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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개를 펼친 밤
김재국 지음 / 미문사 / 2019년 5월
평점 :
나는 모험심이 뛰어나거나 '환상'이란 말에 유혹을 당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편이다. 눈에 보여지는 것을 그대로 믿고, 그 세계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살아가는 평범하고도 고루할 수 있는, 따분하다 하겠지만 나는 만족하는, 조용히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좋은 사람이다.
미문사에서 청소년 소설이 새롭게 나왔다는 소식을 통해 알게 된 『푸른 날개를 펼친 밤』 을 통해, 내가 지극히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현실 중심으로 살아가는사람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게임 속의 세계의 '옥기린'은 매력적인 무도인으로 열정적이고, 이성적이며, 감정을자제하면서도 따스한 눈빛을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의 '김기림'은 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두고 고시촌에 머물고 있으며 시골에서 입금해오는 용돈으로 한달을 근근이 버티어 가는, 실질적인 백수를 면하지 못하는 찌질하고 대인관계 꽝인 인물이다.
그의 눈에 불쾌감이 어린다. 바라는 바다. 나는 그에게 거부의사를 밝혔고, 그는 그것을 인지하였다. 이제 그는 나와 마주쳐도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좁은 공간에 아는 자가 있어 번거롭게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존재의 고통. 35쪽
그가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너무나 다른 인물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푸른 날개를 펼친 밤』 ,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성인이 읽어도 무관할 만큼 매우 탄탄하게 구성된 스토리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날개를 펼친 밤』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과 게임 속 또 다른 공간 속에서 펼쳐진다. 김기림과 옥기린 그리고 타락천사, 하나의 인물과 그 인물이 창시자가 된 또 다른 인물 둘이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새로운 만남과 관계맺음 그리고 경쟁과 이별을 겪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정한 자아가 뭐냐고? 나는 나라는사실, 나는 누구보다 소중하다는 사실, 나는 이미 위대한 영혼이고 이곳에는 단지 경험하러 왔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을 깨달은자아가 진정한 자아이다.
단지 책에서 읽은 것을 인용할 뿐 체득한 것이 아니라고? 그래도 좋다. 적어도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하여 고뇌의 사막을 낙타처럼 꿋꿋이 걷고 있으니까. 아득히 멀리 떨어진 북극성이 사실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결투 그리고 승리자와 패배자, 죽음과 레벨업이 가상의 세계임을 알면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 인물들의 진지함과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의 대사에서 진지함과 그들의 진중함이 또다른 매력으로 어필되어, 현실에서의 경쟁 뒤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다면 서로가 발전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깃들기도 했다.

김기림은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다. 부모에게 꼬박꼬박 용돈을 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시는 뒷전, 밤과 낮을 바꾼 채 피씨방에서 게임의 세계에서만 온전히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약한 김기림을 일으켜 세운 것은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가 공간을 만들어준 게임 속이었다. 게임의 레벨을 올리는데 열정을 보였던 그가 조금씩 게임 속 인물들과의 관계에서의 존중과 믿음 그리고 미안함과 감사함에 세상으로 한발짝 딛어내는 용기를 얻게 된다.
편의점 알바생의 부탁으로 편의점을 봐 주게 되면서 우연히 읽게 된 <프타아테이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보는 기회와 마주서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온다고. 그 기회를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 만큼 중요한 것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김기림은 외면하고 숨으려고 했던 자신의 존재를 세상으로 등을 미는 용기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새로운 관계의 시작으로 연결한다. 그의 변화는 곧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2차원의 사이버 세계는 어떠한가. 나는 이 세계에서 꿈과 사랑을 키우고, 열정과 심혈을 쏟아부으며, 오욕과 칠정을 느낀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 자신의 존재감을 절절이 느낀다. 그렇다면 내게 소중한 세계는 어디인가.
내 생각을 당신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사고의 벽을 헐고 모든 가능성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삶은 끊임없는 선택이며, 수많은 길 중 내가 선택한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긴 여정이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수없이 길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그것이 힘들고 지친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을 결코 삶이라 할 수 없다. 누가 이길 때까지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믿고 끊임없이 걸어갈 수 있는 힘, 고통 속에서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그 희망이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작이 되어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