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36
궈나이원 기획, 저우젠신 그림 / 북극곰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강원도 산골에 살던 나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다.

낯선 도시에서의 어색함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물이 많아지고,

친구들의 이름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낯섬은 더욱 깊어져갔다.

그 무렵 우리집에 온 얼룩강아지 한 마리.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똥개였고, 주둥이가 삐죽 나온, 참 못난 강아지였는데,

난 그 강아지가 참 좋았다.

나의 뒤을 종종거리며 쫓아다녀 '쫑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기에

하교 후 나의 일상은 평온해졌다.

나의 유일한 속내를 들어주던 쫑이는 택배기사가 열고 간 대문 사이로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병원에서도 집으로 데리고 가서 편안하게 해 주라는 말만.

그렇게 쫑이는 내 곁을 떠났다.

한참동안 정리하지 못한 쫑이의 집과 식기들이 정리되던 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울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울고,

나의 유일한 친구가 떠남에 울고,

며칠을 울며 학교를 오가며 나는 스스로 단단해지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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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잠을 깨우는 흰둥이의 채근에 눈을 뜬다.

너무나 낯익은 체온과 발길질 그리고 핥아내는 그 끈적거림, 할아버지는 잊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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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 흰둥이와 마주한 할아버지는,

청년으로 소년으로 돌아가 흰둥이와 신나는 모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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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위를 기어올라가 춤을 추고, 잎사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도 한다.

연을 날리며 논두렁을 뛰어가는가 하면 대장놀이도 하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행복이란 감정을 맘껏 발산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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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은, 행복함은 소년 곁에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다.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소년,

그리고 그 모습을 기억하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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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때의 모습은 슬픔으로 기억되며,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슬픔이 되어 흐르고,

그 추억으로 어린 시절 그 시간에서 멈춰버린 듯한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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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곁에 머물며 눈을 마주쳐오는 검둥이 한 마리

할아버지의 동행자가 기꺼이 되어주기로 한 검둥이

함께 걸어가는 그 길 위에

따스함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연연필로 스케치된 그림 속에 잔잔하게 베어나오는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따스함을 전하는 그림책 『흰둥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흰둥이와의 이별과

그리움에 사묻혀 외로운 할아버지에게 길동무가 되어줄 검둥이와의 만남,

이별과 만남을 흰둥이와 검둥이라는 대조적으로 표현한 빛,

연필로 그려지고 흑과 백으로 그려진 그리움의 시간과

노란 꽃들이 어우러진 길을 걸어가는 만남의 시간

이별의 아픔이 가슴 한 켠에 남아 

그리움으로 자리한 채 청년이 되고 할아버지가 된 이야기 『흰둥이』

흰둥이를 추억하는 할아버지의 그 마음에 검둥이가 찾아와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흰둥이에 대한 기억으로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가 나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다면,

검둥이와 나란히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나의 마음을 떨리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도 나도 이별의 아픔으로 오래도록 힘들어했던 시간,

할아버지가 검둥이를 만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가듯

나에게도 언젠가는 아픔을 내려놓아줄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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