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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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란 익숙치 않은 이름의 책 제목은, 단발머리 소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리고 아기의 발 한쪽을 꼭 쥐고 있는 사과머리 작은 소녀가 그려진 표지와 더불어 쓸쓸함과 그리움을 그린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수리가 한창인 배를 바라보며 등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잠깐 권정생님의 몽실언니가 스쳐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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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는, 집안의 맏딸 정은이의 눈에 비친 가족의 삶이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번갈아 가며 쓰여진 소설이다. 가족이 부산에 자리잡고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선박회사에서 선장으로 일하는 아빠는 실수로 다른 배와 부딪치는 사고를 내 큰 빚을 지게 되고, 엄마는 아빠의 부재와 빚, 다섯 명의 아이를 건사하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젖먹이 동생까지 동생만 넷을 둔 정은이는 중학교 진학대신 동생을 돌보는 집안의 맏딸 역할을 맡게 된다. 맏딸이기에 감당해야만 했던 책임감, 남동생보다 늘 뒷전이어야 했던 딸들의 서러움이 그대로 묻어나 셋째로 태어난 나의 서러움까지 더해져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동식이는 장남이라서, 정애는 아직 어리다고, 둘이 차례로 회비를 가져가고 나면 내 회비는 언제나 한두달씩 미뤄졌다. 장남은 챙기면서 장녀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아니다! 일하고 동생 돌보는 건 언제나 내가 먼저 지, 그건 다 아버지 때문이다.

"우리집 사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꼼짝없이 묶여 기특한 딸이 되어야 ͞다. 칭찬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깡깡이』 16쪽

 

배의 녹슨 때를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가 동네를 휘감는다. '깡깡 깡깡…' 일명 '깡깡이'라고 불리우는 작업을 했던 엄마는 남편의 진 빚과 외도 그리고 죽음까지, 밀려오는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남겨진 다섯 명의 자식들을 키워내기 위해 오늘도 깡깡이 일을 나간다.

 

깡깡이 망치 소리가 한여름 매미 소리처럼 쏟아지는 동네. 항구의 기름 냄새와 녹슨 쇳가루 냄새가 떠나지 않는 동네. 뱃전에 쓴 녹은 깡깡이 망치질에 떨어지기라도 했지만 엄마가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새 없이 일해도 가난은 떨어질 생각조차 않았다.

『깡깡이』 142쪽

 

1970년도 경제개발이 한창 이루어지던 시기, 누구나 힘들었다던 그 시기를, 정은이로 살았던 그 때 그 공간과 시간을 소환하여 쓴 소설이 바로 『깡깡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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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은,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다음 날 엄마가 계신 요양원을 찾는다. 고된 삶을 버리기라도 하듯 치매로 기억을 퇴색해버린 엄마, 그 곁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정은이의 마음은 깊은 곳에서 울림이 되어 흐른다.

살림 밑천 맏딸 정은이는 엄마의 곁을 지키고, 제일 먼저 육성회비를 냈던 큰아들은 결혼하여 처가와 함께 이민가고, 깡깡이하며 힘들게 젖먹여 키워낸 막내는 여섯살 되던 해 길을 잃고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고된 시간만큼이나 힘겨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엄마는 그렇게 하루 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회사원도 좋고 아나운서도 좋겠지만 나는 ……, 나는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될 거다. 지치고 힘든 사람을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마치 오랜 시간 꿈꾸고 고대했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교를 가야지! 어떻게 하면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공부를 해봐야지.'

『깡깡이』 152쪽

 

딸이기에 오빠와 동생에게 밀려 재산 한 푼 받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온 엄마, 엄마는 그것이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힌다. 남편대신 일하러 가야한 했던 엄마는 정은이를 학교가 아닌 동생들 곁에 남겨두기로 한다. 엄마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어 다섯 아이를 굶기지 않아야 하다. 그러기에 엄마는 정은이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를 끈길지게 괴롭힌 설움이 정은이를 보며 투영되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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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는, 한 숨에 읽혀지는 흡입력이 무척이나 강한 이야기로, 자식 키우며 자신을 희생했던 나의 엄마, 가난에 감싸주지 못해 비딱선 탔던 철없는 자식, 첫째라서 둘째라서 여자라서 막내라서 서러웠던 자식까지 모두 우리의 속내를 대신해 준다. 부산 앞바다 그 곁에서 깡깡이를 하고 있을, 했을 많은 엄마들의 손에서 우리들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가난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깡깡이』, 조용히 가슴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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