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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Va' dove ti porta il cuore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표지에 자꾸만 손이 가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은은하게 퍼져오는 색감과 빛을 받아 또다른 색을 내는 꽃잎을 가진 꽃 한
줄기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더니 손에서 책을 못 내려놓게 한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하고 싶은 말,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일기장에 담아낸 편지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마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마치 아련하게 퍼져가는 표지의 잔잔함처럼.
할머니는 떠나간 손녀가 그립다. 자신의 삶을 위해 찾아가듯 할머니의 곁을
떠난 손녀가 유난히 그리워지는 날, 할 수 없어서, 굳이 해 주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던 말들이 못다한 말로 남을까 할머니는 펜을 들어 꾹꾹
눌러담는다. 그동안 차마 꺼내놓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쌓아놓았듯이 꾹꾹.
손녀의 사춘기를 지켜보면서 할머니는 마음이 아프다. 그녀가
굳건하게 자신과 마주보면서 헤쳐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이, 마치 그 옛날 딸을 미처 품으로 안아내지
못한 그 때가 떠올라 가슴이 시려온다.
할머니도 엄마였다. 그리고 딸을 키우면서
기다려보고 매달려보고 후회하고 눈물지으면서 살아왔다. 그 상처를 손녀에게 들려주면서 다시 아문 상처를 뜯어내 얼마나 깊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괴롭게 힘들었을까.
좋은 엄마로, 좋은 어른으로 남기 위해 애쓴
시간이 할머니에겐 어떤 보상도 해 주지 못한다. 먼저 떠난 딸과 딸이 남기고 간 손녀, 그리고 손녀마저도 할머니의 곁을 떠났다. 외로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할머니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손녀의 곁을 지킬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음을 안다. 직감적으로.
할머니가 눌러 담은 글을 읽으면서, 엄마가 떠올랐고, 나의 두
딸이 생각났다.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인 나, 그리고 나에게 귀한 손가락인 두 딸. 이렇게 삼대는 서로를 향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엄마도 내 엄마로 살아보기는 처음이다. 내가 세상을 처음 만나듯 나를 만난 엄마도
처음이다. 서로 맞추다 삐걱대기도 하고, 서로 맞추다 어느 누구는 튕겨져 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린 "엄마"라는 말에 그냥 눈물이 나는 게 아닐까.
손녀는, 엄마의 자리를 할머니가 대신 지켜주신다.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할머니에게
투덜대던 시간, 자신의 꿈을 믿어주기를 가장 희망했던 시간, 방황하는 그 순간에도 잡아주었으면 했던 그 시간까지도 손녀에겐 할머니가 있었다. 그
시간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겼던 손녀에게 할머니의 마음을 담은 편지들이 일기장을 채워나간다.
할머니가 살면서 꼭 해 주고 싶었던 말, 떠난 손녀가 돌아왔을
때 할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고 있을 수많은 말들을 담아낸다. 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지켜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읽으면서 할머니의 삶의 무게와 너무 지쳐서 무겁게만 느껴졌을 어깨가 그려진다. 손녀와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할 아쉬움에 펜을 들었을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아파온다.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 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 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 있을 거란다.
272쪽
세상은 엄마가 존재하기에 많은 자식들이 살아간다. 그들이
전해주는 따끔한 충고와 삶의 진실 한 조각 그리고 끊임없이 주는 사랑이 있어 우리는 오늘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때로는 짜증으로 방황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행복으로 그들 앞에 서는 우리는 가장 큰 무기를 가졌으며 가장 든든한 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든든한 백을 항상 짊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무게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애초부터 메고 있지 않은 것처럼. 그 무게는 우리 부모가 대신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기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와 마주하는 오늘, 지나간 시간과 마주하는
할머니의 깊은 속내에 감사함을 전한다. 더불어 나를 이제껏 키워내신 엄마의 사랑의 깊이를 다시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