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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ㅣ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13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10월
평점 :
며칠 전 우리 집 두 소녀가 나에게 퀴즈 하나를 냈다. 곰돌이 푸가 티셔츠 한 장만 입게 된 배경이 무엇이냐고? 글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거라 "엄마가 티셔츠만 사 줘서? 배 때문에 맞는 바지가 없어서?"라는 나의 말은 무조건 땡!
"미키 마우스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곰돌이 푸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티셔츠 한 장을 나눠 줘서, 곰돌이 푸는 티셔츠만, 미키 마우스는 멜빵바지만 입고 있게 되었대."한다.
참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나에게도 두 소녀에게도 곰돌이 푸는 푸근하고도 조금은 부족해서 챙겨주고만 싶은 캐릭터로 가슴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으니, 친근함이 배가 되어 다가왔다.
"그게 말이야.
풍선을 가지고 꿀을 따러 갈 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왔다는 사실을 꿀벌들이 모르게 하는 거거든.
내가 초록 풍선을 타고 간다면 벌들이 나를 나뭇잎으로 착각하고 못 알아볼 거야.
그런데 만약 파랑 풍선을 타고 간다면, 아마도 벌들은 나를 하늘의 일부로 착각하고 못 알아보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이거야.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할까?"
16~17쪽
어릴 적 나는, 곰돌이 푸를 에니메이션으로 진득하게 앉아서 본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이름을 다 꿰고 있는 걸 보면, 인물마다 개성 있고, 자기만의 색이 뚜렷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자라지만 정이 많고, 머리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꿀만 보면 모든 걸 잊어버리기 일쑤인 곰돌이 푸.
푸의 가장 친한 친구 작은 돼지, 겁도 많고 매우 소심하지만 친구들이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도와주는 피글렛.
언제나 우울한 당나귀로 꼬리를 잃어버려 낭패를 당하기도 하는 이요르.
아들 루를 인질로 잡고 대신 위장 잠입한 피글렛의 장난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친구가 된 캥거루 엄마 캥거와 그의 아들 루.
지혜로운 올빼미.
유일한 사람으로 푸 일행의 절친한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
그들 앞에 놓인 하루는 어떤 빛깔로 물이 들어갈까 궁금해진다.
곰돌이 푸의 일행들은 아주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보이는 이야기 방식은 친근하면서 피식 하고 웃음이 베어나오기도 한다.
성격도 개성도 잘하고 못하는 것도 모두 다른 그들은 서로가 가진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욕심내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에서만 돕고 나누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말이다.
"그래? 우리도 그만 집에 가야겠다. 잘 있어, 푸!"
캥거가 인사를 하고는 크게 뛰어서 세 발자국만에 푸의 눈 앞에서 사라졌어. 푸는 캥거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어.
"나도 캥거처럼 저렇게 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긴 저런 걸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게 이치니까."
116~117쪽
『곰돌이 푸』를 읽다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쉽게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돌고 도는 것 같아 안절부절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정답을 알고 있는 나에게 푸와 그의 친구들의 여유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잠시 내려놓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느리기는 하지만, 돌아가기는 하지만, 내가 정답으로 알고 있는 그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꼭 그러지 않아도 모두가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해 있음을 알게 된다.
결코 빨리 하지 않아도, 아는 척 미리 나서지 않아도, 실수하고 다시 돌아가 시작하여도 똑같은 목표점에 도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아마 우리들의 목표지향을 꾸짖는 것 같기도 하다.
이요르는 푸 자리로 건너가서 푸를 옆으로 보내고는 엉겅퀴 풀을 뜯어 먹기 시작했어.
"거 말이지, 이렇게 풀 위에 털썩 앉아 버리면 풀이 다 엉망이 되잖니."
이요르가 입안에 풀을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어.
"원래 싱싱했던 애들이 그맙아 이렇게 시들해지잖아. 너희들 말이야, 다음번에는 한 걸음 멈춰 서서 잠깐만
생각을 좀 해 주렴. 다른 이들을 조금만 생각해 주면, 그 약간의 배려가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법이라고."
138쪽
푸의 일행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서로 다른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잠자리 또한 다르다. 누가 좋고 나쁘고도 아니고, 누가 옳고 그르지도 않는 보이는 그대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나와 같이, 너와 같이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푸는 푸, 피글렛은 피글렛, 이요르는 이요르일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서로를 어울려 사는 방식이고, 서로를 지켜내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곰돌이 푸』의 푸의 당당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꿀을 먹다가 하려고 했던 일을 잊었어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로움, 'ㅍ'을 보면 오직 '푸' 자신만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 사고, 친구의 칭찬에 자신의 치켜세울 줄 아는 당당함, 고집스러운 듯 하면서도 금방 수긍할 줄 아는 긍정적인 태도까지 내 마음에 바람을 살랑 일으킨다.
『곰돌이 푸』는 '앨런 알렉산더 밀른'이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서 1936년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이다. 숲이라는 배경에 동물과 사람이 교감하며,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속의 한 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모험을 하는 것처럼 동물들의 개성을 그대로 담아내 어린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다.
『곰돌이 푸』 를 다 읽고 난 뒤에는 『곰돌이 푸』에 대한 궁금증과 인물 소개 그리고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다양한 인형과 소품 등으로 사랑받는 『곰돌이 푸』와 그의 친구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는 설렘과 기쁨이,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추억에 잠겨보는 설렘과 친구들이 서로를 향하는 존중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생각의 시간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