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문예반 바일라 6
장정희 지음 / 서유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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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행인1로 살아가겠노라고 당당히 밝히는 고2 소녀 고선우. 선우와 함께 그녀가 살아가는 시간을 공유하는 이야기가 "문예반"이란 공간과 만나 전해지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자극이 되어 준 『사춘기 문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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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내가 제일 먼저 선택사항에 둔 것이 학교 동아리에 '문예반'이 있는지였다. 그리고 그 학교에 입학해서 3년 동안 문예반 회원으로 활동한 시간이 있었기에 『사춘기 문예반』이란 제목부터 선우의 문예반 입단 그리고 그 곳에서 오고가는 과제와 시화전 준비 과정이 반갑고 설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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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지도, 책을 많이 읽지도 않은 내가 문예반에서 일주일에 몇편씩 창작물을 내야 하는 숙제를 받고, 숙제를 하면서 참 많이 고민하고 어설프게 글 쓰는 척을 했었더라는,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꽤나 진지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너무나 어설펐던 나의 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나그네'였다. 아버지의 고된 삶을 나그네에 비유하고, 그의 힘겨움을 '막걸리 한잔'으로 표현한 나의 어줍짢은 어른 흉내 시를 나는 지금도 글을 쓸 때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때처럼 척한 글은 쓰지 말자고.

 

 

"과제 하듯 독해의 의무를 안고 작품 감상을 하면 문학이 멀어지기 쉽다. 그러니 손에 잡히면 잡히는대로, 안개처럼 뭉글뭉글한 느낌이면 그대로 느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구름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문학은 그런 존재들을 대변하는 장르니까."

사춘기 문예반. 164쪽

선우는 외롭다. 외로움이 선우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 외로움이 선우 자신을 포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선우는 세상을 알기 전에 버림을 먼저 알았고, 세상을 미워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선우를 버린 엄마와 알콜중독으로 여전히 제 몫을 못하는 아빠 그리고 버려진 선우를 내치지 못한 외할아지와의 삶은 선우를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게 만들고, 누군가의 작은 관심도 불편한, 강한 척 흉내내는 소녀로 만든다.

"책을 많이 읽은 편이니?"

"그냥…… 할 게 없어서요."

"책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뭐든 지나치면 위험하니까. 책보다도 나는 네가 유독 고통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략]

"가끔 남다른 고통을 겪은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고통을 선점한 자의 우월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 '너희들이 고통을 알아?' 식의 태도,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타인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말과 행동 같은 것들 말야."

사춘기 문예반. 71쪽

 

고등학교 2학년, 한창 꿈을 꾸고 나를 온전히 바라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시간,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대학'이란 새로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자신을 잃게 하는 비극을 낳고, 부모의 무책임은 자신을 해치는 나약함을 낳는다. 자신을 지키는 힘이 빠져나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선우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문예반 공간 속에서 만난다. 그들이 겪어내는 일들을 전달받으면서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시간이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선우은 조금 알았을까. 삶이란 것은 살아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배려가 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사회를통해 배웠고, 미워하기만 했던 아빠가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배웠고, 힘든 몸을 이끌고 택시 운전을 하는 외할아버지의 억척스러움을 통해 책임이 무엇인지 배웠으리라. 선우는 세상이 미운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겠노라 외치며 변해가는 자신이 미운지도 모르겠다. 선우가 배운 세상에 사랑이 없었다면, 선우가 나갈 세상엔 자신을 끌어안을 수 있는 힘만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래본다.

"재능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씨앗' 같은 거란다. 내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며 물을 주다 보면 그 씨앗이 언젠가는 싹이 돋고 꽃을 피우게 될거야. 피우려는 노력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야. 물론 빨리 필 수도 있지만, 아주 천천히 필 수도 있지. 게다가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게 아니잖니?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심지어는 겨울에도 피잖아?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돼."

시춘기 문예반. 233~234쪽

 

우리 집 첫째 소녀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행평가 결과가 발표되고 있는 시점이다. 모둠별 평가에서 3명의 몫까지 2명이 하다보니 미숙하여 점수가 깎여 억울하고 한숨을 토해낸다. 깎인 점수 6점에 세상이 끝난 듯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소녀에게 너무 큰 기대와 부담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지금 잃은 6점의 아쉬움이 소녀가 성장하는데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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