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쟁을 울려라! - 조선을 바꾼 아이들 숨 쉬는 역사 12
박지숙 지음, 김옥재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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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왜 배워야 할까?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할까?

       

학창시절 역사시간이 두려웠던 내가 우리의 역사를 알고 싶어 책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찾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10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알게 된 역사는, 기나긴 시간 중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견뎌낸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암기의 굴레에서 내 번호가 걸릴까 전전긍긍하며 보내야했던 그 역사를, 나의 두 소녀와 나누며 때로는 격분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우리의 역사 속으로 조심스레 첫발을 뗀 나의 용기와 공감에 스스로 대견타 여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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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쟁을 울려라!』는 연이와 홍이 그리고 행랑어멈의 아들 길수가 외갓집 구봉마을로 내려가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조선이란 나라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무명옷 입은 양반집 아기씨 홍이는, 배고픔을 이겨내고자 꽃을 따는 구봉마을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꽃지짐, 꽃전, 꽃국수를 말아먹으며 마음과 몸이 건강해지는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힘들게 하는 가난과 배고픔을 알게 되고, 사또의 횡포와 환곡의 폐해가 깊게 뿌리박힌 가슴 아픈 사연을 듣는다.                 

"언니, 음식은 배울수록 신비로워. 저 상추를 봐. 상추는 태양의 빛, 땅의 영양, 구름의 물, 바람의 공기로 자라. 자연의 도움으로 자라는 거야. 그런 다음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주지. "

 홍이는 덧붙였다. 음식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전하는 나눔이며, 희생이라고.

『격쟁을 울려라!』 95쪽                           

조선이란 나라가 가진 유교이념에 따른 불합리적인 신분제도와 권력의 횡포, 환곡의 이면에 가려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을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통해 들려준다. 또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역사의 한 단편 위에 '음식'이라는 소재를 곁들여 재미와 여운이라는 그릇에 담아내어 밥상 위에 올려진 것이 박지숙 작가의 『격쟁을 울려라!』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와 환곡의 이자 그리고 탐관오리의 횡포는 백성을 피폐하게 만들어간다. 홍이와 길수는 환곡이자를 제 날짜를 내지 못하여 관아로 끌려간 덕순이 아버지를 구하고 환곡의 날짜를 미뤄줄 것을 요구하며 꽹꽈리와 징을 들고 격쟁을 울린다. 나라에 억울함을 전하고 그 마음을 위로코자 울리는 격쟁조차 맹사또를 반성케하지 못한다.

                              

덕순이 아버지에서 홍이와 길수까지 옥에 갇힌 상황에서 연이는 마을 아이들과 허수아비를 만들어 맹사또의 욕심과 횡포가 잘못됐음을 꾸짖기에 이른다. 권력 앞에 묵묵히 살아가던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곧음에 용기를 얻어 맹사또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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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는, 구봉마을을 울리는 도토리 빗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흐르는 백성을 향한 소리를 듣는다. 백성들의 배고픔을 위해 도토리나무를 심은 그 마음, 홍이와 연이는 산불과 역병을 피해 밀려오는 유랑민들에게 도토리죽을 나누어주며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지만, 아버지 최진사에게만은 그 마음이 닿지 못한다.

 

홍이는 슬펐다. 길수는 연이와 홍이의 친구였다. 단 한 번도 길수가 천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헐벗은 백성을 구하려다 친구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신분의 굴레는 길수와의 우정을 용납하지 않았다. 홍이는 숨이 막혔다.

 [중략]

그 순간, 홍이는 알아챘다. 아버지와 길수의 싸움은 조선의 뿌리를뒤흔드는 것임을. 오랫동안 웅크려 있던 문젯거리가 용틀임하듯 튀어나오자 그것을 윽박지르려고 하는, 양반과 노비의 전쟁이라는 것을. 홍이는 무서웠다.

『격쟁을 울려라!』 135~136쪽

 

 

최진사는 연이와 홍이의 나눔을 양반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조용하게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해 길수에게 책임을 묻는다. 길수의 굳건한 마음 앞에 행랑어멈은 길수가 안고 있는 출생의 비밀을 세상에 펼쳐놓으며, 길수에게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 양반이라면 대접받는다는 조선이 가진 신분제도, 그 불합리성과 맞서 싸워가는 아이들의 올곧음이 세상을 용기있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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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 '아이들' 그리고 '음식'이 만나 이야기꽃을 피워낸 『격쟁을 울려라!』는, 나라가 정한 제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아이들의 닮아 있다. 자연과 더불어 만나는 아이들에게 신분은 의미가 없고, 친구의 아픈 사연에 사또 앞에 선 당당함은 욕심에 눈 먼 어른과 세상 이치라는 핑계로 엎드려 살아간 이들에게 일어설 힘이 되었으며,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나답게 살지 못한 최진사에게 비겁한 자신을 돌아보는 울림을 안긴다.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만들어진 '격쟁', 꽹꽈리와 징이 울리는 소리가 마치 고름이 맺힌 백성의 가슴 속 소리같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처럼 깊고 웅장하게 들려온다. 참고 참아온, 이겨내고 버텨온 백성들의 기운에 고개숙여 인사드리며, 『격쟁을 울려라!』를 통해 또 한편의 역사기록을 보듬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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