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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수지 홉킨스 지음, 할리 베이트먼 그림,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 아이들이 처음으로 거부하는책이 생겼다. 푸른 잔디위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소녀와 그 곁으로 놓인 책과 편지가 평온함을 안겨주는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배송된 책들은 식탁 위에 놓였다가 제자리를 찾아 책방으로 들어가는데, 이 책 한권만은 내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어, 내가 먼저 읽고 두 소녀에게 읽어보라고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거절한다. 언젠가 있을 엄마의 부재를 수용하기엔 너무 어린가 싶기도 하다가 낯섬에서 오는불편함이 먼저일거라는 생각에 서가에 잘 꽂아 놓는다.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은 엄마가 딸의 곁을 떠난 뒤에 일어나는 일들과 혼자 남게 되는 딸이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놓은 책이다.
지난 주에 남편님과 점심을 하면서 부모님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죽음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의 손이 필요한 나이에 부모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까지, 어떠한 것도 정해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얘기하는 중에 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메여왔다. 부모는 나에게 직접적인 무언가를 주지 않는다해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든든해지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두 소녀의 부모로 살고 있는 우리 부부 또한 그들에게 그런 힘으로 존재함이 감사하면서도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엄마와 딸이 나눈 죽음에 관한 대화는, 현실로 다가오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딸, 떠나는 엄마는 떠나기 전까지 떠나는 그 순간에도 혼자 남겨진 딸을 걱정한다. 그 마음이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에 온전히 담겨 있다.
엄마의 죽음과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손님들을 맞이하고 부고를 쓰고, 엄마를 떠나보내는 절차 그리고 감정 변화에 대한 표현법 등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다만 우리의 장례절차와 차이는 있지만,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에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엄마는, 혼자서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해결해가야 하는 요리와 청소, 사랑과 결혼, 도전과 모험에까지 엄마의 당부와 현명한 선택들에 대해 짤막하게 부탁의 글을 남긴다.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은 이미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엄마는 딸의 곁을 떠난다. 딸 또한 엄마와 분리되어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간다. 하지만 때때로 그리울 것이고 때때로 부재가 주는 슬픔에 젖어 힘이 들 수도 있다. 그 또한 엄마도 딸도 잘 알고 있다. 그리움은 맘껏 그리워하는 것만이 이겨낼 수 있음을.

딸을 생각하며 쓴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은 한 여자의 딸이고, 두 소녀의 엄마인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앞으로 보내야 드려야 하고, 떠나야 하는 입장에 놓인 나. 그리고 그리움으로 한동안 힘들어할 나. 결코 발길을 돌리고 싶지 않아 미련을 둘 나. 나에게 이 책 한권이 주는 사무침은 꽤 깊게 자리한다.

엄마의 죽음은 곧 먼 훗날 딸의 죽음에까지 이른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도 엄마의 삶에 주인공은 딸이었는데, 딸에게는 삶의 주인공이 딸임을 잊지 말라 한다. 끝까지 엄마일 수 밖에 없는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실은, 내가 죽기 한참 전부터도, 주인공은 계속 너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