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87 - 제로보다 약간 더 높은 확률에 내 인생을 건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32
엘르 파운틴 지음, 박진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기만 했던 '난민'이란 용어가 우리의 땅에 난민들이 들어오고자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난민에 대한 이런저런 주장들이 나오고, 엇갈린 의견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난민.jpg

 

내가 난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에 다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국제법과 국제이주에 접근하면서 그들이 난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이 아닌 절망 끝에 잡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난민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면서 그들에게 자유는 곧 생명이며 간절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민1.jpg

 

 

실화를 바탕으로 난민 소년의 이야기 『난민87』 은 한 소년이 이념의 차이와 정부의 강압적 탄압으로 인해 나라의 보호에서 버려졌다. 곧 군대에 갈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서둘러 피해야 한다고 짐을 싸는 엄마와 짐을 앞에 두고 갑자기 들이닥친군인의 힘에 의해 집을 떠나야만 하는 소년, 소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늠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떨어야만 한다.

 

소년은 베스트 프랜드 비니와 함께 군인들이 힘으로 밀어올린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한번도 와보지 못한, 눈앞에 그려진 풍경이라곤 삭막한 모래뿐인 그곳, 그곳에서 소년과 베프 비니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너희가 들어있는,이건 사실 선박용 컨테이너야.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거나 운이 나빴다고 하겠지.” ‚

요나스가 말했다.

“이 컨테이너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게 아니야. 물건을 채워 배로 나르기 위해 디자인된 거지. 근데 누군가가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를 낸거야. 물건을 저장하는데 유용하다면, 죄수를 가두는데도 좋겠구나 하고 말이지. 바다 건너 물건을 수송하는데 사용하는 대신,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사막에다 가져다 놓았지. 너희는 말할 수도 있고, 입 다물고 있어도 돼. 그러나 너희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믿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우선 너희들을 빼낼 사람도 없고, 또 언제 나갈지도 모르니까.”

[중략]

“글쎄다. 상황이 바뀌었지. 언제부턴가 정부가 시위라든지 식량 부족같은 문제들에 대해 기사화하는 걸 싫어했어. 정부가 압력을 쓸수록 나는 네가 말했던 위험 인물이 되어갔지.”

요나스가 한 번 더 웃었다. 이번에는 기침이 몇 분 동안 이어졌다.

“아내와 세 아이를 데려가고 나를 수용소에 집어넣었어.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 생활을 처음 시작했지. 그게 벌써 십 오년 전이야. 십 오년 넘게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어. 가족들도 나를 보지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지. 아마 내가 죽은 줄 알거야.”

마지막 말을 듣는데 팔의 털이 다 곤두서는 것 같았다.

“저희 아빠도 감방에 있어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며칠 전에야 알았죠. 아빠가 돌아가신 줄 알았거든요.”

110~112쪽

네모난 상자 속에 들어간 소년과 베프 비니는 앙상하게 마른 몸의 어른들과 자신들보다 어리다고 짐작되는 이들과 고통에 휩쓰여 살아가게 된다. 그들을 지키는 총을 든 군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으로 하루를 버티며 온전히 갇힌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갇힌 이들 어느 누구도 타당한 이유로 끌려오지 않았으며, 정확한 이유조차도 알지 못한 채 가족과 멀어져 소식조차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견디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속에 나이가 다른 이들이 갇혀 살아가고 있다. 살아만 있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삶다운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보고자 탈출을 시도하고 매를 맞으며 반항도 해 봤겠지만,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징벌방에 갇혀 또 다른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버텨내는 것으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오늘을 버티면 내일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뭔가 저질렀지.

그 ‘뭔가’가 사실은 보통 때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절망 끝에도 바람은 불고, 희망은 찾아온다고 했던가.

갇힌 그들은 어느 순간에 찾아올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건강한 몸으로 들어온 소년들을 보면서 그들은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그들을 어떻게 해 달라는, 이 무서운 고통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이루지 못할 꿈은 애초부터 바라지 않는다. 다만,그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왜 돌아가지 못하는지만 가족들에게 전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아무도 모른 채 눈을 감는 것은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순간과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가족이 지쳐가는 순간이 얼마나 그들을 고통 속에 담궈두는 일이겠는가.

“너희 둘이 여기에 걸어 들어왔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성공할 가능성이 갑절이나 높아졌으니.”

“성공이요?” 비니가 나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말이에요?”

“우리 식구들에게 우리 소식을 전달해 줄 누군가가 필요해. 어쨌든 시간이 너무 지나는 바람에 너희를 더 준비시킬 시간이 부족해서 억울하긴 해. 하지만 너희 둘은 우리의 희망이야. 적어도 내 파랑새임은 확실하지. 나는 오래 살지 못 할테니까. 우리가 너희를 탈옥하도록 도울게.”

[중략]

“우리 대부분은 다른 수용소에서 이감되어왔지.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체력적으로 불가능했어. 처음 여기로 온 사람들도 우리처럼 저질 체력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때는 또 별다른 계획도 없었고. 계획이 생겼을 때는 우린 이미 늦어버렸어.”

“그렇지만 언젠가는 석방시켜 주지 않을까요?” 비니가 말했다.

“난 여기서 십 오년을 썩었다. 그 동안 그 누구도 자유를 쟁취하는 꼴을 못 봤어. 수용소를 빠져나가는 아주 간단한 수가 있기는 있지. 죽어서 얼굴에 천을 덮으면 돼.”

132~133쪽

그렇게 소년과 베프 비니는 기회를 이용해 사막을 벗어난다. 하지만 꼭 살아서 함께 하리라는계획들은 사라지고 소년만 남는다. 깜깜하기만 했던 소년에게도 희망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년이 달리면 나도 달리고, 소년이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면 내 숨도 멎는다. 소년이 마을을 벗어나 바다를 건너는 긴 여정을 함께 다니며 숨을 죽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나의 간절함이 조금이라도 소비되면, 소년의 여정에 짐이 되고 티끌이 될까 싶어 깊은 숨 한번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바다로 가라앉는 순간, 함께 힘든 길을 걷게 된 알마즈를 절대 놓지 못한 소년의 간절함 속에는 베프 비니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모든 걸 버리고 돌아가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의 무게가 담겨 있다. 소년은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바다에서 올려져 헬기에 몸을 싣는다. 그에게 이 모든 순간들이 자유 하나만을 위한 거라고 하기엔 너무나 처절하고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 그에게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자, 대체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난민87』 은 난민의 삶을 그렸다고 하기엔 너무나 미약할 수 있다.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고, 희망의 빛줄기 하나 잡아보지 못한 이들도 분명 있을 수 있으며, 여전히 암흑 속에서 버티며 내일이 맞이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 또한 있기 때문이다.

 

『난민87』 은 난민이 자유를 위해 고통 속에서도 버텨낸 그들의 삶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다. 어느 날 갑자기, 평소와 같았던 일들을 저질렀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나라로부터 사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로 만들어진 그들이 우리들의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한번쯤 손을 내밀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우리에게 난민은 무섭고 등을 돌려야 하는 존재가 아닌, 그들이 누릴 자유에 나의 자유를 얹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세계시민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이 때, 열린 마음으로 미소지을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