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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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문구점 앞을 지날 때면 삼삼오오 모여 이마를 맞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맞댄 이마가 열리면 그제서야 보이는 뽑기 기계에서 나온 동그란 플라스틱 뽑기 선물, 서로 무엇이 나왔는지 확인하는 그 순간이 그들에겐 가장 짜릿하고 설레는 시간이겠구나 싶다. 내가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기다림과 수긍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뽑기 기계를 통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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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는, 뽑기 기계 앞에서 1등을 간절히 원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잠깐 마음이 흔들리지만 뽑기 기계는 상술이라고, 1등은 한 통에 하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선다. 아빠 바지에서 나온 500원으로 한 번 해 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정말 꽝!이면 하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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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희수의 머리카락을 날리고, 낯선 골목으로 들어선다. '꽝없는뽑기 기계'라는 말에 선듯 500원을 넣고, 누군가 쓰다가 버린 듯한 칫솔 두 개를 받는다. 선물은 고작 '칫솔'이지만 빈 손은 아니기에 조금 위로가 된다.

희수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영준이네 엄마가 라볶이를 해 주었을 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나오지 않았고, 영준이가 학교에 빨리 오라고, 급식 시간에 너무 심심하다는 말을 할 때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 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희수와 언니를 보살펴 주러 오시지만, 희수는 여전히 마음이 빈 것만 같다. 곧 유치를 발치하러 치과도 가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는데,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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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지만,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그립다. 엄마 아빠의 냄새가 나는 것 같고, 함께 했던 시간의 즐거움도 느껴진다. 희수가 기억하는 냄새와 시간이, 희수의 용기까지 빼앗아 간 건 아닐까? 희수는 아직 겁이 난다. 언제까지일지는 희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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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 그 동안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만다.

"다 나 때문이에요. 잘못했어요."라고.

아빠 엄마를 보내야만 했던, 가슴에 묻어둔 상처를 꺼내지 못했던 희수가 드디어 입을 연다. 내내 꽁꽁 숨겨두고 혼자 가슴앓이 했던,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희수였다. 희수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고, 남은 자의 미안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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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죽음으로 혼자만의 세상을 살고 있던 희수가 '꽝없는 뽑기 기계'에서 받은 칫솔과 색연필 그리고 책을 통해 세상으로 한 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게 된다. 냄새날 것만 같은 운동화, 그 동안 쓰지 않은 그림일기, 매일 읽던 책까지 희수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꽝없는 뽑기 기계'가 찾아준다.

'꽝없는 뽑기 기계'라는 제목이 주는 벅차오름과 환상이 희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힘이 되어 주는,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동화 『꽝없는 뽑기 기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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