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싸움 Dear 그림책
전미화 지음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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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할아버지가 공들여 일구는 사과밭에 다녀온 우리 집 두 소녀.

막연히 농부 아저씨의 고생됨을 짐작하다가 할아버지의 사과밭에서 사과꽃을 따주고, 가지치기의 과정을 손수 해 보면서 사과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졌다. 날씨를 볼 때도 할아버지가 계신 지역을 지켜보는가 하면, 할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비가 오는지, 가뭄인지, 비료는 잘 쳤는지 등 농사에 대한 일들을 들으면서 더욱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찌는 듯한 여름날, 바닥이 갈라진 논바닥을 매체를 통해 보면서 사과밭도 저렇게 됐으면 어떡하냐고 한 걱정을 하더니, 할아버지께서 기계로 물을 끌어올려 주고 있다고 하자 우리 사과밭은 잘 견디고 있다고 참 반가워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썹이 올라간 철이』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전미화님이 새로 출간한 『물싸움』

표지의 그림을 딱 보는 순간, 아~!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예쁘게 그리기를 거부한 그림, 그림책의 그림은 알록달록하고 고운선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과감히 무너뜨린 그림, 그것이 바로 내가 만난 전미화님의 그림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눈썹에서 눈으로, 주름에서 콧잔등으로, 입매에서 턱선으로 이어지며 모든 근육을 자극하여 한 사람이 가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주어 보는 내내 함께 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갖고 있다.

『물싸움』은 농부들이 일년마다 겪는 삶의 애환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을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찰방거리는 물을 보며 한 해 농사가 풍년이기만을 기도했던 농부의 속은 줄어드는 물의 양만큼 쪼글아들어 온 몸으로 시름을 앓는다. 뒷모습의 농부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울상을 짓고 있을지, 하늘의 뜻이라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얼마나 좌절하고 있을지 표정을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야속하게도 태양은 고운 빛을 내며 땅으로 쏟아져내린다. 타들어가는 어린 모와 비를 기다리며 목빠지게 하늘만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쏘아내는 강렬한 태양빛.

전미화님의 그림 속에서 너무나 곱고 가장 강렬한 색상을 가진 태양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속상한 마음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으며 그 색 또한 너무나 곱다. 아마 농부와 어린 모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좀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아낌없이 색을 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것만은 피해갔으면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서로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서로의 논에 물이 줄어들자 예민해지고, 급기야는 다른 논으로 흘러가는 물꼬를 막고 자기 논으로 방향을 바꾸어 물을 대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는 말로 그들의 행동에 대한잘잘못을 가릴 수도 누구 하나 양보하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누구도 절박하고 절실하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팻물.

가장 아래 논부터 물이 흘러가도록 물꼬를 열어주어 사람도 논도 살리도록 하는 어른들의 지혜이다.

그러나 급박한 농부는 보 앞을 지키는 사람의 눈을 피해 물꼬의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얼마나 간절했기에  이럴 수 있을까.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약속한 규칙이 먼저인 것을 알고, 규칙이 깨어지면 더 큰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들어가는 논을 바라보는 농부는 감내하고라도 물 한줄기를 끌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이게 농부가 논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비가 내린다.

비가 모를 적시고, 메마른 논바닥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농부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이 찾아온다.

입술을 위로 찢어지고 눈은 감기고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자꾸만 떨어진다.

이렇게 올 한해 농사도 한 고비를 넘긴다.

 


 

자연에서 살고, 흙에서 인생을 바친 농부들의 고단함을 그림으로 만나게 해 준 『물싸움』

짧은 글이 사실적으로 단순하게, 군더더기없이 표현된 그림을 만나 그들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더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비를 맞으며 눈물을 떨구는 농부의 모습. 

한 동안 잊지 못할 나만의 한컷 그림으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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