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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 왕들의 살아 있는 역사 ㅣ 고전맛집 3
김종렬 지음, 노준구 그림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작년 이맘때 인문학 강의를 들었었다. 그 때 교수님께서 강의 주제 또는 날씨, 분위기와 어울리는 교수님의 지난 일기를 한 편씩 읽어주셨다. 정말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지나칠법했던 작은 잔상들을 떠올리며 쓴 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웃음 폭판이 터지기도 했다. 강의를 끝내면서 오늘부터 꼭 일기 쓰기 시작하라고 당부하셨다. 그 길로 문구점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핑크빛 수첩을 한 권 구매하고는 책꽂이 꽂아두고는 일년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한 나이다. 하루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나의 감정만이 담겨질 수도 있는, 정말 나만의 역사인데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허술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큰 자리를 차지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이다. 가장 긴 역사의 시간을 보낸 것도 있지만, 현재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욱 조선시대의 역사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많은 부분들을 찾아내고 돌이켜보는 산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깨인 사고를 가진 조상들의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멈출 수가 없다. 물론, 후회되는 부분이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가 밝혀진 역사만으로도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힘이 든다. 그 당시의 정황을 모두 이해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무리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역사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비교하며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쓰인 『승정원 일기, 왕들의 살아 있는 역사』가 우리의 곁에 있을 수 있었던 배경과 유네스코 기록 유산이 되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준다ㅓ.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로 세계유산으로의 영향력을 전해주어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지 느끼게 해 준다.
역사 드라마를 볼 때 임금의 곁에서 붓놀림을 쉬지 않는 신하가 항상 등장한다. 그가 하는 것이 왕의 하루부터 왕이 정치를 하는 모습까지, 일거수 일투족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모습부터 말 그리고 행동까지 누군가가 계속 살피고 기록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자유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신하를 막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 당당해서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 아닌 미래, 다음 후손들을 위한 배려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책임감을 지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는 많은 책이 등장한다. 허구에서부터 사실까지 다양한 영역과 관점으로 쓰인 책들이 있다. 종이와 인쇄의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그 때 그 시절,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신중했을까 생각해 보니, 책 한권은 그들의 땀이고 열정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박물관에 가면 한자어로 쓰인 고서를 보고 있을 때면, 그 의미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승정원일기가 어떤 양식에 맞게 쓰여졌는지 소개해 주어서 이제는 언제 쓰인 일기인지, 오늘은 어떤 대신이 근무했는지, 임금은 어디에 있는지, 임금과 왕비, 세자의 오늘 건강은 어떠한지, 어떤 나랏일을 보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정확히는 아니지만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무척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왕의 하루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아주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역사 속 조선은, 민주주의 시대를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면서 그와 더불어 나라의 가장 큰 아픔과 시련을 겪어내야만 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역모로 시작된 조선, 그 조선이 지금까지도 나오지 못한 성군을 출현시키고, 그 성군이 우리나라에게 닥친 시련을 '한글, 우리말'로 하나가 될 수 있게 굳건히 지탱하는 힘을 주었다. 힘들었던 그 시대를 살아가며 버티어 내야만 했던 왕들과 국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욕심을 채워나가려고 했던 간신들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던 그 시대의 일기, 이건 단순한 하루의 일상을 담은 일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며 그 시대를 알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역사서이다. 그러기에 하루의 시간을 빠짐없이 기록한 『승정원 일기, 왕들의 살아 있는 역사』는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위해 배우기 시작하는 것들이 참 많다.
온전히 '나'에게만 쏠렸던 관심이 아이에게 그리고 아이가 나아가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의 눈 또한 뻗어나가고 있다.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아이를 위해 먼저 역사서를 펼치게 되면서 우리의 역사가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속엘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와 아이가 살아가는 내일, 그 속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또 하루의 역사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