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슬금슬금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1
이가을 지음 / 북극곰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도깨비이다. 본 사람도 딱히 없는데 보았다고 하고, 옛날 옛적 간날 갓적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하고, 들은 사람도 없는데 할머니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하고, 전해준 이도 없는데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인물이지만 우리의 옛이야기에 도깨비가 빠지면 이야기는 신명이 안 나고 맹숭맹숭한 것이 크림 붕어빵을 먹고 난 뒤에 달짝지근하고 알맹이가 씹히는 팥이 그리워지듯 허전함으로 다시 팥 붕어빵을 찾게 되듯 이야기의 허기가 진다. 우리 입에 척척 붙는 것이 도깨비만의 요런 매력을 가진 건 아닌가 싶다.

 

아이와 이야기책을 통해 만나는 도깨비는 아이의 가장 친밀한 이야기 주인공이 되고 친구가 된다.

큰 아이에게는 두 돌이 지날 무렵부터 한 동안 늘 함께 하는,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괴물.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연상되는 괴물은 무섭고 험상궂고, 악의 무리인데 아이에게 괴물은 다정했다. 간식 먹을 때 옆에 앉아주고, 떨어질 것 같은 곰 인형을 잡아주고, 떨어진 포크를 집어주며, 먹기 싫은 시금치도 나누어 먹어주고, 잠잘 때 옆자리에 누워 체온도 나누어주는, 책 속에서 만난 도깨비가 아이에겐 괴물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아이만의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재탄생하여 곁에 머물러 있었던 거 같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괴물이란 이름을 듣고 토순이는, 살구는 어때?”라고 권유하자, 이름을 바꿀 수는 없단다. 그 친구 이름이니까. 어른의 고정관념으로 이름 바꾸기를 강요했다면 13살 된 우리 아이의 기억 속에 괴물은 금세 지워졌을 텐데 아직까지 동생에게 나의 첫 친구는 괴물이었다고 얘기하는걸 보면 그 때 아이의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참 잘 한 일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이가을 작가님의 도깨비가 슬금슬금를 읽으면서 우리가 왜 도깨비를 친근하게 생각하고 신명을 주는 대상으로 생각하는지 이유를 나름 분석해 보았다.

 

하나, 도깨비는 함께 사는 집의 주인을 닮아 있다.

하나만 기억하는 돌쇠의 도깨비는 하나밖에 몰라 돌쇠가 기억한 것, 그것 하나만으로 집안을 채워주고, 대장장이 아저씨네 도깨비는 주인을 닮아 솜씨 좋고 마음씨 좋아 마을 사람들의 일손을 거들어주고 항상 신명나고, 수다쟁이 할멈네 도깨비는 와글와글 수다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니 이말 저말 듣느라 해 가는지 모른다. 도깨비의 천성인지 아닌지 도깨비가 머물게 된 집 주인과 너무나 닮아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진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 도깨비는 한 치 앞을 못 본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맘이 간절한 물 도깨비는 친구 도깨비가 주는 정보에 따라 인간 세상의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하나 둘 물건을 주워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 인간이 되기 위해선 주운 물건을 두 배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 에고 이를 어쩔까요.

소원 들어주는 도깨비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는 무조건 뚝딱!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도 없다. 들으면 바로 뚝딱! 한 치 앞도 못 보고 사는 우리와 도깨비. 다를게 뭐가 있을까 싶다.

 

, 도깨비는 사람의 거울이다.

농부들의 일손이 되어주는 대장장이의 부지런함은 도깨비에게 고스란히 옮겨가 힘없는 할머니의 호미가 되어 밭을 메어주고, 가난한 나무꾼의 도끼가 되어 가족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나무를 베게 해 주니, 대장장이의 솜씨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신바람을 나게 해 준다.

작은 티 하나, 불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깨어버리는 옹기장이의 대쪽 같은 장인정신. 그의 집에 사는 도깨비는 앞뒤 재지 않고 옹기장이만 없으면 옹기를 던져 와장창 깨어버리기 일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고 싶으면 그 집 도깨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것, 도깨비는 주인이 하는 그대로 따라하는 거울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 개성이 넘쳐 이야기마다 재미지다.

도깨비는 태생도 모습도 능력도 모두 다르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재주를 가지고 인간 세계로 내려와 짓궂게도 하고 얼렁뚱땅 골탕 먹이기도 하고, 힘든 인간들의 고됨을 위로해주기도 하며 시름을 잊게 도와준다. 어리석은 도깨비를 만나면 내가 조금 나은 것 같다는 용기가 되고, 힘든 이를 도와주는 도깨비를 만나면 열심히 살면 언제가 나에게도 도깨비가 찾아올 거라는 희망이생기고,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을 혼내줄 때면 그 동안 쌓였던 나의 억울함을 달래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제각각 다른 곳에서 시도때도 없이 인간 세계로 출장나오는 도깨비는 우리에게 과거의 슬픔을 잊게 하는 힘이 있고, 현실의 고됨을 이겨내는 힘을 주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며 함께 한다. 어리숙해도 잘나도 밉상이어도 우리가 도깨비를 좋아하는 이유, 이보다 충분한 것은 없다고 본다

 

 

도깨비’가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음을 말이다. 그들의 욕심으로 혹부리 영감의 혹이 떨어지고(혹부리영감님), 세경 못 받은 노비 소원 들어주느라 부잣집 앞마당에 똥벼락이 내려지고(똥벼락/조혜란글/사계절), 돈 서푼 빌려가고 날마다 서푼 갚느라 마을에 내려오고(깜빡깜빡 도깨비/권문희/사계절), 도깨비 옷을 손에 넣게 된 나무꾼이 도깨비 옷 입고 이 집 저 집 세간살이 훔치다가 대장간 불씨에 도깨비 옷이 구멍 나면서 탄로나 묻매맞는 이야기(도깨비옷에 구멍이 뽕/박영란/삼성), 도깨비는 지금쯤 다 잊었을 테지만 우리는 할머니에서 할머니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로, 어머니가 나에게로, 내가 내 아이에게로 전해주며 웃고 울고 박수치며 통쾌해 하고 안타까워하며 어리석다 흉보고, 은혜를 아는 맘씨 착한 도깨비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겠지.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우리 아이가 부모가 되는 그 날까지도 도깨비 이야기는 세상을 흘러 다니겠지. 얼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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