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숙의 나라
안휘 지음 / 상상마당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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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는 누구일까? 내가 배운 역사 속에서 들어본 이름이었던가. 짧은 나의 역사 지식 속에서 들어보지 못한 의순공주, 그녀는 왕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공주라는 칭호로 불리며 조선과 청의 관계를 위해 '이애숙'이란 이름 대신 불린 열여섯 꽃다운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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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는 명과 청의 간섭을 받고, 사대부는 명이냐 청이냐를 두고 명분을 앞세우며 세력 다툼을 하던 그 때였다.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한 그 때 조선은 백성의 안위가 아닌 누가 먼저 권력을 잡느냐가 먼저였으며, 어느 나라에게 기대고 있어야 조선이 힘을 키울 수 있는지로 나라가 어지럽던 그 때였다. 그 때 이애숙은 조선과 왕으로부터 조선의 나라에서 청으로 오랑캐의 부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어명을 받는다. 왕의 딸이라는 가면을 쓰고 '의순공주'라는 새로운 신분을 안고 그렇게 청의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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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한 사내가 보낸 시 한 구절에 가슴에 설레는 여리고 여린 소녀 애숙은 나라의 처지는 모르나 나랏일하는 아비의 입장이 있고, 곧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될 오라비를 위해 청의 수장인 섭정왕과 혼인을 한다. 오랑캐의 부인이 된다는 가족의 우려와은 달리, 섭정왕의 애정과 따듯한 미소, 궁녀 하란과 피양구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청의 생활은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애속의 삶의 달콤함은 그것이 끝이었나 보다. 권력의 압력과 다수의 전쟁 그리고 시기심을 받던 섭정왕은 결혼 7개월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뱃속 태아는 사산하게 된다. 애숙은 청의 관습대로 동생의 첩으로 살게 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만, 그 또한 얼마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되고, 세번째 남편을 맞게 된다.

섭정왕의 정실부인으로 살았던 7개월의 애숙은 따듯했다. 피를 토하는 섭정왕의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고향을 떠난 여인의 삶치고는 따듯하고 평온했다. 애숙은 낯선 만주어 사이에서 들리는 조선말을 따라가며 만난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라가 힘이 없어 포로로 끌려와 갖은 수모를 당하고도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숨어 살아야 하는 조선의 여인들. 그들을 위해 애숙은 자신이 고이 안고 있던 섭정왕이 주신 마지막 패물까지 팔아 그들이 조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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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숙은 조선의 백성이다. 조선이란 나라를 위해 청으로 보내진, 가엾고도 고맙고, 미안하고도 애잔한 조선의 여인이고 딸이다. 애숙은 아버지의 부탁과 청의 도움으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그 설렘과 복받쳐오르는 따듯함에 행복했다. 조선 땅만 밟으면 그녀의 고단했던 삶은 눈녹듯 녹아내리고 따듯한 봄날이 오리라 여겼다. 조선이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진 귀한 여인이니 말이다. 하지만 조선은 그녀가 조선의 땅을 밟은 것을 두고, 명분을 논하고 왕실의 기강을 헤쳤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버지를 비롯한 관료들과 오라버니들을 관직에서 내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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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부모의곁을 떠나보낸 소녀보다 조선이란나라의 존폐만을 위했던 사대부들은 애숙의 가짜묘를 만들어 죽은 사람으로 잊혀지도록 만든다. 왕실에서 공주까지 오랑캐의 부인으로 바쳤다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고, 급기야는 공주는 보호하고 종친의 자녀를 보냈다는 소문으로 전전긍긍하던 궁은 청으로 가는 길에 죽음을 선택한 애숙의 묘를 만들게 된 것이다. 가짜묘. 애숙의 어미가 청으로 떠나는 딸에게 선물한 족두리를, 딸을 그리워하는 어미에게 증표로 다시 보낸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 족두리를 묻어 만든 '족두리묘'.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청의 여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애숙이 돌아와 마주한 것이 자신의 가짜 묘라니. 조선이란 나라의 안위를 위해 살아갔던 여인을 조선은 또다시 조선의 안위만을 위해 그녀를 버린다. 애숙은 꿈에만 그리던 조선 땅, 그 땅에서 다시 눈물을 흘려야만 했으며, 조선이 버린 많은 여인들을 보듬으며, 그들의 삶 또한 자신과 매 한가지 임에 가슴을 쥐어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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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있기에 세워진 것이 나라이건만, 어찌 나라가 백성을 버릴 수 있는지. 지금 이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판국이니, 나라는 어찌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화해도 바뀌지 않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라가 힘이 없어 포로로 잡혀갔다 만신창이의 몸이라도 내 나라, 내 가족이기에 목숨 다해 돌아온 그들에게 냉대와 차별만이라니, 이것이야 말로 개탄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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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도 족두리묘도 몰랐던 나에게 『애숙의 나라』 는 역사의 뒷안길 한 쪽을 내어주었다. 나약하여 자기 나라 백성마저도 지키지 못했던, 실리와 명분만을 앞세우며 희생양으로 삼았던 조선과 사대부, 그들이 세운 나라 위에 또 다시 세워진 대한민국. 나라와 백성이 공생하기 위한 기준이 바로 세워야 할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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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텨온 백성들, 나라에 닥친 위기마다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놓은 많은 백성들, 백성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까지도 보듬어 안으려는백성들, 그 백성들이 있었기에 나라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라의 부름으로 기꺼이 오랑캐의 부인이 되기를 자처한 여인, 애숙 그리고 의순공주.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녀를 지켜내지 못한 아비의 한을 죽어서도 지키겠노라 약조한 아버지 이개윤의 삶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족두리묘와 그 곁을 지키는 아버지 이개윤의묘 앞에 따듯한 봄날 피어나는 노고초(老姑草 할미꽃)를 살며서 내려놓는다.             aesok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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