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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맑음 -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고 33
임광호 외 지음, 박만규 감수, 5.18 기념재단 기획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중학교 2학년 5월 3일, 나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사뭇 다른 아이들과 낯선 학교에서의 적응이 채 되지도 않은 날, 갑자기 단축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앞 대학교에서 오후에 시위가 있을 예정이라는 연락이 왔단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시위 현장을 내가 직접 보게 된다는, 서울에 전학왔기에 가능한 일이기에 나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교문을 나섰다. 이미 도로에 차들은 줄었고, 전경들이 방패와 투구를 쓰고 도로의 양 옆에 대치하고 있다. 눈으로 직접 본다는 나의 셀렘 반의 마음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변해갔고, 전경들 사이를 지나는 발걸음도 떨려오고,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버스에 올랐다.
그 당시 언니 오빠들이 왜 학교에서 거리로, 책대신 화염병을 들었는지, 화염병이 터지고 난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흐르는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도 그냥 그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만 치부할 뿐, 더이상의 궁금증도 키워내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5월 18일, 맑음』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9년이 지난 그 때의 그 사건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또한 죄를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있고, 상처받은 이는 분명 있는데, 상처준 이는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일관되는 현실과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점점 더 깊이 그 날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 조각을 맞춰가고 있다. 그 조각들이 모여 퍼즐은 완성되어가고 우리는 그 시간을 보낸 이들의 이야기와 글, 사진들을 통해 함께 하지 못함에 미안해한다.
나는 그 동안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대통령이 누가 되고, 어떤 공약을 걸고 어떤 색의 정치를 하든,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 내가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가 궁금해진 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와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본 뒤였다.

한 도시가 피로 물들었던 10일,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렸을 광주 시민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10일이란 시간이 얼마나 지옥같았을까. 39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날의 기억과 상처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분들에게 난 어떤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5월 18일, 맑음』 을 읽는 동안 흘린 눈물로 나의 죄송스런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했던 나의 바람 또한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한켠으로 접어둔다.

『5월 18일, 맑음』 은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우리 땅에서 일어났고, 지금의 우리가 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우리가 그것을 누리게 되었는지를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대상이 정해지면서 이야기는 어려운 말들을 풀어내주고, 세계 여러나라의 모습을 실어 비교하며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진과 그림 그리고 문학 작품과 민주화 운동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이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실었다. 우리가 너무나 당당하게 누리고 사는 권리에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그리고 열정과 포용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매번 반복이다. 정권이 바뀌면 그 전에 정권을 잡았던 이의 비리를 캐내고 추궁하고, 누렸던 만큼 당당하게 다음에 앉을 자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이는 왜 없을까? 권력의 맛에 취하면 헤어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휘두르는 권력이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하는 소양은 잊은지 오래인 그들에게 국민은 힘을 키우는데 필요한 토양일 것이고, 국민의 소리는 막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신호탄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죄를 진 사람에게는 공소시효 만료라는 법이 있는데, 상처받은 이에게는 공소시효 만료가 없단 말인가! 언제까지 아파해야 하는지 따지고 싶다.
권력은 희생을 부른다. 권력을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미국의 힘까지 빌려 국민을 희생시킨 그 날, 하늘은 맑음이었고, 대지는 붉은 빛이었으며, 공기는 뜨거웠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그 날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가 누리고 사는 '권리',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간절히 원한 누군가의 피와 희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피로 물들은 거리에 엄마의 투박한 손이 주먹밥을 내밀고, 죽더라도 시민으로 살고자 했던 많은 헌혈자들, 죽을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군대 앞에 섰던 시민들, 무력앞에서 무기를 버릴 수 있었던 용기, 그들이 버틴 10일 그리고 39년의 시간을 만나면서 나의 나약함이 너무나 죄송스럽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끝까지 버텨내 준 광주 시민들, 그들에게 역사는 아픔이겠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을 살 수 있는 나에게는 깊은 울림과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5월 18일, 맑음』 을 통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 희생자를 낳은 운동 정도로 알고 있었던 나의 무지가 나의 가슴에 강한 울림을 안겨주고, 그들의 희생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고, 강력한 대응 의지였으며, 국민으로서 당당한 권리를 요구했던 투지였다. 그들의 희생은 권리와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며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사는 이런 것이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며, 아주 오래 전 일인 듯 싶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의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정확히 알고, 그 때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게 된다.
『5월 18일, 맑음』 은 지나간 역사를 알려주기 위한 역사서가 아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힘든 걸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밝혀줄 등대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