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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의 기도
오노 마사쓰구 지음, 양억관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5월
평점 :
9년 전의 기도 / 오노 마사쓰구 글 / 양억관 옮김
폭염으로 지쳐갈 쯤 만난 「9년 전의 기도」는 나에게 청량함으로 첫 느낌을 전달했다.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이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는 듯한 신기함과 하얗게 일어나는 구름이 책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느낄 수 있어 반가움으로 책장을 펼칠 수 있었다.
「9년 전의 기도」를 통해 만난 사나에는,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며 부모의 딸이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고 믿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닥칠지 내다보지 못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배신했고 사나에의 곁은 배신한 사랑과 닮은 케빈이 지켜준다. 사나에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케빈이 있기에 삶을 내려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지키고 이겨내야 하는 것만이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나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경험하는 많이 일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다만 케빈에게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지렁이를 지켜보고 지렁이가 제 힘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만이 엄마인 사나에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일임을.
케빈은 사나에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숨기는 것도 모두 힘든 일 중 하나이다.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사나에는 너무나 외롭고 지친다. 그 때마다 사나에에게 직언을 남기는 어머님의 말씀에 사나에는 더 이상은 도망갈 곳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나에가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을 때조차 지금의 이 행복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라는 말로 찬물을 끼얹는 어머니의 대사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찬물의 대사는 곧 현실이 되어 사나에는 떠난 이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 남겨진다. 사나에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얼마나 외롭고 지쳤을까, 삶이라는 레이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케빈을 향하는 에너지가 고갈되면 어쩌나, 책을 읽는 내내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견딜 수 있는 힘은 케빈도 부모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해 주는 밋짱 언니이다. 밋짱 언니에게도 아들이 하나있다. 밋짱 언니의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의 길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현재와 9년 전의 여행길,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차단하는 것만 같은 「9년 전의 기도」의 이야기 방식은 낯설음과 함께 잠시의 쉼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문장 하나하나에 힘을 싣고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정 변화에 글쓴이는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을 배제시켰다. 안타까울 수도, 펑펑 울 수도, 목청껏 소리를 질러 내뿜을 수도 있는데 항상 감정을 낮추고 그 감정의 울먹임을 독자에게 맡겼다.
- 기뻐해야 할지 절망해야 할지, 아니면 분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파도 소리는 너무도 중립적이었다. (79쪽)
- 사지를 버둥거릴 때마다 등껍질이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그게 아래서 무너지는 모래 쓸리는 소리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엘 지워져 들리지 않는다. 설령 이 쇠약해진 바다거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눈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해도 파도 소리에 지워지고 말았으리라. (118쪽)
감정의 높고 낮음의 선을 모두 파도가 지켜주고 있다. 그러나 파도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다. 항상 그 자리에서 바라봐주고 지켜주면서 절대 성내지도 그렇다고 수긍하지도 않고 온전히 받아들였다고만 한다. 이것이 아마 슬픔을 이겨내는 많은 이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위로해주는 작가만의 힘이며, 최고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책장을 덮으면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청량하고 잔잔한 책 표지가 주는 반가움의 첫인상은 책장을 넘기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문장에 쓰인 단어에서 쓰인 잔잔함은 문장이 끝마칠 때 내 마음 속은 회오리와 같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것이 「9년 전의 기도」의 작가 오노 마사쓰구의 표현 방법이며, 그의 향기임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으로 기억될 한 작품을 만난 시간, 지금의 이 느낌을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