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수집가 I LOVE 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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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수집가

크빈트 부흐홀츠 글 · 그림

보물창고』

2021년의 가을 어느 날, 나는 그림책을 한 권 앞두고 한참동안 머릿속에 담긴 기억들을 돌리고 돌렸다. 내가 언젠가 보았던 그림 같고, 내가 언젠가 읽었던 글 같고, 작가님의 이름이 익숙치 않아 여러번 소리내어 불러봤던 기억 또한 슬며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가의 그림책 영역을 한참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아, 초등학교 3학년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가 보내준 그림책 중에서 하며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하자, 조카가 한참을 책장 앞에서 찾는 듯 하더니, "고모, 있어요. 제목이 '순간 수집가'가 아니라,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이에요." 한다.

맞다. 한참 오래 전에 친구를 기다리면서 잠깐 들린 서점에서 구입했던 바로 그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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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고 하기엔 꽤 많은 글밥에서 순간 당황했던 기억까지 모두 소환되면서 또다시 만나는 '크빈트 부흐홀츠'의 작품, 시간이 지나 다시 읽게 되는 그림책,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기대를 해 본다.

선과 점으로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그린 그림이 담긴 그림책 표지는, 고요한 풍경과 어딘가로 시선을 보내는 한 남자의 뒷모습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거위 한 마리, 울타리 밖으로 몸을 쭉 빼고 간절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바라보는 듯한 여인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다.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그림 한 점에서 나도 잠시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되는 여유를 선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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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막스 아저씨가 소년이 살고 있는 주택 5층으로 이사를 오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나고, 그 만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소년는 막스 아저씨와 특별한 약속 없이 만날 뿐 아니라, 아저씨의 작업실이자 집의 문이 열려 있다면 들어가도 된다는 것을 신호로 알고 있지만, 5층 손잡이를 잡을때 소년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림에 빠져 있는 아저씨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소년의 배려가 귀엽게 느껴진다.

그림에 빠진 막스 아저씨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소년은 아저씨의 그림을 궁금해하지도 억지로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곁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아저씨의 부탁으로 연주하는 바이올린,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주 실력이지만 "예술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저씨 앞에서 소년의 바이올린 연주는 최고의 교향곡이자 바리올리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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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며 잠시 아저씨의 화실을 맡게 된 소년은, 자신만의 전시회를 위해 둘러진 그림들 가운데 서게 된다. 아저씨가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림들이 소년을 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서 있는 소년은 아저씨가 써 놓은 그림들 옆 쪽지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 비밀이 무엇이어도 비밀을 찾아내지 않아도 굉장하고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그림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왜 막스 아저씨가 자신이 이곳에 없는 동안

그 그림들을 보게 했는지 서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화실에서 직접 설명을 해 주고 싶지 않있던 것이지요.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순간 수집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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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막스 아저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그리고 나서 아저씨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난 아저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순간 수집가』 중에서

막스 아저씨는 여행 중에 발견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또 다른 그림을 위해 이사는 꼭 필요한 거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말을 소년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저씨는 소년과의 시간을 아름다웠다 기억하며, 소년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예술가 선생님, 보고 싶을 거예요."

아저씨의 마지막 인사말은 소년의 가슴에 기쁨과 그리움으로 채워질 것이고, 소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바라봐준 막스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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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빨간 소파와 그림들, 그 한가운데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그리움이 베어나오고, 소년의 연주는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또다른 선율이 퍼져나갈 듯 하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소년의 연주를 최고의 연주곡으로 들어주고, 스스럼없이 "예술가 선생님"으로 부르며 그에게 연주를 부탁하는 막스 아저씨는, 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이며 한 소년의 꿈을 키워내는 진정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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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수집하는 순간 수집가 막스 아저씨 그리고 그 곁에서 아저씨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준 바이올린 연주자 소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엮어진 그림책 『순간 수집가』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또다른 순간의 기억을 담는 기회를 안겨줄 것만 같다.

다가오는 겨울, 눈코끼리를 만나는 순간을 맞이해 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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