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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 ㅣ 푸르른 숲
내털리 로이드 지음, 이은숙 옮김 / 씨드북(주)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책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허구성을 가진 창작물이지만 그 속엔 꿋꿋함과 진짜가 담긴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 되기에 그 과정을 함께하는 순간이 참 좋았다. 어릴적 읽었던 소공녀 세라와 빨강머리 앤이 그랬고, 청소년기에 읽었던 제인 에어, 불과 2년 전에 읽었던 가정부 조엔이 그랬다. 모두 부모의 보살핌보다는 사회를 먼저 배워나가야 했던 그녀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나는 참 좋았다.
이번주에 내 손에 머물렀던 『분홍달』 의 '몰리'는,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은 채로 '암담하다'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한참을 멈춰 있었다. 광부였던 아빠는 기계 폭발로 시력을 잃는 사고로 일자리를 잃고, 엄마는 아빠 대신 탄광을 들어갈 수 없으며, 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팝스냅를 끼워야 생활이 가능함에도 탄광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동생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잣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기에 이른다. 몰리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상황을 꽤 덤덤하고도 씩씩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속은 답답해져만 왔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보이기만 하다.
스타패치는 살아 있는 것처럼 맨 손에서 아주 밝게 빛났다가 수그러들었다가 또 밝게 빛났다. 그걸 보자마자 내 가슴 속에 어떤 확고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 나는 아직도 꿈을 꿀 만큼 용감하다는 것이다. 17쪽
몰리가 사는 '잊힌 산'은 마치 신이 버리기라도 했듯이 먼지가 일고, 수호자들에 의해 지배되어 그들의 강압적인 지시에 따라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광부들의 고된 삶에서도 희망이 있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수호자들은 다친 아빠 대신 남동생을 탄광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오고, 아빠의 사고로 고장난 기계는 몰리네 가족 모두에게 빚으로 남기게 된다. 몰리는 빚으로 가득한 가정과 광부로 살아야 하는 동생을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한다.
"소년들이여,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에겐 꿈을 묘사한 것처럼 들렸겠지만,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위험하고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여러분의 공포와 대면할 가치가 있는가? 지금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60쪽
용감하고 패기있는 남자애만 받아준다는, 막대한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자 몰리는 모티머 굿과 수호자 앞에 서기로 결심한다.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말과 함께 금가루를 가지고 오면 그 무게만큼 돈을 지불한다는 솔짓한 광고가 마을의 많은 아이들을 깊은 산으로 불러 모으게 되고, 그 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모험과 도전 그리고 거짓에 가려진 진실과 마주서게 된다.
몰리는 여자라는 것이 들통났음에도, 가정부로 일하는 부잣집 아이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버틴다. 그것만이 가족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몰리에게 가족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존재이며, 그들이 있기에 용감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몰리의 생각이고 의지이다.
몰리는 자신에게 배당된 말, 레온과 함께 금가루를 담아오기 위한 모험에 모든 것을 건다. 그녀의 간절함은 레온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그녀의 위험한 순간과 가짜로 뒤덮인 진실이 드러내는 순간을 함께 하게 된다. 몰리는 '잊힌 산'이 된 마을의 비밀을서서히 알아가게 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속고 있는지 정체를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전보다는 조금. 너는?"
내가 솔직히 대답하자 아담이 털어놨다.
"나는 아직도 어젯밤 일 때문에 몸이 떨려. 괴수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어. 모티머와 수호자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더니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는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겠는가? 모티머가 괴수를 만드는 걸 본 것 같다고? 모티머를 화나게 하면, 이 자리를 잃고, 어쩌면 이제껏 번돈까지 잃을 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다. 165쪽
『분홍달』 이라는 제목이 너무 고와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책장을 여는 순간에는 그 동안 읽어왔던 '동화'와는 또 다른 현실과 고민 그리고 모험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이 버린 땅 '잊힌 산'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던 말들이 사라지고, 마을은 항상 뿌연 먼지에 가려진 채 수호자들의 지시에 따르며 하루하루 벼텨가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 그들은 변해가는 마을만큼 마음은 말라가고 서로를 향한 시기와 불신에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 마을을 '빛나는 산'으로 만들어가는 용감한 소년들 그 속에 "하늘을 나는 용감한 소녀 몰리"가 있다.
우리는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이제까지 모르는 채 살아갔다는 어리석음과 속았다는 억울함을 우리는 패배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몰리는 자신이 가진 신체의 불편함과 가족의 무능력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아지지 않는 삶이 벅찰 뿐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 가려진 진실과 부딪힐 용기를 낼 줄 아는 소녀이다.
『분홍달』 은 한 마을에서 일어난 거짓이 가린 진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용감한 소녀 몰리와 함께 하는 새로운 배경과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만나는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기에 너무나 좋은 동화 한 편, 햇살이 참 좋은 봄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