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벡 도리-스타인 지음, 이수경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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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작가도 출판사도 편집자평도 보지 않고 제목에 끌려서 나도 모르게 집어드는 책이 있다. 나의 독서 수준을 높이 평가한 무모한 선택에는 나의 촉에 엄지척을 하는 경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여 버거워 읽다가 덮게 되는 경우, 책장을 넘겼다가 바로 덮는 경우, 잘 안 맞는 듯 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겠는 경우가 있다. 책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도 옳지 않은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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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끌린 책이다. 고요함과 냉철함 그리고 논리정연한 대화가 오고가는 백악관에서 핑크 슈즈를 신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너무나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는 과감하게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대리 만족의 박수를 쳐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벡이라는 애칭을 가진 레베카는 명문학교 시드웰 프렌즈 스쿨에서 3개월 계약직으로 학습지도 교사로 근무하던 중, 국회의원 속기사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타이핑 정도쯤은, 하는 맘으로 이력서를 제출한다. 벡은 합격 소식과 타이핑만 잘 치면 되는 것이 아닌, 백악관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녹음하고 정리하는 속기사임을 알게 된다.

계약직 인생을 탈출하고 정규직으로 살고 싶은 20대 구직자의 꿈은 이루어졌다. 한번도 생각지 못한 공간 속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벡은 정치도 정치인에게도 관심이 높지 않은 평범한 시민인지라 당황스럽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는 작가 "벡 도리 스타인"이 백악관의 속기사으로 활동했던 20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백악관의 모습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곁을 지키는 드러나지 않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첫번째 유혹이 아닐까 싶다.

"큰 꿈을 꾸어라!"

 실파가 웃는다. 하지만 나는 어리둥절하다.

"포터스가 딸들을 위해 서류에 서명할 일이 있을 때

딸들한테 써주는 말이에요."

"큰꿈을 꾸어라?"

나는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본다.

실파가 환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어린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이다.

우리 대통령은 정말이지 왜 이렇게 멋진거야.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108쪽

 

작가 "벡 도리 스타인"은 우리나라 서울 한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두 해 여름을 보낸 경력과 메로나를 너무나 좋아하는, 그런 그녀는 백악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이다.우연한 기회로 시작된 속기사는, 화면 속에서 봤던 이들을 직접 만나고, 한번도 보지 못한 벡을 경계하는 낯선 이들의 사이에서 일을 배우고, 사람들에 배워 나간다. 벡은 백악관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시간동안 외로움이라는감정과 싸워이기면서 사랑과 이별, 우정과 배신 등을 경험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꿈꾸던 삶을 산다'는 말은 백악관 세계의 생활을 표현하는 우리만의 은어 같은 것이다. 놀랍고, 스테레스 넘치고, 피곤하고, 낙담할 때도 많지만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떠올리는 순간 그 모든 게 감내할 만한 것이 되는 그런 생활. 그리고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라는 말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지금 당장 누군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5분이라도 쉬지 못하면, 지금 당장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일주일 동안 휴가를 떠나지 못하면 조만간 누구 한 명 죽일지도 몰라'라고 쓰고 싶을 때 대신 쓰는 말이기도 하다.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123쪽

 

벡이 만난 백악관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가보고 싶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이들이라면, 반듯하고 정직하며, 이념적으로 철저하고 모든 일에 책임감이 투철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또한 나의 편견이었다. 특수한 공간이자 좁은 사회인 백악관 안에서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계심이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그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도 사랑도 우정도 배워나가는 벡의 모습이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가 주는 두번째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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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쉽사리 볼 수 없는 대통령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숨가쁜 일상을 보는 재미와 그녀의 곁에 동료와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그들과 나누는 새로운 일상이 주는 신남의 시간이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이 주는 세번째 유혹이다. 벡은 그 속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순간을 글로 기록한 벡의 부지런함과 섬세함이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를 쓰는데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백악관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에서 대통령의 곁에서 일하는 속기사, 백악관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 중 일명 속기사쯤으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속기사, 그녀를 기억하고 싶다. 최고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지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백악관의 속기사라고. 또한 블랙 슈트사이에서 화려운 꽃무늬 프린팅바지를 입은 속기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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