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소녀
황희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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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출소를 한다는 그를 막기 위한 청원이 이루어졌다. 작고 여린 초등학생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주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울분에 차게 만들었던 그가 이제 사회로 돌아올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에게는 하루의 재미요, 실수라 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와 그의 가족에게는 평생의 상처이며 눈물이라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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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의 책을 좋아하는 나는,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 『내일이 없는 소녀』 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꿈초자 없는 청소년의 이야기 정도로 여긴 나의 기대는, 첫장을 열면서 나의 기대 이상으로 훅~ 하고 들어오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잔류사념과 평형세계.

너무나 낯선 두 단어는, 내일이 없는 소녀 도이와 그의 곁에 선 지석, 석윤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시간이 되고, 공간을 만들어준다.

 

도이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 등굣길에 술에 취한 성인 남자로부터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끌어 안고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열여덟 꿈조차 사치가 된 소녀이다. 도이의 지난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지석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상처투성이다. 지석이는 의붓아버지와 친형에게 성적 학대와 놀이감으로 전락한 채 죽지 못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열여덟 소년이다. 석윤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터져나온 어머니의 간절함과 아들의 삶조차 불필요하게 여겼던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외로운 소년이다. 살아있다는것만으로도 고통이요, 살아가는 이유조차 희미한 빛을 내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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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의 시계는 여덟 살 이후 멈췄다. 성장은 물론이고 마음의 문조차 항상 닫힘이다. 살아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겼던 부모도 나날이 지쳐가고, 집은 한숨조차도 편히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나만 없다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여기는 도이와 도이의 생사를 매일 매시간 확인해아만 마음이 놓이는 부모, 그들은 그것만이 서로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서로를 묶는다.      

도이는 마지막을 선택했지만, 그 순간에 보여준 새로운 공간과 시간 그리고 소리가 그녀의 삶을 새롭게 바꿔놓는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운 선택으로 달라질 삶을 만들어 낼 기회를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잔류사념과 우리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는지 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공간, 평형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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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았던, 너무도 나약했기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들의 과거가 선택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분명 그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되고만 그들의 운명은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퇴색되어졌고, 절망 속에서 가는 숨을 뱉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석이의 마지막을 본 도이는, 평형세계의 질서 따위에 친구를잃을수 없으며, 자신의 상처투성이 삶과 석윤이 외로운 삶을 버려둘 수 없다. 도이는 자신이 왜 '조현조'였는지, 여전히 상처투성이 몸으로 살아가야만 했는지,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는 용기를 내면서 이야기는 막바지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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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는 세상 누구의 눈으로 바라봐도 피해자이다. 보호를 받아야 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아물기를 기다려줘야 하는 피해자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처투성이 몸으로 상처를받아야 하고, 숨어야 하고, 숨겨야 하는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일이 없는 소녀』 도이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하는, 많은 피해자들의 삶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도이가 가진 능력 따위는 없지만,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분명 있다. 과거의 시간과 마주볼 용기를 꼭 한 번은 내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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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소녀』는, 읽는 동안 쉴 수 없었다. 도이의 상처에 눈물이 났고, 상처에 화가 났다. 지석이의 아픔에 울분이 터졌고, 아픈 그 마음에 소리치고 싶었다. 석윤이의 불신에 몸서리쳐졌고, 그의 외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억지속에 병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상처가 아팠고, 그들의 삶이 고단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도이'를 빌어 재생시키면서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였다. 이슈로 사건을 알리고 관심을 기울였던 그 사건들은 우리에게 조금씩 잊혀가지만, 도이는 여전히 아프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내뻗은 발이 제대로 디딜 수 있는 공간에 함께 해 줄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이 좀 열려있기를, 좀 따듯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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