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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정원사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25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6년 12월
평점 :
지난 주말 아이들 안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시내에 나갔다. 넓은 거리에 울리는 구세군 냄비의 종소리만이 연말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병원을 나서며 좋은 일에 쓰라고 아이들 손에 돈을 들려주며 구세군 냄비가 있다고 일러 주었다. 쑥스러운 듯 돈을 넣고는 재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날이기도 하지만,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날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살아갈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 스스로 나눔을 실천할 마음을 가질 때까지는 곁에서 꾸준한 나눔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아이들 등교길에 횡단보도 앞에 서면 늘 만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한 분 계신다. 작은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그 횡단보도를 이용했으니 벌써 2년이 되었다. 녹색어머니 활동으로 깃발을 드는 날, 인사를 하기 시작해서 꼬박 2년을 인사하며 아침을 맞이한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추워도 더워도 늘 그 시간에 도로와 인도 위를 청소하시는 아저씨는 항상 당당하고 인사하는 소리에 금방이라도 답례할 준비를 갖춘 듯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작업을 하신다. 모두가 자신을 챙기기 바쁜 이른 아침 시간부터 거리에 나오신 아저씨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시작하신다. 그 분과 나누는 아침 인사는. 아주 귀한 분을 만나고 온 듯한 든든한 느낌을 주며, 나의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어 참 좋다.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모르게 피어내는 나의 꿈들이
세상으로의 첫 발을 내딛는 아침,
오늘은 어제와 다르며
나무는 어제의 그 나무가 아니며
나의 꿈은 현실이 되어
미소가 되어 거리에 내려앉고
그 미소는 나의 발걸음을 또 다른 곳으로 이끌어주네.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집을 향해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게 진행되며, 어깨위에 내려앉은 무거움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실려 움직이며 감정없는 표정으로 가야 할 길을 따라 앞만 보고 질주한다. 주위에 일어나는 일 따위에 눈을 돌릴 여유도, 나의 곁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인지 돌아볼 마음조차도 없는, 오직 내가 가야 할 길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들의 모습. 그 뒤를 따르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한 남자. 그의 어깨에는 두루마리 한 뭉치가 올려져있다. 무거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경쾌한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늦은 저녁 시간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경쾌한 발걸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한밤의 정원사』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어둠을 맞이하기 전의 푸르스름한 느낌의 어둡지만 환한 느낌의 청록빛깔의 표지를 하고 있다. 부엉이 나무 한 그루와 나무를 향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한 소년, 마치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며 바라보는 듯한 모습에서 나무와 사람, 자연과 사람이란 관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고 있어 표지의 색상에서 주는 약간의 어색함은 따스함으로 순간 전환된다.
정원사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 나무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정원사의 손길에 따라 상상으로 가능했던 동물들의 모양을 나무가 받아들이며 아침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앞만 보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주위의 변화에 눈을 돌리고, 귀 기울여 그들의 소리를 듣으며,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의 손길을 따스하게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쁜 일상에서의 여유, 그건 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겸허함, 이것이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가르침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원사의 뒤를 따르는 한 소년, 소년의 눈으로 따라가 본 정원사. 그 둘은 함께 자연을 벗삼아 새로운 친구들을 거리에 선물로 남겨둔다. 소년에게 정원가위를 선물하고 길을 떠난 정원사. 정원사는 마치 세상에 희망이란 빛을 선물하고, 희망이 필요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는 전령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가위를 받은 소년은 정원사의 정성과 노력을 이어받아 또 다른 모습의 정원사가 되어 자연의 편안함을 사람들에게 나누지 않을까?
내가 가진 무엇을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는것은 만족감에서 다른 이의 행복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가장 뿌듯한 실천이며, 이것은 또한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음을 또 다시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옛말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잠든 밤 나무들을 변화시키는 정원사의 손길은 일상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나무를 바라보는 잠시 동안이라도 눈과 마음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정원사의 나눔은 그의 만족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리를 걷는 이들의 얼굴에서 지침을 가져갔으며, '나만'이라는 힘겨움에서 함께 하는 여유를 즐기게 해 주었으며, 무표정의 얼굴에서 타인을 향한 배려가 담긴 미소가 지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정원사의 나눔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준 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정원사와 소년,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함께의 의미를 잊지 못할 것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될 것이다. 『한밤의 정원사』를 읽는 내내 그들의 나눔에 감사했으며 행복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