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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 2018년 제24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박상기 지음, 오영은 그림 / 비룡소 / 2018년 7월
평점 :
첫째 소녀가 중학교 입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파도가 출렁거릴 때였다. 두 소녀의 다툼에서 현명하게 중재했다고 판단한 내 마음과는 달리 첫째 소녀는, 동생만 사랑하는 엄마가 밉다고 말을 한다. 첫째보다 어리기에 손이 더 많이 가고 챙겨준다고 하는 것이 소녀에게는 사랑으로 비춰졌을 테고, 옹호이며 편애라고 생각한 것 같다. 첫째 소녀는, 외롭다고 말했다. 자기 편이 없는 것 같아서 슬프다고도 했다. 소녀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소녀에게 그 동안 너무 관심이 없었나, 내가 그 동안 소녀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겁이 났다. 내 앞에서 소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입장 바꿔 복수하세요!"라는 앱으로 입장을 바꿔 서로의 입장으로 생활해보는 실천 앱이 마리의 폰에 다운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마리는 지금 너무나 외롭다. 아빠는 바쁘고, 엄마는 늘 피곤에 지쳐있고, 오빠는 게임에 빠져 있고, 단짝 여울이와는 화영이의 눈치가 보여 톡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아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마리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마리는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놓고 싶은데, 엄마는 급하지 않으면 다음에, 초등학교에 무슨 별일이 있겠어, 로 가볍게 넘겨 버린다.
나의 첫째 소녀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말로, 현명한 판단이라는 이유를 들어 '언니니까 그냥 한 번 봐 줘, 별일 아닌데'로 입장을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속으로 얼마나 속상해하고 상처를 받았을까.
마리는 엄마와 입장을 바꿔 빵집으로 출근을 하고, 엄마는 마리의 교실로 등교를 한다. 힘들게 빵을 포장하고 계산하는 법을 배우며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조금 알게 된 마리 앞에서 학교 다녀온 엄마는 울어버린다. 그 동안 마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뒤늦게 알게 된 미안함과 속상함, 하루동안의 힘겨움이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마리는 엄마로 지내면서 알바생으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엄마의 순한 성격 때문에 더욱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는 엄마의 모습을 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빵집 사장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화영이에게도 당당하게 말을 하며 그 동안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대신한다.

엄마의 고단한 삶과 마리의 외로운 삶이 바뀌면서 서로의 상황과 마음을 가까이 당겨주는 힘을 갖게 한다.
바쁜 아빠와의 서먹한 관계와 삶에 지친 엄마의 방임 그리고 따돌림 문제가 마리네 가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우리의 가정은 어떤지 돌아볼 기회를 준다.
가족의 패턴이 다양해지면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준다는 말 속에는 어찌 보면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볼 기회도, 입장이라면? 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무관심이 포함된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로 하는 손을 잡아주고, 하는 말에 귀 기울여주는 노력은 하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나는 첫째 소녀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중재를 하기 위한 거였는데, 소녀의 입장에선 엄마의 일방적인 중재였고, 충분히 입장을 고려하지 않음을 시인했다. 또한 두 소녀를 키우면서 어느 누구도 더 많이 사랑하고 덜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며, 외롭다고 생각하는 소녀의 말에 엄마 맘이 넘 아프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안아주면서 마음에 응어리를 안고 있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였다. 상처의 흔적이 남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 우리의 사랑이 더 깊어지리라 믿는다. 서로의 입장을 안다면, 알아주려고 노력한다면 사랑은 지금보다 더 따듯하고 깊어지리라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