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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소녀
톰 이스턴 지음, 임현석 옮김 / 북핀 / 2021년 1월
평점 :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변화이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조성해 가는데 그들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톰 이스턴 작가의 『권투소녀』에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의 삶으로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플레르와 그녀의 절친이자 페미니스트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블러썸 그리고 겁많고 바보스럽지만 플레르의 곁을 지켜주는 핍, 열여섯의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보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익숙한 십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조차 알지 못 한다. 확신할 수 없기에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플레르와 블러썸, 핍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때로는, 지나치다 싶기도 하고, 어수룩함에 안타까움이 피어나기도 하며,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십대는 자신의 삶 속으로 한 발 깊게 들어가는, 스스로 서기 위한 준비단계인 것이다.
플레르는, 동네 복싱 체육관 전단지의 시간표를 보고 체육 교사에게 항의하고 있는 블러썸의 곁을 지킨다. 남성부와 여성부로 구분된 시간표는, 성별에 의한 분리수업이며 여성부를 따로 편성된 것은 차별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로서의 당당함과 진취적 성향의 블러썸은 바로 복싱 체육관을 찾아가고, 그 곁을 지키던 플레르는 처음으로 만난 복싱이란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도전'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시작한다.
“나는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야. 나쁜 친구고 못된 딸이고 끔찍한 페미니스트야.”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야. 네가 한 말 중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왜 네가 끔찍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건데?"
"나는 너처럼 행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위에 나가 본 적도 없어. 도움이 되기는커녕 실없는 농담만 해대잖아. 트위터에 엠마 왓슨에 관해서도 헛소리만 써놨어.”
블러썸이 나를 보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게 바로 가부장 사회가 하는 짓이야.”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자신을 의심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만들지. 플레르, 너는 훌륭한 페미니스트야.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똑같아. 단지 서로 다른 길로 가는 것일 뿐이야.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어. 그리고 정말 멋진 건, 너는 너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다는 거야.”
『권투소녀』 241쪽
전통적인 성 역할에 익숙한 남학생들의 편견과 선입견,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부당한 제약 등을 열변하는 블러썸이 부딪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들이 상대의 의견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화는, 새로운 변화와 함께 유연적인 사고로 변형될 것이라는 희망이 엿보이는가 하면, 서로가 가진 상대방에 대한 생각은 차별이란 벽에 가려진 차이임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저질체력을 가진 플레르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면서 복싱이란 스포츠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배운다. 매사에 걱정이 많은 엄마와 중립을 지키기 위한 두리뭉실 아빠 사이에서 자신을 숨기고만 있었던 플레르가 당당한 소녀로 다시 태어나는, 성장 이야기를 담아낸다.
"나는 이제 알겠어, 네가 복싱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가 말했다.
"바로 그 복싱 때문에 내가 차였다고!" 내가 말했다.
"아니야. 복싱 덕분에 너는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거야. 조지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거고, 조지가 그런 네가 싫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헤어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블러썸이 말했다.
"솔직히 모르겠어. 이게 진짜 나인지." 블러썸이 내가 모르는 대답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럼 어때? 왜 네가 이전의 너여야만 하는데? 너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되면 되는 거야. 그게 복싱 선수라도!"
블러썸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권투소녀』 218쪽
열아홉의 남자 친구 조지와의 이별, 이겨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보니타와의 대결, 안전제일주의 엄마에게 복싱 경기를 보여주는 것, 모두 플레르의 삶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을 배운 플레르, 그녀의 당당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은 십대의 모습이자 우리가 바라는 십대의 모습일 것이다.
『권투소녀』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된 플레르가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십대들을 응원하는 책, 바로 지금 '도전'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열정을 채우는 십대가 되길 희망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저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