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0
이나영 지음, 이수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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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붉은 실' 하면 5년 전 텔레비전을 통해 본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빨간색 실로 짠 원피스를 입은 여주인공이 골목 상점을 돌며 구경을 하는 사이, 그 곁을 지나는 남주인공과 살짝 몸이 부딪히면서 원피스 올 하나가 남자의 가방에 걸린다. 그 실은 남자가 가는 방향대로 풀려나가고, 여자 또한 자신의 갈길을 가게 되면서 실은 느슨하게도 팽팽하게도 계속해서 올이 풀리게 시작한다. 뒤늦게 발견한 남자가 가방에 매달린 실을 떼어내고는 서서히 실을 감아 여자 곁으로 다가간다.

따스한 봄날, 빨간 원피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는 빨간 실뭉치를 들은 한 남자.

난 그 장면을 통해 빨간 실이 주는 따스함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함께 열었으며, 빨간 실은 설렘이며 따스한 봄날로 자연스럽게 내 기억의 한 장면으로 자리한다.

 

한편에 세워진 높은 칸막이 정리대에는 실뭉치가 정리되어 있고, 가운데 테이블엔 홍조를 띤 세 사람이 여유있는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책 표지에 담아 첫인사를 한다.  주위 배경을 흑백처리하면서 카페트와 의자, 테이블,  실바구니,  의상까지 붉은 계통으로 통일감을 주어 안정감이 있으며, 그들이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따듯하고 편안한지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편안한 얼굴에 미소를 담은 그들을 이토록 평온하게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은별이는 새엄마지만 새엄마 같지 않은 너무나 좋은 엄마가 있다.  새엄마는 임신을 했고, 은별이에게는 곧 새엄마와 똑닮은 동생이 생길 예정이다. 그리고 지금 은별이 가방 속에는 엄마가 태어날 은별이를 위해 뜨다 만 아기 조끼가 들어있다. 너무나 좋았던 엄마에게 아가의 존재는, 은별이를 외롭게 만든다. 사이좋던 민서와의 관계도 어색하게 만들어주고, 새엄마와 닮지 않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감행하기도 한다.

민서는 바쁜 엄마 아빠를 위해 손수 식탁을 차리고 은별이의 가방을 거리낌없이 열어도 괜찮은, 은별이와 모든 걸 공유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은별이가 이상하다. 멍하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퉁명스럽기까지 하며, 등떠밀며 먼저 학원차에 실어보내기까지 한다. 민서는 서운하다. 우린 서로가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사이인데 은별이가 자꾸만  피하는 것만 같다. 민서도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 내가 먼저 돌아서리라.


강우는 마음이 아프다. 뾰족한 것에 예민할 수 밖에 없고, 누구와도 부딪히고 싶지 않은 아이, 강우는 오늘도 아빠의 권위적인 행동과 공부하는 기계, 아빠의 기를 세워줄 도구로만 여겨지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나약해보인다. 아빠가 정해준 경쟁자인 친구는 강우 앞에서 무시와 비난을 쏟아붓지만 항상 고개를  숙이고 참아냈다. 그러나 한순간 강우의 아픔이 연필로 대신해 친구를 향해 겨눈다. 그 일로 급하게 전학을 오게 되고, 교실에 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또 다시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해야만 한다.


 


 

은별이도 민서도 강우도 ​외롭다.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 줄 친구도 가족도 곁에 아무도 없다. 은별이는 웃음도 나지 않고 자신의 곁에 맴돌지만 곁에 다가오지 않는, 민서의 눈치만 자꾸 살피게 된다. 민서는 자신을 밀어낸 은별이가 야속하다. 그래서 은별이에게 잘 지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맘에 들지 않았던 친구들 그룹에 들어가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은별이와 강우가 함께 하는 모습에 샘을 낸다. 강우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뽀족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뜨게질을 시작한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즐겁기만 했던 그 시간도 엄마 아빠에게 들키면서 잠깐의 행복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은별이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엄마에게 한다.

"엄마 딸이 되고 싶다고, 엄마와 닮고 싶다고."

은별이는 몰랐다. 이미 은별이와 너무나 닮아있는 엄마라는 것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일 거라고 단정짓는다. 그래서 고민하고 스스로 외로움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은별이는 엄마의 품에서 그 동안 혼자 속앓이했던 무거운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엄마를 닮든 닮지 않든,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민서는 지긋지긋하다. 나이에 맞지도 않는 핑크색 머리핀, 은별이와 강우에 대한 모함 그리고 강우의 과거를 친구들 앞에서 공개하고 강우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친구들의 야비한 행동 앞에서 민서는 과감하게 등을 돌린다. 그들은 민서에게 친구도 아니고, 친구일 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민서도 안다. 민서도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은별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일회성으로 그들을 곁에 두었다는 것을.


강우는 친구를 찾아간다. 자신이 과거로부터 아빠부터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친구 앞에서 숨죽이게 되고, 말하기 전 긴장되어 목소리도 떨려오지만, 강우는 친구 앞에 서서 먼저 사과를 건넨다. 강우는 과거로 인해 여전히 아프지만, 용기내어 한 사과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을 하나 만든 셈이다.

 

 

 

 

은별이와 민서 그리고 강우. 세 아이가 가슴 속에 담고 있었던 상처는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프다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한 번의 시련이 오고,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 아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세 아이가 아파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함께 걸어가면서 어른인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관계에서의 힘겨움과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강요를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나를 찬찬히 돌아보게 하였다.

뚱스의 합체로 은별이와 민서의 얼굴엔 미소가 맴돌 것이고, 뾰족함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찾은 뜨개질 가게에서 따스함과 용기를 찾아가는 강우는 아빠에게도 곧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까 하는, 강우의 다음을 함께 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붉은 실에 대한 느낌만큼이나 참 따스했고, 서로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이 주는 얽힘과 풀어짐이 '붉은실'이라는 매개로 참 잘 이어놓은 느낌이다.

읽는 동안 내내 설레고 두근거렸고 걱정스러워 숨이 깊어지기도 했으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는, 참 가슴 따듯해지는 이야기를 꽃들이 만발한 봄날 아주 잘 만나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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