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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평점 :
『 보통의 노을
이희영. 글
자음과 모음 』
몇년 전, 둘째 소녀가 친구 생일 파티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엄마, 우리 친구들 엄마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 그리고 친구 ○○네 엄마가 엄마랑 10살 차이가 나."한다. 친구 생일파티 다녀온 소녀의 말에 너무나 의아해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생일 주인공 엄마가 아이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가 하는 일과 나이를 물었다고 한다. 손님으로 온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 것이겠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가족의 일부를 들킨 것만 같은 불쾌감이 엄습해 온다.
우리는 '편견, 선입견없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교육하면서, 정작 실천해야 하는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판단하고 상처를 준다. 상처를 줬다는 일말의 양심도 없이 말이다.

이희영 작가의 『보통의 노을』 의 열여덟 노을이는, 서른 넷 엄마와 단둘이 살아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노을이를 낳은 노을이의 엄마 최자혜씨는, 노을이의 누나로 보일 만큼 어려보이고 젊고 작다. 남매로 착각하는 그들에게 항상 엄마라고, 아빠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최자혜씨, 한번 보고 말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밝히는 엄마를 노을이는 반갑지 않다.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최자혜씨는 나이 차가 많지 않아 받는 오해에 당당하다. 당당하기까지 그녀가 겪은 수많은 눈총과 편견 그리고 외로움은 얼마나 깊었을까, 곪고 터진 상처에 새살이 돋고를 반복한 세월만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회복력이 생겼을 것을 생각하니, 어린 그녀가 감당할 삶의 무게를 감히 나 따위가 잴 수나 있을까.
손끝에 딱딱하게 박인 굳은살과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툰 칼질로 어린 아들에게 이유식을 해 먹이던 시절에는 자주 칼에 베이고 끓는 기름에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 상처들이 지금까지도
수강도 가능했다.
고스란히 엄마 손등에 남아 있다.
지금 내 또래의 아이들, 멀리 갈 것도 없이 성하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말괄량이 천방지축이냔 말이다. 그보다도 어렸던 엄마였다. 차마 엄마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던 10대 소녀였다. 친구들과 군것질하고 연예인을 동경하며 시험 문제 하나에 웃고 울던 소녀가 하루 아침에 어른도 아닌 엄마가 되어 버렸다니. 그 삶이 어떠했을지는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나 보러 온거야〉중에서 33쪽
최자혜씨에게는 엄마보다 훨씬 큰 키에 단단한 몸을 가진, 엄마와 단 둘이 살게 된 배경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은, 엄마가 하는 말만을 믿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전부인 아들인 최노을이 있다.
노을이는 엄마가 자신을 선택했던 그 어린 나이를 지나왔고, 그 선택이 엄마에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엄마의 결정은 가족과의 인연을 끊어야 했고, 사회가 주는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으며,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막강한 책임을 져야 하는 외롭고도 고단한 삶이었음을 짐작한다.
노을이는 엄마보다 '최자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최자혜씨의 보호자이자 동거인이고, 밤길을 걱정하는 오빠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오늘을 살아간다.
“아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 맞지?"
나는 엄마의 이 말이 좋았다. 그래, 우린 잘하고 있었다. 좀 더 잘해 내려 노력했다. 그 결과 고작 열두 살의 나이로 방세니 생활비 같은 말들을 내뱉었지만, 누군가는 이런 내 유년을 두고 너무 철이 일찍 들었다며 안타까워할지도 모르지만 정작 나는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는 엄마를 보는 것이 좋았다. 엄마가 조금 더 일찍 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엄마는 늘 우리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우리란 말 속에는 내가 너를 위해서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협력이었고, 한 명이 앞서 걷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보폭을 맞춘다는 뜻이었다.
〈식어 버린 붕어빵〉중에서 75~76쪽
최노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리얼하기도 한 여자 사람 친구 성하가 있다.
엄마의 악세사리 공방과 성하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집과 같은 건물이기에 자연스럽게 만나 친구가 된 성하, 늘 혼자였던 노을이에게 거침없는 성하는 친구이자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성하는 오빠의 마음이 최자혜씨에게 향하고 있음을 눈치 챘지만, 그것은 오빠의 마음이라고 누구의 인정도 필요치 않다고 하지만, 노을이는 세상의 잣대에 또다시 상처받을 엄마가 걱정된다. 이젠 엄마를 건들면 그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을 만큼 자랐지만 엄마의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자신의 바람과 뒤섞여 혼란스럽기만 하다.
엄마는 세상의 냉대와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이다. 지금까지 내게 단 한 번도 생물학적 아적 아버지를 입에 올리지 않았던 건 그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다.
엄마의 마음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와도 같았다. 세상에 베이고 찔리고 뜯긴 상처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차라리 몸에 난 상처는 아물 수 있겠지만 마음속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안으로 곪아 들어간다. 엄마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엄마가 장난처럼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고 말했던 것은 사실 외모가 아닌 마음이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가 엄마의 마음 속에서는 오래 전부터 작동되고 있었다.
〈평범함이 뭔데〉중에서 100~101쪽
노을이는 여자 사람 친구로 못박은 성하를 소개시켜달라는 동우,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민 친구 동우, 동우라면. 그런데 자꾸만 신경쓰인다. 소개팅을 다녀온 성하의 무성의한 말투에 노을이는 동우에게 따져묻는다. 돌아온 동우의 대답이 노을이를 당황케 한다. 하지만 노을이에게 동우는 여전히 친구이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하는 동우에게서 세상의 편견과 마주서고 있는 자신과 닮은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동우에게도 노을이에게도 특별하다는 것을.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선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둘의 교집합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당겼나 보다.
세상은 절대 객관식 문제가 될 수 없다.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보통의 노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된 최자혜씨와 열여덟 아들 최노을의 특별함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의 길을 선택했던, 지는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이가 태어나면 나중에 꼭 보여 주고 싶다고 지은 이름 '노을'이를 키우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남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님을 세상에 당당하게 보여준 그들의 이야기.
『보통의 노을』은 평범함의 기준과 '보통'이라는 말이 가진 이중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남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있어야 하고 이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시선만 달리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
때에 따라서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만도 못한 것일 수도 있어."

내가 정한 기준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들을 사회가 바라는 이상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그 기준만이 옳다고 여겼던 나의 짧은 견해가 다름을 틀림으로 각인하고 그 틀에 모든 것들을 넣어 재고 따진 것은 아니었을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보통','평범'은 누가 잴 수 있나. 우린 모두 특별하다. 그 누구도 기준에 맞춰 살 수 없으며, 특별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으며 보통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특별한 우리만큼이나 우리의 삶 또한 특별하며 그 누구도 기준에 맞추라 강요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저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