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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은 어디니?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23
김성은 글.그림 / 북극곰 / 2016년 12월
평점 :
책장 가득하게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글이 쓰여있지 않아도 그 속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 그림책을 내 돈을 주고 산 게 20년 전이었던 거 같다.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나였고, 그림책 관련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던 때였다. 책을 사려면 서점에 가야만 했던 그 때,평상시와는 다르게 유아코너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그 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그림책 한 권. 커다란 사과가 마치 표지를 뚫고 나올 듯한 모습과 땅에서 이어져 사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두더지 한 마리.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그림책 한 권을 사서 돌아왔다. 그 때부터 시작이었던 거 같다.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 그 맛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말이다.
우리집 거실 한 켠에는, 곧 읽어야 하는 반드시가 아닌 그 동안 집에 안주하지 않아서 읽지 못했던 책들이 놓여있다. 며칠 동안 내 눈을 사로잡고 한참동안 내 마음을 빼앗아 놓은 그림책 한 권이 있다. 두 아이가 발 빠르게 먼저 읽은 책이라,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말해주겠다고 해도 절대 안 된다고, 엄마가 읽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는 내내 책장을 열지 않았다. 표지를 가득 메운 악어와 노랑새 한 마리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의심의 눈초리만으로도 그림책이 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기에 표지만으로도 난 충분히 즐거웠다.
드디어 그림책을 펼쳤다. 표지는 넘기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배고픈 악어가 바구니 가득 당근을 담아 집으로 들어가는 길, 그 뒤를 이어 생쥐 한 마리가 바퀴달린 작은 수레에 당근 하나를 싣고 따라간다.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는 악어의 발걸음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생쥐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했다. 그들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재료를 보며 신중하게 메뉴를 고민하는 악어의 곁에서 말똥말똥 눈으로 악어의 결정을 기다리는 생쥐의 모습 속엔 꾀가 잔뜩이며 그 속내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바로 다음 장에서 해결된다. 억어의 달걀 하나를 당당하게 머리에 이고 가고, 넘치는 악어의 반죽을 자연스럽게 그릇에 받는다. 악어도 생쥐도 오늘의 한 끼 식사는 당근 케이크인가보다. 오븐속에 넣고 기다리는 시간 20분. 악어의 뱃속 시계와 생쥐의 뱃속 시계는 함께 꼬르륵~~
맛있는 식탁을 위한 기다림 속에서 악어의 얼굴로 떨어진 노랑새 한마리. 노랑새를 향해 의심의 눈으로 쏘아보는 악어와 집을 떠나 악어의 얼굴에 앉아 당황했을 법도 한데 당황함보다는 언짢아 보이는 노랑새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뭐지? 하는 방관자 역을 맡은 생쥐. 초록과 노랑 그리고 회색, 세 마리 각기 다른 동물과 각기 다른 색, 서로를 향한 각기 다른 표정이 서로 다른 속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노랑새는 살던 집을 소개한다. 노랑새가 말하는 대로 집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새의 집을 찾아다니는 악어. 그들의 노력과 실망에도 굴하지 않고 틈틈이 기회를 놀리며 과감히 숟가락을 드는 생쥐. 고민 끝에 찾아낸 노랑새의 집은 악어새 입 속의 의도를 알기라도 한 듯, 악어의 머리 위에 서서 손으로 입으로 가리고 고소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생쥐, 그러면서 실제로 악어 입 속에 노랑새가 들어가자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생쥐.
나는 악어의 뒤에 가려진 생쥐의 나홀로 퍼포먼스가 너무나 즐겁고 생쥐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며 정이 느껴진다.
음흉하지도 애써 감추지도 못하는 생쥐의 등장은, 악아와 새의 단조로운 구성에 톡톡 맛을 뿌린 듯한 톡톡 쏘는 맛을 가미시켜 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해냈다고 본다.

마침내 들려오는 오븐의 신호. 악어보다 먼저 뛰어가 손짓하는 생쥐 그리고 악어의 반가운 표정. 그 때 악어의 손에 있던 새는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무언가로 시선이 모아진다. "앗!"
나란히 나란히 당근케이크를 완성한 둘은 미리 준비해 둔 식탁 앞에 앉는다. 악어는 손님맞이 준비를 끝냈다. 차도 두잔, 치즈도 두 조각, 스프도 두 그릇, 세팅이 끝나고 노랑새를 위한 식탁과 의자를 준비해 온다. 이미 노랑새는 자취는 감추고 악어와 생쥐는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시작한다.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 보이는 꾀꼬리 시계에서는 정각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운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장소에서나 있는 시계와 그 장소에 함께 있는 이들과의 일상의 한 장면이 그림과 함께 동화로 탄생시킨 김성은 작가님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발상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고정된 꾀꼬리의 모형이 악어의 얼굴에 떨어진 노랑새 한 마리로 탄생되어 이야기의 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악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쥐의 등장으로 악어 혼자만의 등장에 양념이 되어 즐거움이라는 맛을 만들어냈다. 『 너희 집은 어디니?』를 보는 내내 생쥐가 보여주는 다양한 몸짓과 표정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가 없었다. 악어보다 더 얄미운 짓을 서슴없이 행동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까 부리나케 도망가는 동작까지 뭐 하나라도 즐겁지 않은 장면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침범한 노랑새의 등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을 흔쾌히 나눌 줄 아는 악어의 베품은 우리에게 여유가 무엇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노랑새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악어의 표정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었다.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궁금함과 여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또 하나의 그것이 그림에 녹아내려 또 다른 재치와 위트를 느끼게 해 주는 그림책의 매력을 한 자리에서 만끽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즐겁고 오랜만에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읽은 흐뭇함이 들게 하는 책 한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