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병호 - 최우근 이야기책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5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13년을 살았다.
친구네가 어제 저녁에 어떤 반찬을 먹었는지, 친구 아빠가 몇 시에 퇴근을 했는지, 옆집 오빠가 오늘 시험을 몇점을 받아왔는지까지 모두 알 수 있을 만큼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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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나의 어린 시절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듯 나의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  『아! 병호』
모자란 듯 바보스럽게 보이지만 결코 모자라지 않는 병호와 모자라지 않지만 모자란 병호와 놀아주겠다고 말하는 정말 모자란 호진이가 친구를 먹고, 불평하면서도 그들의 곁을 맴돌며 함께의 재미를 배워가는 천수, 대영, 형보가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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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급식이 시작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호진이에게 이사는 청천벽력과도 같다. 학교를 떠나는 호진이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은 곧 바지에 실수를 하는 대참사를 만들어내고 만다. 곧 우유를 마시게 될 친구들의 고생이 눈에 보여 마냥 고소하기만 호진이. 그의 앞에 바보스러워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키는 병호는 안 어울리는 듯 싶으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고소함을 풍겨낸다.  

매일 같은 일상처럼 보이지는 유년 시절의 시간 속에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어른인 나에게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떠오르게 하고, 그리움이으로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생활에 익숙한 우리 집 두 소녀는 내가 읽어주는 단락들을 들으면서 호진이와 병호의 어리숙한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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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만화쿠폰을 모으는 이야기와 'TV'라고 쓰인 텔레비전 쿠폰을 '소'로 읽으면서 바르게 가르쳐준 형을 무지함으로 일관해 버리는 용기는 호진이와 병호. 송사리를 잡기 위해 아빠의 술을 훔쳐온 병호와 술에 취하길 기다리는 그의 친구들.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그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내 맘에 고소한 단내가 풍겨온다.

몰라서 용감하고, 용감해서 몰라도 당당한 호진이와 병호 그리고 친구들,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있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읽는 내내 마음엔 잔잔한 물결이 일고, 세상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호언장담했던 철부지가 되고, 가장 행복하고 당당했던 나와 마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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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속을 썪이는 자신 때문에 아빠는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눈물짓는 병호는, 참 솔직하다. 술먹고 때리는 아빠를 걱정하는 그 마음 속에 아빠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고, '우병호'를 '아병호'를 바꿔쓰면서 '아'가 좋아 성을 바꾸는 당당함,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눈물을 위해 멋지게 달리기 대회에서 비겨주는 용기, 병호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주는 참 바보스럽고도 바보스럽지 않은 친구이다. 우리가 한번쯤 병호가 되어준다면, 우리 주변은 지금보다는 더 따듯하고 평온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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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이와 병호가 마주하는 이별은, 참 예쁘다. 젤리만큼이나 말캉하고 촉촉하며 아쉬움이 날 만큼 달다. 그들이 못다한 표현에는 젤리의 맛이 숨겨있지는 않을까 싶다.

『아! 병호』는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읽어낼 만큼 흡입력있게 읽혀진다. 그런데 한번에 읽고 싶지 않은 아쉬움에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운 나의 유년시절이 빨리 그리운 뒷안길로 묻힐까 안타까움에 살포시 접기를 여러번, 그런 나에게 두 소녀가 감질맛나게 단락만 읽어준다고, 빨리 읽어달라고 매달린다. 아깝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나의 시간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아! 병호』에는 거창한 말도 어려운 단어도 하나 나오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의 말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호진이와 병호, 나의 엄마 아빠가 살았던 고단했던 그 때 그 시간,  나의 어린 시절, 지금 그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다. 담백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살포시 노크 해 온다. 나는 살짝 문을 열어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풍겨주는 단내를 맡고, 그들이 전해주는 따스함을 그대로 안아내기만 하면 된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의 마음을 이토록 따스하게 안아준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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