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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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 오빠가 내 방에 '툭'하고 던져 놓고 간 책이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였다. 며칠 전 오빠와 라디오 들으면서 '제목 좋네'했던 내 말이 떠올라서 서점 가는 길에 사왔단다. 그 때 처음으로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몇 권 더 찾아 읽으면서 새로운 사고의 세계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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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출판된 『도쿄 타워』는, 15년이 지나 개정되어 재출판되면서 나에게 읽을 기회로 다가왔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읽기 전, 무슨 각오라도 하듯 심호흡을 하게 하는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나의 생각 그리고 그동안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나의 틀에 새로운 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그의 간결하고도 명확한 문체가 나의 마음을 열고 틈을 만드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도쿄 타워』는, 갓 스무살이 된 토오루와 코우지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 둘은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에 대한 사고도 다르지만, 40대 가정이 있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사회로 갓 나온 스무살의 청년과 가정이 있는, 청년들이 살아온 시간보다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온 여인과의 사랑이 가히 성립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다가 정해진 답이 없는 유일한 감정 '사랑'에 선을 긋고 있는 나의 편견이 너무나 어설프고 구차하다는 생각이 미쳤다. 나의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자, 토오루와 코우지가 하는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에쿠니 가오리가 나의 마음 한 켠에 틈을 만들어 들어오는 힘이다. 난 그 힘을 또 한 번 느끼고 만다.

무기력해 보이지만 사랑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활용할 줄 아는 청년 토오루는, 오늘도 시후미를 기다린다. 토오루는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책을 읽고, 그녀와 함께 들었던 음악을 찾아 듣고, 그녀에게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며, 나름의 사랑을 하며 행복을 즐긴다. 토우루의 친구인 코우지는 '버리는 건 내 쪽'이라는 규칙을 정해놓고 즐기는 사랑을 한다. 동시에 여러 명과의 사랑도 가능한, 무척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진지하지 못한, 사랑이 가진 무게가 무엇인지 모르는, 쿨한 이별을 앞둔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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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루와 시후미의 사랑엔 감정이란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감정이란 흐름이 서로의 정신을 흘러내리고,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그 순간이 감사한, 그렇지만 누군가의 부인임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함께 사는'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랑을 한다.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117쪽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시후미와 연결된 시간. 이곳에 시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시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22쪽

 

 

토오루에게 사랑은 어쩌면 공기와 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다. 시후미와 떨어져 있어도 그녀와 함께 한 시간들로 충분히 행복하고, 그리움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그녀가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이 토오루에게는 각인되는, 그의 가슴 한 켠에 깊이 뿌리내리는, 그런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코우지에게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마음을 준다는 행위였다. 묘하게 연상의 여자한테는 마음을 허락해 버린다.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여자에게만, 자기 사 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321쪽

 

 

 코우지는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버리는 것을 선택한 순간에도 초조하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해서,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뻗어나온 가지가 그를 향하고 있어서. 코우지는 가지지 못할 걸 알기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기에 사랑한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사랑이고, 놓치려는 수간에 버리면 되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래서 그는 는 사랑하지만 허전하고 여유로움이 불안하다. 

 

토오루와 코우지의 사랑을 무어라 단정할 수 없다. 젊은 청년의 호기라고 하기엔 깊고, 첫사랑의 풋풋함이라고 하기엔 농익었다. 사랑이 가진 또 다른 색을 내는 두 청년의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사랑도 흐른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을 한 도쿄 타워와 두 청년 그리고 깊은 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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