 욕심이 없다는 거짓말이다. 나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안정된 곳에서,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를 시작으로 부담으로 가슴을 누르는 무게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정소영님의 동화집 『나의 로즈』에는 5편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모와 나의 관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부모인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나의 입장이 되는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겠구난 하는 마음에 미안함과 반성, 그리고 후회스러움이 밀려들어온다.

 

영재라는 타이틀이 준우의 이름표. 준우는 엄마의 공부 잔소리와 기대가 사실 너무나 버겁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은 준우에게 난쟁이 도깨비 하나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 준우가 힘들어하는 상황마다 난쟁이 도깨비가 나타나 친구를 밀치고, 동생의 얼굴을 할퀸다. 미움이 든 준우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난쟁이 도깨비는 점점 크기가 커지고, 그 모습에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엄마를 괴롭혀 준다고?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건 내 소원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엄마에게 진짜로 바라는 건 …….

"엄마를 괴롭히는 건 내 소원이 아냐. 나는 그저 엄마가 진심으로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그, 그래? 괴롭히는 게 네 소원 아니었어?' [중략]

"내 소원은 네가 떠나는 거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중략] 너, 외로워서 날 부른 거 아니었어? 같이 놀 존재가 필요했잖아. 레이저 쏘기도 둘이 해야 재미있고. 잘 생각해 봐. 나처럼 네 편이 되어 줄 존재는 이 세상에 없어. 내가 없으면 넌 혼자라고, 혼자.'     25~26쪽

준우는 자신의 미움이 상대를 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쟁이 도깨비는 자신의 친구가 아니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는 준우의 이야기  「어깨 위의 그 녀석

 

준우가 만난 난쟁이 도깨비는 우리 맘에 있는 미움과 원망, 책임회피였던 것이다. 준우가 낸 마지막 용기는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나를 공부시킬 때 늘 '널 위해서'라는 말을 해 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자신의 욕심을 포장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억지로 공부해 왔고 말이다. 하지만 슈퍼맘 능력고사가 얼마 안 남은 지금, 엄마는 또 '날 위해서' 자신이 공부한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들의 인성이 평가되는 시험이니까 엄마를 위해서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또 내 핑계를 대지? 엄마를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건 이해가 되도, 나를 위해 엄마가 희생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44쪽

상준이와 엄마,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내가 대학교 편입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하고, 시험을 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상준이와 엄마의 모습 같아서이다.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졸면, "엄마 졸려?" 민망한 질문을 하는가 하면, 시험을 보고 나면 몇점이냐고, 어려웠냐고 며칠을 묻는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나 싶은 것이 참 미안하고 겸손해진다.

 

상준이의 엄마는 상준이의 학습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등반을 개설하자고 욕심내지만, 그 욕심은 곧 엄마를 평가하는 슈퍼맘 능력고사를 보게 된다. 엄마는 시험을 치르면서 상준이가 받았을 부담감을 실감하게 되고, 서로의 맘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슈퍼맘 능력고사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아팠던 하은이. 하은이는 꿈마저도 엄마의 꿈을 꾸어야 하고, 엄마가 마구 떠벌린 국제중에 진학해야 하는, 자신을 위한 꿈조차도 꾸지 못하는 소녀이다. 자신의 마음을 유일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거미, 로즈. 하은이는 로즈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아픔을 위로받고,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나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하은이의 중압감이 깊어질수록 로즈의 몸이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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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강하게 훈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언제나 나를 큰 소리로 몰아세웠다. 소리를 내지르는 것만이 강한 훈육의 방법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 엄마 앞에서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차갑고 매서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과 목소리가 얼어붙는 것 같았으니까. 친구가 없다는 사실보다, 가능성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보다, 엄마 앞에서 나의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     65~66쪽

하은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다. 그녀의 깊은 병은 로즈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로즈는 하은이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로즈의 죽음은 하은이로부터 용기를 끌어내는 힘으로 전환되어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맘껏 쏟아낸다. 그 동안에 쌓인 응어리를 모두 쏟아내듯이. 하은이의 눈물이 아팠고, 하은이의 울음소리가 아팠다. 그리고 딸의 마음조차 몰랐던 엄마의 무심함이 가슴을 아리게 한 하은이와 로즈의 이야기  「나의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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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힘없고 나약해 보였던 아빠의 죽음. 아빠의 구두에 발을 넣는 순간, 아빠의 흔적이 있었던 곳을 찾게 되고, 아빠가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 알게 되고, 아빠를 진심으로 끌어안게 되는 「아빠 구두

 

혼자 너무나 외로웠을 아빠와 아빠의 외로움보다는 장애를 가진 아빠의 모습이 자신을 위축되게 만들었다는 미움에 사로잡혔던 아들. 그둘은 서로를 향하고 있던 마음까지도 알아보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 얼마나 가슴 시린 헤어짐인가. 하루라도 빨리 그 마음을 알았더라면, 남은 자와 떠나는 자 마음이 이렇게 시리지는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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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무뚝뚝함으로 똘똘 뭉친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하준이의 이야기  「초특급 사은품」은 웃음과 찡함이 곁들어졌다. 하준이의 재치있는 바자회 물품과 사은품이 곧 하준이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계기가 되었고, 할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게 하는 기회가 되어 준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이며, 나의 가족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현실​이기에 받아들여야 함이 씁쓸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는 내 자신을 잃어가면서 그것에 발을 맞춰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와 너 우리가 소통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소통을 향해 마음의 창을 조금만 열어둔다면, 나로 인해 시작된 생채기는 아물어 갈 것이며, 상처딱지는 곧 떨어져나가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안아주는 따듯함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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