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문학 그림책 6
권정생 지음, 정순희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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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읽었던 전래그림책에는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어요. 조금은 어리숙한 사람을 곧잘 도와주는, 사람은 아닌데 사람같은, 사람같지만 결코 사람은 아닌 바로 도깨비에요. 개암 깨무는 소리에 놀라 도깨비옷을 두고 도망간 도깨비, 빌려간 돈 갚겠다고 매일 밤 돈다발을 두고 가는 기억력 상실의 도깨비, 꼬리 잘린 자신을 도와준 돌쇠가 고마워 황소 뱃속에 들어간 도깨비까지, 우리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소재이지요. 그럼 오늘 만나게 될 도깨비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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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시골 향내가 절로 퍼져오는 표지의 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은 권정생 선생님이 1988년에 처음 출간된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되어 있는 동명의 단편동화를 새롭게 해석한 책으로, '내 짝꿍 최영대'를 그린 정순희 그림 작가님의 그림과 함께 세상에 나온 그림책이에요.

푸근한 만구 아저씨와 아저씨 손에 들린 끈으로 연결된 송아지 한 마리, 그 곁을 맴도는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그 모습을 나무 기둥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밤톨머리를 하고 있는, 바로 안동의 도깨비 톳제비가 우리의 눈을 편안하고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 주며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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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 아저씨는 신바람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아주머니의 꽃바지가 든 부대를 어깨에 걸치고, 잠바 주머니엔 두둑하게 몫을 받은 묵직한 돈다발이 든 지갑까지, 아저씨는 콧노래가 절로 아는 그런 날이었지요. 산 속 나무 기둥 한 켠에 구덩이를 파고 큰 볼일까지 시원하고 보고 나니,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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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사온 꽃바지에 아주머니의 얼굴을 함박꽃처럼 환하게 피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부대에도 잠바 주머니에도 바지 주머니에도 없는 돈지갑에 당황스럽기 그지 없어요. 분명 잠바주머니에 넣었는데 말이에요. 아무리찾아도 없어요. 그 돈은 꼭 필요한 곳이 있는데 말이에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별일은 없겠지요.

윗목에 물린 저녁상과 부대속에 꽁꽁 감춰져 있던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이 방 한가운데 풀어져있어요. 아저씨가 사온 꽃바지를 몸에 대보며 웃음짓는 아주머니와 부대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며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얼굴 가득 번진 아저씨,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의 표정이 보는 재미를 더해주어요. 시골 방 안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 평온함과 정겨움을 더해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표정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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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어요. 아저씨의 손에 돈지갑이 들려있고, 덩달아 아주머니의 입가에도 함박웃음이 달려있지요. 지갑 속에 든 돈도 그대로, 아저씨이 발걸음도 가볍게 만들어주어요. 밤새도록 그 자리를 지켜준 돈지갑, 돈지갑이 아저씨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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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간 그 날 밤, 숲을 찾아온 손님이 있어요. 마치 시골 마당을 쓸어내는 빗자루를 연상케하는 머리칼을 끈으로 질끈 묶은 헤어 스타일과 펑퍼짐한 한복을 입은 도깨비 바로 안동이 '톳제비'가 바로 그 손님이지요. 아저씨가 잃어버린 돈지갑을 발견한 톳제비 가족, 돈지갑을 활짝 열어 속을 들여다봐요. 종이 뭉치, 톳제비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요? 도깨비라면 알 것 같기도 하고, 도깨비라서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권정생 그림책에는 다정함이 묻어있어요. 잔잔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왔을 때는 살포시 미소지어지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지는 조바심을 내게 하지요. 내 입에서 다른 이의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 그것이 바로 권정생 그림책의 힘이며, 내가 그림책을 여전히 읽고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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