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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서툰 엄마 사랑이 고픈 아이 -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이보연이 전하는 아이 사랑의 기술
이보연 지음 / 아울북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눈에 보이지 않죠? 하지만 신체 모든 감각을 통해 살아있음이 느껴지지요?
그것만으로도 이 아기는 엄마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임을 엄마에게 아빠에게 당당하게 전달하고 있는 거예요.”
출산을 두 달 앞두고 나간 임신출산교실에서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과 설렘만 가득했던 나에게 그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참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였다.
둘이서 시작된 가족의 울타리 속에 아이가 탄생하면 그 울타리 속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오고간다. 곧 만나겠지 하는 기다림을 시작으로, 이렇게 요렇게 생긴 모습의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기대와 바람을 꿈꾸며 열 달의 시간을 맞이한다. 막상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그 어떤 것보다 건강한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와 준 것만이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고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만큼 가슴 벅차다.
그런데 이 마음은 정말 하루도 채 가지 않음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느낄 수 있다.
건강하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쌍꺼풀이 있었더라면, 눈이 좀 더 컸더라면 하고 바라는 마음부터
나의 이런 점만은, 아빠의 이런 점만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따라 앞으로 무얼 가르치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오직 나만의 욕심과 잣대로 아이의 앞날을 결정짓고 있는 나를 보면서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우리 엄마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며, 무엇이 되길 진심으로 바래오셨을까?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가 나에게 ‘공부 잘 해서 무엇이 되어라’라는 바람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엄마라고 왜 자식 넷을 키우면서 꿈이 없고 바람이 없었을까? 엄마는 소위 말하는 가방 끈이 긴 것도 아니고, 훌륭한 가정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생활이 전부였다.
간식을 나눠주면서도 큰 놈 작은 놈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500원짜리 과자 한 봉지였고,
벌을 설 때도 똑같은 크기의 화분을 두 손으로 받치는 것이었으며, 물려 입는 옷이 신물 난다고 작은 놈이 투정부리기 전에 새 운동화와 새 옷으로 그 마음을 미리 달래주는, 그 마음이 자식 넷을 사회에서 제 몫을 해 내며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였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엄마가 자식을 위해 얼마나 애써 오셨는지 그 노고가 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들로 태어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먼저 달래주려고 하는 철이 너무나 일찍 들어 어두운 아이. 미정이.
미정이가 상담실을 오게 된 것은 엄마 아빠의 뜻이 아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인한 억지걸음으로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기에 상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아빠의 반대에 부딪히고, 엄마는 얘만 아니었으면 아무 문제없는 집인데, 미정이로 인해 문제 있는 집이 되었으며, 아빠와 시댁으로부터 눈치를 받아야 하기에 상담실을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불만인 엄마는 상담 선생님에게 그 어떤 소리라도 들을까봐 돌아서는 발걸음이 분주하고, 시선 마주치기 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그것은 미정이에게서도 똑같이 보여지는 모습이다.
아빠에게 한없이 순종하며, 싸움조차 하면 안 되는 줄 알며 살아왔다는 엄마와 아들이란 이유로 어른들의 사랑부터 모든 걸 쥐고 흔드는 남동생에게 주눅 들어 누나로서 단 한번 큰 소리 내지 못한 미정이는
아주 행복한 모녀 사이가 될 수 있었는데도 어린 시절의 상처와 함께 바로 앞에 떨어진 불똥을 끄기에 급한 엄마의 마음으로 서로 바라볼 뿐 다가서지 않는 모녀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표현하는 것조차 미숙하고 모양새 좋은 가족의 모습을 위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기에 바쁘던 미정이네 가족에게 미정이와 엄마의 변화는 사람 냄새 나는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주 행복한 결과라 하겠다.
엄마가 곁을 떠날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마음에서 무조건적인 이해로 엄마의 작은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는 미정이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가졌던 상처가 고스란히 딸 미정이에게 전달되었으며, 그러면서도 엄마에 대한 사랑만은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참고 참고 또 참았다는 사실이 상처투성이 엄마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도려내고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와 미정이는 서로를 가여워하는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정이의 상담치료 과정을 읽어내려 가면서, 미정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꼭꼭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면서 한편으론 그 문제점을 혹시 내가 내 아이에게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는 아닐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미정이가 무관심에서 반항으로, 호기심에서 마음 열기의 과정을 거쳐 가며 진정한 미정이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 어떤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엄마와 아이 그리고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전해준다.
미정이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으며 베시시 짓게 된 미소와 희망으로 책장을 덮게 되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