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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 - 1996 보스턴 글로브 혼북 대상 수상작 ㅣ 상상놀이터 8
애비 지음, 원유미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9월
평점 :
오늘은 파피에게 아주 행복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대범하고 호기심많은 황금 생쥐 래그위드에게 청혼을 받아 가장 행복한 생쥐로 기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고도 수리부엉이 '미스터 오칵스'의 허락을 받은 것도 진정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래그위드는, 미스터 오칵스에게 잡혀 먹이가 되어 파피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파피에게 닥친 비극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모른채 집으로 돌아온다.

파피의 아빠 렁워트는 많은 가족들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점점 불어나는 가족들에게 닥친 식량 부족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강행해야 한다. 새로운 터전으로 지목한 곳은 미스터 오칵스가 사는 딤우드 숲을 지나 있는, 넓은 옥수수밭을 곁에 두고 있는 뉴하우스이다.
렁워트는 고슴도치로부터 생쥐 가족을 보호해주는 미스터 오칵스에게 이사를 허락해 달라는 간절함을 담은 연설문을 들고 파피를 앞세워 그의 둥지를 찾는다. 미스터 오칵스는 먹이감사냥에서 두 번이나 놓쳐버린 파피를 본 순간, 렁워트의 간절한 제안은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많은 가족을 이끌어가야 하는 렁워트는 앞날이 걱정되어 병이 나고, 파피는 래그위드를 말리지 못하고 마을을 벗어난 실수가 가족 모두를 궁지로 몰았다는 생각이 괴롭힌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파피 자신의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정말로 자신과 래그위드가 저지른 일 때문에 다른 쥐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못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희생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려 수염을 타고 배개 위로 뚝 떨어졌다.
89쪽
파피의 모험은 시작된다. 미스터 오칵스의 눈을 피해서 뉴하우스까지 가보는 것, 그 곳에 있는 무엇이 생쥐들의 이사를 막는 중대한 이유가 되는지 파피는 알아보기로 한다. 강을 건너야 하고, 숲을 지나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을 파피는 시작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비극이 가족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은 그녀의 도전은 용기이고 희생이다.
미스터 오칵스는 머리가 아프다. 뉴 하우스에서 목격한 것과 뉴 하우스로 이사를 가겠다고 요청하는 생쥐 가족 때문이다. 곁에 두고 언제든지 먹이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쥐들의 이사와 새로운 누군가의 등장은 평화롭던 미스터 오칵스의 생활을 뒤흔들어놓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심기를 자꾸만 건들어오는 작은 생쥐 파피의 등장은 더욱 그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파피의 모험길에 빛이 되어준 고슴도치 에레스의 등장은 이야기에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직선적이고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나 할 법한 말투의 소유자 에레스는, 그 동안 생쥐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비밀을 한번에 뒤집어주는 명쾌한 답변과 함께 미스터 오칵스를 한방에 제압하는 통쾌함을 보여주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 중인 파피에게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하다.
"잘 들어, 오칵스. 자네와 마찬가지로 이 생쥐에게도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네. 자네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게!"
152쪽
작은 영웅 파피, 로맨스틱한 상황에서 시작된 파피의 시간이 가족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자신의 희생만이 필요한 절박한 시간으로, 천적인 고슴도치와 숲의 지배자 미스터 오킥스의 눈을 피해 뉴 하우스까지 가야 하는 숨막히는 모험의 시간을 혼자서 견뎌야 한다. 외로움 또한 파피가 이겨내야 하는 디딤돌임에 틀림없다.
표지에 그려진 생쥐 한 마리, 왼쪽 귀에 매달린 귀걸이와 두 손으로 힘껏 잡고 있는 고슴도치 가시까지, 달빛이 고운 하늘 아래 마치 꼬마 전사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 『파피』 서로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도 용기도 도전도 필요하다. 그것이 누군가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