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파링 파트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6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하령 작가를 통해 만난 『나의 스파링 파트너』 는 6편의 단편들이 모여 우리가 몰랐던, 모른 척 했던, 지나갈 거라고 가볍게 넘겼던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십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자란 십대가 자기가 속한 공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어른에게도 같은 십대에게도 뭉클함 그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함을 느낀다.

 

 

sparing1.jpg

 

남학생들끼리 여학생들의 외모순위를 매긴 것을 알게 된 나는, 설문을 만들어 돌린 홍모의 장난스러운 행위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외모 순위 2등인 내가 발끈하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는 '1등을 하지 못해서, 2등임을 알리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오해를 사고 만다. 난 결코 그의 장난스러움 속에 감춰진 악의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주고 싶지 않다. 홍모에게도 장난은 결코 장난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싶어 그의 자전거 걸쇠를 열어두었다. 걸쇠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홍모는 긴장할 것이라는 나의 작전. 정의의 공은 언제든 누구든 굴려야 한다는, 내가 굴린 공은 방향을 틀어버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는 「굴러라, 공!」

 

sparing2.jpg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해진 공간 속에서 우리는 방관자의 자리를 선택한다. 가해자로 욕먹고 싶지 않고, 피해자로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방관자의 자리를 안전지대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다음은 방관자자리의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지 못한채 말이다. 가해자를 향해 날아온 공은, 또 다른 공이 되어 가해자에게 이유도 모른 채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잔혹한지 한번쯤은 안겨주고 싶었던 '나'. 그녀의 공이 방향이 틀렸을지라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을지라도,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서 고민하고 시도한 용기에 깊은 포옹을 해 주고 싶다.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야 선명하게 보이는 일이 있대. 그때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던 나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겠지. ‘감히’라는 강은 이제 없을 거야.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고 견뎌 냈고 그러면서 단단해졌거든. 고통의 속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말야. 아빠로 인해 내가 달라지는 건 없어.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니까. 산다는 건 부조리를 받아들이면서 일어서는 거래. 아파도 도망치지 않고 여름을 깨물 거야.

여름을 깨물다. 64쪽

 

아빠의 미투로 이모네 집에 잠시 온 나의 눈길이 나도 모르게 머무는 곳이 있어, 잠시 아빠와 엄마를 잊고 온전히 집중했을 뿐인데, 나는 그만 사촌뿐 아니라 사촌 친구구들에게 '아빠를 닮아서'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만다. 순수했던 내 맘까지 짓밟힌 나에게 "감히 네가"라고 단정짓는 말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은 지났고, 그날의 나는 지금 더 성장했고, 덜 아파지고 있으니 일어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에겐 누구나 힘들고 지친 시간이 있을테니, 그 시간만큼 성장하는 내가 된다면 우린 좀 일찍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거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언니가 안 밀렸으면 얘기했을지도 몰라. ‘나 침대에서 자 봐도 돼요?’ 이렇게 얘기했겠지. 근데 언니가 힘없이 밀리니까 그냥 내 맘대로 한 거지.”

“웃긴다, 그 말. 까이니까 계속 깐다는 말.”

“언니, 웃고 말 일이 아니야, 또 까이지 말라고. 나는 낼 돌아가지만 나 같은 애를 또 만날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알아서 기지 말라고?”

“그렇지.”

“그래야 하려나?"

“언니네 엄마 아빠도 언니가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잖아. 아플 땐 악 소리 내야지.”

“그러게.”

어쩌면 난 정말 내 감정 표현에 너무 서투른 건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리액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내 감정에 이름표 정도는 붙여 줘야겠다.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 90~91쪽


수아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까칠하고 이기적인 딸이고 누나가 된 나는 지금 너무나 외롭다. 잘 참아내고 하라는 대로 잘 한다고 애써왔는데, 그 동안 내가 해 온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말을 안 했고, 힘든 내색이 없었으니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건 내 잘못도 그들의 잘못도 아닌데, 난 참 힘이 든다. 이제는 안다. 내가 너무 오래 참아내고 이겨냈다는 것을. 싫다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고 말할 것을,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 좋아한다고 말할 것을 너무나 오래도록 안하고 살았나보다. 표현이 서툴러 마음이 아픈 뒤에야 뒤늦게 맘을 들여다보게 된 나연이의 이야기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



"야옹아, 두려워하지 마."

마치 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의 두려움을 보고 놈은 내게 다가섰을 거다.

난 이제 놈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주먹을 내지를 것이다. 놈은 나를 단련시킬 스파링 파트너이다.

나의 스파링 파트너. 122쪽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이 있었나. 친구의 사물함에서 우연히 발견한 담배 한 개비 피워보겠다고 찾아간 성당 뒷마당 그리고 도움을 구하는 여학생의 목소리와 서둘러 자리를 피하면서 떨어뜨린 내 핸드폰. 그 날 밤 일어난 사건으로 나는 어린 녀석의 볼모가 되고, 있지도 않은 알리바이로 나와 그 녀석은 함께가 되고, 그 녀석이 나에게 건네는 시선이 불편하기만 하다. 의도치 않게 휩쓸린 사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나는, 담배도 여학생의 목소리도 그 녀석의 집요한 알리바아가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그 두려움은 갑갑증으로 전환되었고, 결코 이대로 그 녀석에게 무너지고 싶지 않다. 그 녀석이 한 번만 더 건들어오면 주먹을 뻗을 각오 정도는 하고 말겠다는,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수많은 일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기 위한 연습 게임 정도로 삼아주겠다는 나의 이야기 「나의 스파링 파트너」

 

 

sparing3.jpg

 

세상에서 나만큼 아프고 힘든 사람은 없을 거라고 단정짓으며, 세상 근심 혼자 다 짊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다니는 우리의 십대, 그들의 아픔은 그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딛고 일어설 땅이 되어주는 것은 부모이고 형제이고 친구이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친구 뒤를 따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친구와 쌍둥이 친구 언니, 그들이 가진 민낯을 보면서 삶이 주는 진짜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친구의 당당함을 따라하면서 자신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보는, 자신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보는 이야기 「마이 페이스」



『나의 스파링 파트너』 는 나의 곁을 지나쳐가는 십대들의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교복 속에 가려진 그들의 아픔이 나에게로 와 걸러진다면, 하는 기대와 그들이 자신을 찾아 가는 여정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함께 하였다. 현실과 이상, 가정과 학교, 부모와 친구, 친구와 나, 여러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중인 그들에게 좀 더 관대한 어른이 되어주고 싶은 시간이다.

 

서명4.p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